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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새롬 Dec 12. 2020

#117.산타의 비밀 장난감 마을

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독일 #뉘른베르크 #수공예마을

#장난감박물관 #프라우엔교회

#성로렌츠교회 #크리스마스마켓

#2017년10월27일~10월30일


<라이언에어를 타고 독일로 출발!>

 이제 막 크리스마스로 물들려는 영국을 두고 독일로 넘어가야 할 날이 다가왔다. 우리는 이른 새벽, 이제는 어느 정도 부피가 줄어 제법 장기 여행자 티가 나는 가방을 들쳐고 다시 런던 공항으로 향했다. 붐비지 않는 새벽 공항의 낯설면서도 설레는 느낌.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늘 마음에 든다. 짧은 시간 정이 들어버린 도시와 안녕을 나누는 일은 언제나 아쉽지만, 우릴 기다리는 새로운 도시와의 만남이 그 마음을 다독여준다.   

<뉘른베르크, 이름은 낯설지만 가보자>

 끝이 어디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푸른 하늘을 날아 우리가 도착한 낯선 도시는 독일의 뉘른베르크. 지금껏 내가 아는 '부르크'로 끝나는 지명은 햄버거의 어원이 된 '함부르크'나 크라잉넛의 '룩셈부르크' 뿐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곳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사실 이 도시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유럽의 5대 크리스마스 마켓 중 하나가 열리는 곳이라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0월은 마켓을 보기엔 조금 이른 시기였다. 그래도 여기는 유럽이니까! 뉘른베르크 어디 한 구석에선 이미 크리스마스스러운 무언가 먼지를 털어내고 기지개를 켜고 있을지도 모르니 일단 가보기로 한다.

<뭔가 칙칙하다..>

 뉘른베르크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도심으로 향했다. 창밖으로 구리구리한 유럽의 날씨가 흘러갔다. 근데 이상했다. 분명 영국에서의 우중충함은 센치한 감성으로 느껴졌는데, 독일에서의 우중충함은 왜 우울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센트럴 역 Central Staion'에서 4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숙소의 마당도 뭔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건물은 붉은 벽돌로 지어진 오래된 아파트였는데, 마당에 여기저기 구멍 나고 녹슨 쪼꼬미 자동차가 세워져 있었다. 칙칙한 날씨에 뭔가 사연을 더하는 듯한 비주얼, 뭔가 비밀을 품고 있는 것 같은 오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뭘까. 뭐지, 이곳?!

<루돌프도 같이 있어야 할 것 같은 미니카>

 에어비앤비가 늘 그러하듯 주인이 건넨 여러 가지 힌트들을 참고 삼아 우편함에서 열쇠를 찾아냈다. 문을 따고 들어가니 잘 정돈된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작지만 있을 것 다 있는 부엌, 폭신한 침대와 테이블이 있는 방, 깔끔한 샤워실까지. 마당의 미스테리한 분위기와는 달리 이곳은 실용적인 것을 선호한다는 독일의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졌다.

<에어비앤비는 사랑입니다>

 숙소에 짐을 내려놓자 다음 나라로 안전하게 잘 왔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며 배도 고프고 졸음도 쏟아졌다. 오늘은 편하게 먹고 쉬자는 생각으로 가까운 곳의 마트 탐방부터 시작했다. 할로윈을 앞둔 시즌이라 마트 곳곳에 노오란 호박이 눈에 띄었다. 이곳 사람들은 정말 호박을 사다가 장식도 하고 그러는가 보다.

<만화에서 보전 딱 할로윈 호박 색감>

 그리고 한켠에는 달콤한 것들을 반짝반짝 예쁜 포장지로 장식해, 장 보러 온 사람들을 무지막지하게 현혹하고 있는 그런 코너가 있었다. 바로 할로윈보다 더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크리스마스 초콜릿 코너였다. 상상하던 대로 역시 이곳엔 슬금슬금 크리스마스가 시작되어 있었던 것이다.

<크리스마스, 마트엔 이미 도착>

 우리가 흔히 유럽하면 떠올리는 서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물가가 비싸다. 파리와 런던에서 이미 경험을 했기 때문에 독일에 와서도 어느 정도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마트 안의 식료품들이 정말 너무 저렴하고 퀄리티가 좋았다. 비주얼이 장난 아닌 아이스크림 12개 들이 한 박스가 무려 1.79유로. 우리 돈으로 약 2,400원인 셈이다. 횡재라도 하는 기분으로 우리는 고급진 아이스크림도 사고 식사가 될만한 식재료와 간식들도 잔뜩 샀다. 그랬는데 다 합해서 9.1유로(약 12,200원). 유럽에서 이렇게 혜자스러운 물가를 만나게 되다니 소소한 감동이 밀려왔다.

<저 문으로 들어가면 동화가 시작된다>

 잘 먹고 푹 쉬고 에너지를 비축한 다음날, 느지막이 일어나 동네 구경에 나섰다. 뉘른베르크는 독일 남동부 바이에른주에 위치한 규모가 꽤 큰 도시이다. 하지만 옛 모습이 잘 남아있어 그런지 포근하고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낙엽이 오소소 떨어진 돌길을 따라 성문 안으로 걸어 들어가니 작은 상점들이 옹기종이 모여있는 것이 보였다.

<수공예 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는 동네>

 예로부터 고품질의 수공예품을 잘 만들기로 유명했다는 뉘른베르크. 손재주 좋은 장인들은 금속과 유리, 목재 등 다루지 못하는 재료들이 없었고 손끝이 섬세해 아름답고 재미있는 장난감들도 많이 만들어 냈다고 한다. 이러한 도시의 역사를 알면 알수록 나는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아늑한 마을의 풍경, 다정한 분위기의 돌길, 손으로 무언가를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수공예 장인들. 이런 동화 같은 마을 속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을 정녕 보지 못하고 떠나야만 하는 건가. 생각할수록 아쉽고 속상했다.

<저 멀리 반짝이는 오두막>

 속상한 맘을 눈치챘는지 저 멀리 따뜻한 불빛의 오두막이 나를 반겼다. 이끌리듯 다가간 그곳은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사람들이 즐겨 마신다는 '글뤼바인 Glühwein'을 판매하는 상점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빨간 머그를 들고 보글보글 막 끓여낸 향긋한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11월을 코 앞에 둔 10월은 역시 할로윈보단 크리스마스가 제격이지. 이제 살짝 맛만 봤을 뿐인데도 크리스마스의 달콤하고 두근거리는 기분이 한껏 느껴졌다. 조금 이르면 어떤가. 이미 이곳은 크리스마스와 산타, 그리고 요정들을 받아들이기 충분한 모습으로 채워지고 있는데 말이다.

<와인 끓이는 향기가 정말 좋다>

 예쁜 지붕을 가진 집들 사이로 걸음을 옮기며 나는 모든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기로 했다. 본래 크리스마스란 상상과 동심과 달달한 것들로 채워져야 제맛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어딘가에서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딘 마틴 Deen Martin'의 'Let it snow Let it snow Let it snow'가 들려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도입부가 클라리넷? 비슷한 악기로 시작하는데, 그 소리에 맞추어 작은 요정들이 장난감을 만들고 포장하는 장면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우울한 날씨의 뉘른베르크가 순식간에 산타의 비밀 장난감 마을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런 마을에 요정 한명쯤 없겠어?>

 강을 따라 쪼르륵 지어진 오래된 목조 건물 안에는 따뜻한 난로 주변에 모여 핫초콜릿을 마시는 요정들이 있을 것만 같았다. 수많은 장난감으로 가득 찬 방에서 요정들은 커다란 원목 테이블에 앉아 산타가 보내온 장난감 목록을 살펴보고 있을 수도 있다. 이곳은 산타가 크리스마스에 딱 맞춰 전 세계 어린이들의 선물을 만들기 위해 특별히 정한 비밀 장난감 마을일지도 모르니까. 손재주 좋은 수공예 장인들이 사는 마을이니 충분히 가능한 가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 동화에서 본 것 같아 여기. 진짜야.>

 사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따로있다. 바로 뉘른베르크 장난감 축 때문이다. 이 축제는 지어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 자랑한다고 한다. 이 정도면 나의 상상이 그저 허튼 공상에 불과한 것은 아니라는 증거가 되지 않을까 싶다.

<나의 상상에 방점을 찍어버린 장난감 박물관>

 대규모 축제가 열리는 장난감 성지 답게 마을 중심부에는 멋진 박물관도 있었다. 그 안에는 뉘른베르크가 중세시대부터 이미 다양한 장난감을 만들어 내는 도시로 유명했다는 증거들이 가득했다. 역시 산타와의 내통은 그때부터였나.

<옛날 인형도 소꿉놀이 소품도 디테일>

 커다란 유리장 안에는 아이의 손때가 묻은 오래된 인형과 놀이에 필요한 소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섬세하게 만들어진 장난감들은 순식간의 내 눈과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나는 산타의 장난감 마을투어에 유일하게 초대받은 사람처럼 설레었다. 마치 언젠가 어린이였던 모든 어른을 대표해 이곳에 방문한 것 같았다.

<손들고 울고 있는 아이 넘 귀여움>

 두 면이 열려 있는 작은 상자에 학교 교실의 풍경이 오밀조밀하게 꾸며져 있는 이 장난감은 디테일이 정말 재미있었다. 무언가를 잘못했는지 앞으로 나가 무릎을 꿇고 벌 받으며 우는 아이부터 모두 다른 표정과 몸짓으로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들까지 하나하나 찬찬히 둘러볼 수밖에 없을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오리들 귀여운것 좀 보세요>

 거리를 걸으며 봤던 뉘른베르크의 목조 주택을 그대로 닮은 집들과 오리와 닭, 양이 어우러져 한낮의 여유를 즐기는 농장의 풍경이 알록달록 담겼다. 이런 장난감 세트를 받은 아이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나라면 너무 설레어서 콧구멍을 벌름벌름 거리며 얼굴 가득 미소를 지어 보였을 것 같다.

<와.. 이건 정말 상상도 못했다>

 다음으로 만난 장난감들은 섬세함의 끝을 보여주는 것들이었다.  'Erzgebirgische Volkskunst'라는 이름의 장난감 회사가 만든 성냥갑 인형 세트이다. 제품 패키지에 보면 '성냥 상자 Zụ̈nd•holz Schachtel'라고 쓰여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인형과 작은 가구들까지 저 작은 공간 안에 알차게 들어 있다. 자세히 보면 한켠에 고양이 인가 강아지 같은 동물도 한 마리 앉아 있는 것도 보인다.

<여보, 이거 빨리 내 주머니에 좀 넣어봐 통째로>

 벽면 한쪽에는 이런 성냥갑 세트들과 그것과 크기가 비슷한 탈것 위주의 장난감이 빼곡히 진열되어 있었다. 보자마자 순간 통째로 우리 집 거실에 가져다 놓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나 아닌 누구라도 이런 걸 본다면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가방까지 핸드메이드 느낌 물씬>

 이것도 나무로 만든 장난감이고 동물농장 세트이다. 1920~1935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나무 상자 안에 다양한 동물과 울타리, 나무, 오두막까지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것이 가격 꽤나 나가는 비싼 장난감이었던 것 같다.

<미친 디테일은 이럴 때 쓰는 말인 듯>

 2층으로 올라가니 여기는 상상을 초월하는 인형의 집들이 가득했다. 어린이들이 가지고 놀기 위해 만들어졌다기보다 관상용으로 만들어진 는 생각이 들 정도로 퀄리티가 어마무시했다. 어린 시절의 로망을 10톤 트럭으로 콸콸 부어 놓은 듯한 비주얼에 나는 거짓말을 살짝 보태 침까지 흘리며 구경했다. 보이는가, 계산을 담당하는 금고 동전통 안의 작은 동전들이! 디테일이 정말 끝도 없다.

<갖진 못하지만 같이 사진은 찍을게요>

 이런 인형의 집은 크기도 큼직큼직해서 아이들이 진짜 가지고 놀 맛이 났을 것 같다. 주방 구석구석 냄비와 조리도구들이 가득하고 요리하는 대형 조리대 옆에는 작은 바구니에 야채들이 소복이 담겨있다. 나무로 짠 테이블 위엔 은식기들이 놓여있고, 싱크대에는 아직 씻지 못한 식기들이 담가져 있다.


 이 인형 집의 핵심은 확장이 가능한 형태라는 것이다. 오른쪽 문을 따라 옆으로 이동하면 응접실이 나오고 그 옆 문으로 이동하면 침실이 나온다. 어린이의 로망을 너무나도 완벽하게 구현해 놓은 인형의 집 앞에서 발길을 옮기는 족족 탄성을 지르다 과호흡이 올 것만 같았다. 산 채로 박물관을 나갈 수 있을까.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어 죽겠다.

<나에겐 비밀이 하나 있지>

 이번엔 유럽의 귀족 생활을 고스란히 담은 대저택이다. 얼핏 보기엔 평범해 보지만 이 인형의 집에는 어마어마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

<정말 엄지 하우스>

 바로, 크기가 내 엄지 손가락과 비슷한 정도라는 사실! 아까 성냥갑은 그냥 애교에 불과했던 것인가 보다. 이 작디작은 장난감은 1990년대 게르하르트 바츠라는 사람이 뉘른베르크 박물관을 위해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앉은 것도 선 것도 아닌 듯한 자세로 앉기>

 가까이 다가가니 정교하게 만들어진 내부가 속속들이 들여다보였다. 베토벤 머리를 한 귀족들이 응접실 테이블에 앉아 열띤 토론을 펼치고, 파란 제복을 입은 두 명의 하인들이 가마 비슷한 것을 준비한 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 옆으로 난 우아한 대리석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멋스러운 침실이 나타다. 주방에선 하녀가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는지 분주해 보인다. 보는 내내 누군가가 나에게 옛날 동화 한 편을 들려주는 것 같은 그런 작품이었다.

<둥가둥가인줄 알았지만 벌 받는 것이었음>

 3층은 박물관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될 정도로 기발한 장난감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태엽의 원리를 활용해 움직임을 가미한 장난감들은 실제로 조작되면 어떤 모습일까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그중에 네 명의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인형이 보자기의 네 모서리를 붙잡고 있는 장난감이 눈에 들어왔다. 설명을 보니 태엽을 감으면 보자기 안에 웅크리고 있는 중국 인형이 하늘로 뿅 튀어 올라가 마치 서커스를 보여주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근데 벽면에 적힌 설명을 번역해보니, 이교도를 던지며 처벌하는 장난감이라고 한다. 인형들 표정이 웃는 얼굴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무섭. 어떻게 움직일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유튜브에 영상이 있다. 아래 링크를 따라가면 볼 수 있다.


<움직이는 걸 보니 좀 더 무서워짐;;>

https://www.youtube.com/watch?v=YKObkOBdDMo


<귀족이 탄 가마인데, 뒤주 같아 보이는 건 왜죠>

 중국의 귀족이 타는 가마라는 이름이 붙은 이 장난감은 태엽을 감으면 두 명의 하인이 열심히 가마를 들고 이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와.. 진심 진열장 안에 손을 넣어 당장이라도 태엽을 감아보고 싶었다. 굉장히 아날로그스러우면서도 매력적이고 신기하다.

<탭댄스 신명나게 추시는 아저씨>

 이어서 진열되어 있는 탭댄스 추는 '앨라배마 콘 지거 Alabama Coon Jigger'라는 이름의 장난감이다. 이것도 역시 태엽을 감으면 저 무대 위에서 인형이 탭댄스를 춘다고 한다. 그래서 무릎 관절이 섬세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분리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도 유튜브에 움직임을 볼 수 있는 영상이 있어서 첨부해본다.


<↓앨라배마 콘 지거는 이렇게 움직인다↓>

https://www.youtube.com/watch?v=ysu1wIidGhE

  

<규모가 어메이징>

익숙한 바비 인형전시되어 있는 4층을 지나니 거대한 레일기차들이 나타났다. 플랫폼이며 가로등 하나까지 섬세하게 만들어져 한참을 넋 놓고 바라봤다. 이곳은 나보다 남편이 훨씬 신나서 구경했던 곳이다. 채석장에서 채취한 돌들을 기차에 싣고 바로 이동하도록 꾸며져 있었는데, 그곳에도 역시나 디테일이 장난 아니었다.

<디테일 장난 아니고요>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박물관 문 닫을 시간.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건물을 나섰다. 하루 종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한 이 장난감들은 사실 박물관이 소장한 6만 5천 점의 장난감 중 약 5% 밖 되지 않는다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그중 상당수가 어떤 부부에 의해 개인적으로 수집된 물건들이라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길래 이렇게 장난감을 모으고 또 모았을까. 혹시.. 산타 부부?! 사실 확인 전혀 안 된 나의 개인적인 피셜이지만 뭔가 느낌적 느낌이 온다.

<다정하게 집으로 가자>

 밖은 이미 어둑어둑 저녁이 내려앉고 있었다. 우리는 오늘의 여정의 끝을 장식하기 위해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다는 중앙 광장을 지나 집으로 가기로 했다. 물론 아무것도 없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갔는데, 의외로 광장에는 크리스마스 느낌 나는 빨간 스트라이프 천막들이 드리워져 있었다. 거리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보이는 작은 크리스마스들이 나의 의심을 점점 진심으로 만들어 버린다. 산타 할아버지, 저한테 딱 걸리셨어요..

<날씨는 구리지만 천막은 예쁘다>

 하루 종일 파워 워킹과 과호흡의 연속으로 동네 구경을 한터라 집에 돌아가자마자 비에 젖은 화장지 마냥 축 쳐져 버렸다. 우리는 지쳤을 땐 역시 고기라며 어제 마트에서 사온 스테이크를 구웠다. 그리고 남편은 와인 나는 오렌지 주스를 곁들여 간단하고 알찬 저녁 식사를 마쳤다.

<고기 먹고 힘내는 저녁>

 다음날은 아침부터 다른 에어비앤비 숙소로 이사를 했다. 같은 곳에 더 머무르고 싶었지만, 누군가가 이미 부킹을 해버려서 이동이 불가피했다. 그런데 짐을 옮긴 날도 역시나 날씨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과감하게 외출을 포기하고 집콕을 하며 게임도 하고 영화도 보고 글도 쓰며 보냈다.

<여행 중에도 농땡이는 즐겁다>

 그리고 뉘른베르크에서의 마지막 날. 드디어 반짝이는 예쁜 햇살이 창문 틈새로 흘러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대충 아점을 챙겨 먹고 서둘러 밖으로 나섰다. 햇볕 샤워하러 가자!

<나왔다 햇살>

 엊그제 글뤼바인을 마시는 사람들을 만났던 구시가지 중심부의 쾨니히 거리에는 멋진 '성 로렌츠 교회 St. Lorenzkirche'가 있다. 이 교회는 역사적 가치도 뛰어나지만, 사람들을 모이게 만들어주는 만남의 광장 역할도 하는 것 같다. 로렌츠 교회 앞에서 보자! 이렇게 약속을 정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니 말이다.

<로렌츠 교회의 뾰족한 첨탑이 웅장하고 멋지다>

 우중충한 날씨에 감추어졌던 뉘른베르크의 예쁜 모습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빠르게 지나치느라 보지 못했던 크리스마스 분위기 물씬 나는 목공예 장난감 가게도 벌써부터 사람들로 북적였다. 모두가 나처럼 벌써 찾아온 그날이 반가운가 보다.

<장난감 가게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예쁘지만 사악한 가격>
<쇼윈도우 그대로 집에 가져가고 싶다>

 메인 광장도 지난번 그 모습이 아니었다. 햇볕 아래 웅장한 '프라우엔 교회 Nürnberg Frauenkirche'의 아름다운 모습이 드러나자 역시 여행은 날씨가 다한다는 말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12시가 되면 시계탑 안의 인형들이 나와 춤을 춘다고 하는데, 내가 간 시간은 이미 오후 3시. 아쉽지만 이 모습 그대로도 너무 좋았다.

<햇살 아래 광장은 또 다른 세상>

 광장은 예쁜 꽃들과 야채, 과일을 팔러 나온 상인들로 가득했다. 크리스마스 마켓이 서야 할 공간에 농수산물 시장 있는 셈이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나는 이미 이곳의 비밀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비밀이란 것이 원래 일상 속에 간질간질하게 숨어 있는 그런 것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나의 눈에는 이미 여러 가지 색안경이 모두 끼워져 버렸다. 그래서 이젠 이 모든 것이 크리스마스 대작전으로 보인다.

<비밀 공유해줘서 고마워, 뉘른베르크>

 물론 상상은 상상일 뿐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나의 여행은 조금 더 여행스러워졌다. 여행이 비밀을 찾아냈고, 비밀은 이야기를 만들어 주었다. 평생 이야기를 써내려 가며 살기로 결심한 나에게 이것은 참 행운이 아닐 수 없다. 훗날 어쩌면 나의 아이에게도 다른 사람은 모르는 나만의 동화를 들려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독일의 뉘른베르크라는 오래된 마을에 숨겨진, 산타와 나만 아는 그런 비밀 이야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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