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션의 쓰고 지우기

No Caption Just Look

by Divitia J


박물관의 캡션이 변신하고 있다. 쓰고 지워진다. 건축가 최욱의 ‘원오원 아키텍츠’가 국립중앙박물관에 선보인 ‘사유의 방’은 그 변화의 정점에 있다. 이곳에는 ‘반가사유상’이라는 이름표조차 붙어 있지 않다. 그동안 박물관 관계자들은 관람객을 과소평가해 왔을지도 모른다. 관람객은 빼곡한 설명 없이도 충분히 스스로 감상하고 몰입할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이제 ‘사유의 방’은 전시의 새로운 경향이자 하나의 표준이 되었다.


조지수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나스타샤를 떠올려 본다. 소설 말미, 그녀와의 추억은 흐릿하게 지워진다. 작가는 영혼의 소멸과 불멸을 대비시키며 그녀와의 사랑을 지운다. 나스타샤가 정말 실재했는지조차 의문이 들 만큼, 기억은 안갯속으로 흩어지고 모호해진다.


‘사유의 방’ 역시 그러하다. 어스름한 빛, 별처럼 흩뿌려진 조명, 거친 벽면과 미세하게 기운 바닥. 그 공간 안에서 반가사유상은 관람객을 압도하는 대신, 오히려 관람객을 지긋이 바라보듯 비스듬히 앉아 있다. 이제 전시는 단순한 유물 나열을 넘어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예술 작품이 되었다. 과학의 역사로 비유하자면 일종의 ‘패러다임 시프트’가 일어난 셈이다.


캡션은 그 모습이 무궁하다. 디지털 기술로 화려하게 피어나거나 아크릴, 유리, 음향, 3D 등 다양한 매체와 결합하며 캡션 그 자체도 기획의 핵심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진정한 변화는 '설명'을 넘어 '경험'으로 나아가는 그 지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