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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vitia J Aug 30. 2022

내 안에서 여름이 잠시 노래 불렀다

시오타 치하루 전 감상


 “나란 무엇인가? 내가 태어난 이래의 나의 추억, 나의 역사 이외에 무엇이겠는가?

그것만으로 부족하다면, 내가 태어나기 이전의 역사, 나의 조상의 영혼 속에 쌓여 유전인자라고 불리며 내게 맡겨진 추억들 외에 무엇이겠는가?

그것들이 나를 앞으로 밀고 나가고 있다. 언덕의 눈뭉치가 스스로의 무게로 굴러 내리듯이.”(조지수, 나스타샤 중)


너와 나는 연결되어 있는 것이 맞는가.

너는 어디에 있지. 너를 그렇게 찾고 있는데. 기억은 사실일까.

내가 기억하는 너는 네가 맞는가.

왜곡되고 변형된 갇힌 기억.

나의 순간, 나의 조각들.

시오타 치하루의 작품에서 검은 실 속에 갇힌 나무배.

나아가지 못하고 그렇게 묶여서 어쩔 줄을 모르는 배.

바다로 항해하지 못하고 멈추어버린.

혹은 가라앉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작은 배.

완성되지 못한 꿈, 희망, 사랑.

사랑하기를 멈춘 사람들.

소리 없이 너를 부른다.

종이컵에 힌 실로 이어 전화기를 만든다.

목소리가 들리니.


시오타 치하루의 작품에서 비극이 느껴진다.

기억을 하나씩 모은다.

부서진 나의 조각을 이어 붙인다.

그러면 나는 내가 될 수 있을까.

너는 나를 기억해 줄까.

실. 엉킨 실에 엉거주춤.

발목에 실이 감겨서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네.

벗어나려고 할 때마다 더욱 나를 묶어버리는 실낮들.

내 안 물레로 지어낸 실뭉치.

벗어날 수 없는 나 자신.


시오타 치하루의 작품을 감상할수록 감상자는 내면으로 향한다.

하염없는 심연으로 빨려 들어간다.

스스로에게 잠겨 숨이 안 쉬어진다.

한 모금의 숨결.

실이 팽팽해진다.

네가 느껴져.

한가닥 한가닥마다 미세하게 떨리는 끈.


시오타 치하루의 작품은 충격이다.

가느다란 실 가닥으로 감상자를 꽁꽁 묶어버린다.

현대예술 작가는 자신이 울지 않는다.

감상자는 족쇄를 자신의 발목에 스스로 묶는다.

자신이 만든 함정에 빠져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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