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내 안의 변하지 않는 한 가지

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by 정새롬

#베트남 #호치민 #우체국

#수상인형극 #2017년3월


내 안의 변하지 않는 한 가지로, 만 가지 변화에 대처한다

-호치민(베트남 정치가)


6년 전 혼자 사진전에 갔던 어느 날, 우연히 호치민과 그의 한마디를 만나게 되었다. 그날부터 난 저 문장을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이보다 내가 살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표현할 수는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삶은 우리에게 참 많은 변수를 가져다준다. 때로는 가볍게 넘어가기도 하지만, 때로는 다시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넘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어떤 상황이 와도 지켜야 할 자신과의 약속, 그 약속 하나만 있다면 우린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것이 만 가지 변화로 나를 단련해 가는 이 세상의 이치가 아닐까 한다.

<당신의 변하지 않았던 그 한 가지를 존경합니다_출처 구글>

이곳의 명칭은 원래 '사이공'이었다. 하지만 1975년 남북으로 나누어져 있던 베트남이 통일되자, 정부는 한 평생 이를 위해 헌신한 혁명가이자 정치가인 호치민에게 도시를 헌정한다. 그래서 도시 곳곳은 그의 흔적들로 가득했다. 국민들에게 '호 아저씨'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베트남 역사상 가장 사랑받은 정치인 호치민. 그는 오늘 아침 들려온 세월호 인양 소식과 맞물리며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1073일의 긴 침묵을 끊고 세월호 인양이 시작될 것이라는 기사는 반갑고도 슬펐다. 희생자 가족들은 왜 3년 동안이나 바다를 이룰 만큼의 눈물을 흘리며 기다려야만 했을까. 탄핵 이후 너무나 빠른 인양 진행에 나는 당연히 의문을 둘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의 의도적인 방해였을 가능성이 아주 농후하다. 무엇을 숨기고 싶었을까. 그것이 무엇이었든 간에 지금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그녀는, 남은 삶의 전부를 국민이 주는 벌을 받는 곳에 써야 할 것이다. 그녀 안의 변하지 않는 한 가지는 다른 의미에서 참 견고하고 어리석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전쟁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 있던 곳.>

베트남하면 떠오르는 슬픈 것 하나가 베트남전이다. 우리나라도 참전국 중 하나였고, 그것에 대한 역대 대통령들의 사과가 있어왔지만 이에 관한 명확한 보상은 없었다고 한다. 당시 베트남 사람들은 미군보다 잔인한 게 한국군인들이라고 했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일제의 만행에 늘 우리가 피해자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도 가해자였을 때가 있었던 것이다. 독일처럼 역사의 흔적을 꼭 기억하고, 이 문제에 대해 베트남 국민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때문에 우리는 전쟁 기념관을 찾았고, 그때의 참혹했던 흔적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불과 57년 전 한반도에서도 벌어졌던 남북 전쟁과 매우 흡사해 더욱 마음이 아팠다.

<파란불에는 당연히 GO, 빨간불에도 그냥 GO>

마음 깊이 희생된 모든 이들에 대해 묵념을 하고 기념관을 나왔다. 뜨거운 햇볕 아래 질서 없이 뒤섞여 달리는 이곳의 오토바이들은 정말 혼돈의 카오스이다. 신호는 명분에 불과하며, 가고 싶으면 거꾸로도 달리고 옆으로도 달리고 인도로도 달린다. 이러다가 내 위로도 달릴까 싶어 두려워지는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나름의 질서가 있는지, 작은 접촉 사고 하나 본 일이 없다. 정말 미스터리 한 나라다.

<유럽으로 순간이동각의 노트르담 성당>

오토바이 사이를 정신없이 지나다 보니 눈 앞에 거대한 성당이 나타났다. 이름도 낯선 노트르담 대성당. 프랑스 식민 정부 시절 지었던 건물이라 이름도 그들의 유명한 성당을 본 땄나 보다. 저 빨간 벽돌들은 무려 프랑스에서 한땀한땀 실어 온 것이라고. 성당을 뒤로하고 옆으로 길 하나만 건너면 1891년에 세워진 호치민 중앙 우체국이 보인다. 이 건물을 지은 사람이 그 유명한 에펠탑을 만든 구스타프 에펠이라는 것도 재미있는 사실 중 하나이다.

<100년 전으로 훌쩍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곳.>

우체국에 들어서니 아치형의 지붕과 중앙에 걸린 호치민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나듯 설레는 마음으로 곳곳을 둘러보았다. 붉은빛이 도는 짙은 밤색 나무의 국제전화 부스는 해리포터가 타고 다니던 기차를 떠올리게 했다. 우체국 중앙에서는 다양한 엽서와 우표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여행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예쁜 엽서에 편지를 써서 고국으로 보냈다. 우표는 우리처럼(?) 침으로 붙이지 않고, 노란 컵에 들어 있는 풀을 붓으로 찍어 바르는 식이었다. 녹색 기둥과 노란 컵의 색 조합. 아, 예쁘다.

<우체국은 풀이 담긴 컵까지도 내 취향을 저격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가지 않고 그 자리에 내려앉은 것 같은 공간에 서있다 보니 기분이 나른해졌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가느다란 빛줄기 속 반짝이는 먼지와 많은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웅성거림이 좋았다. 또 오래된 나무 의자와, 지금 이 순간을 나누고 싶은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는 여행객들의 표정은, 기억의 상자에 담아 오래도록 보관하고 싶은 명장면들이다. 그래서 내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꽤나 마음에 들었고, 시간을 최대한 천천히 흘려보내기로 했다. 어떤 장소와 특별한 기억을 갖는 것은 언제나 설렌다. 훗날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 나무 의자나 편지 같은 오늘에 대한 아주 조그마한 단서가 더해지면 나는 순식간에 이곳으로 시간여행을 떠나 올 수 있으니 말이다.

<친절하게 한글 안내서도 준비되어 있다. 완벽!>

오후가 깊어 가는 시간, 십여분을 걸어 수상 인형극 공연이 펼쳐진다는 극장을 찾아갔다. 공연은 5시와 6시 반 두 타임. 우리는 5시 표를 예매하고 근처에 가서 쌀국수를 먹고 왔다. 잠시 후 안내원의 인도에 따라 붉은색 휘장이 온통인 중국 느낌의 극장으로 들어섰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맨 앞줄 중앙에 자리를 받았다. 수상 인형극은 베트남 하노이가 원조인데, 보고 온 사람들 말로는 이곳 호치민 공연이 더 재미지다고 했다. 기대와 함께 전통 악기 및 노래로 공연이 시작되었다. 무대 가득 찰랑찰랑하게 채워진 물속에서 불쑥 인형이 튀어나왔다. 대나무 발로 쳐져있는 무대 뒤편에서 전문가들이 열심히 막대를 움직여 연기를 펼쳤다. 극의 내용은 주로 과거 베트남 서민들의 문화와 설화에 관련된 것이어서 베트남어를 몰라도 이해하기 충분했다. 그중 단연 손에 꼽은 스토리는 여우 잡기였다. 자신을 잡으려는 사람들을 피해 여우가 입에 생선을 물고 나무 위로 올라가는 엄청난 디테일을 선보였다.

<살아 숨쉬듯 디테일한 인형의 움직임에 박수가 절로 나옴.>

공연이 끝나고 무대 뒤에 숨얼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목까지 올라오는 비닐 의상을 입고 물속에 몸을 잠근 채 칼군무 인형들을 선보인 그들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박수를 치고 또 치고 또 쳤다.

<프로페셔널한 배우들에게 박수 짝짝짝짝>

뜻밖의 것들에서 다양한 감정을 느꼈던 호치민 시티에서의 하루. '호치민'처럼 이곳 '호치민'도 변하지 않는 한 가지로, 만 가지 변화에 대처하는 삶을 살고 있는 듯하다. 그가 남기고 간 많은 신념들은 여전히 도시를 풍성하게 만들 뿐 아니라, 이곳을 찾은 여행객들의 마음까지 사로잡고 있으니 '호 아저씨'의 매력은 가히 블랙홀을 뛰어넘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이 매력의 10분의 1도 보지 못했으니, 이제부터 무장해제하고 퐁당하고 빠져 보려 한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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