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시대
박물관의 소장품이 아무리 적더라도 모든 작품이 전시되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규모가 거대한 박물관이나 미술관이라 할지라도 전 소장품을 대중에 공개하지는 않습니다. 전시는 특정한 기획 의도에 따라 엄선된 작품들이 선택될 때 비로소 특별한 생명력을 얻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수장고에 머무는 작품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큐레이팅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온 작품은 어떤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는가'입니다.
보통 수장고 속 작품이 '보존과 보호'라는 의미를 지닌다면, 최근의 개방형 수장고는 그 의미가 훨씬 포괄적입니다. 보관 행위 자체가 하나의 전시가 되는 셈입니다. 관람객은 문득 궁금해질 것입니다. "큐레이터는 왜 하필 이 작품을 이 기획 안에 두었는가?"
이 질문은 결국 '전시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연결됩니다. 저는 큐레이터의 주관적인 전문성과 관람객의 즐거움을 연결하기 위해 작품을 선택하고, 배치하며, 기획합니다.
또 다른 갈래에서 우리는 작가에게 묻습니다. "왜 이렇게 표현했습니까?" 하지만 작가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거나 "그저 그렇게 표현하고 싶었다"라고 답할지도 모릅니다. 세상의 일은 때로 우연의 산물이며, 우리의 기대나 기획대로만 흘러가지 않습니다.
조중걸은 "한 시대는 하나의 세계관이다"라고 했고, 비트겐슈타인은 "현대는 발생하는 대로, 있는 대로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인과율의 단절과 함께 현대가 시작되었습니다. 현대인은 인과 관계나 거창한 의미, 신념 없이도 살 수 있게 되었지만, 동시에 방향을 잃은 아이처럼 불안 속에 던져졌습니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쓰고 지워야 하며, 스스로 창조한 새로운 세계조차 마음에 흡족해하지 않습니다. 끝없는 탐닉은 결국 역겨움과 환멸을 낳을 뿐입니다. 불안에 잠긴 영혼들은 중세의 신이나 근대의 과학을 불러들였듯이, 결국 다시 한번 '가시 돋친 장미'를 움켜쥐게 될 것 같습니다. 불안의 시대가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을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