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우물 안 개구리의 입장

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일주 기록

by 정새롬

#베트남 #호치민 #구찌터널

#스테이크 #2017년3월


우물 안에서만 살던 개구리는 아마 우물을 참 좋아했을 것이다. 갑자기 밖에 나와 넓은 세상을 보았다고 해도, 늘 돌아갈 우물 안을 그리워했을 것 같다. 이것이 우물 안 개구리에 대한 나의 새로운 해석이다. 이러한 생각이 나온 배경에는 요즘의 내가 있다. 세상 곳곳을 여행하며 신기한 것도 많이 보고 몰랐던 사실에 '우와'를 연발하며 산지 어언 40일 정도 된 지금, 나도 대한민국 모처에 위치한 우리 집이 매우 그립기 때문이다. 지인들에게 익숙한 거리, 익숙한 개그, 익숙한 음식에 편안함을 느끼던 그 날이 새삼 그리워진다고 말하면 '배때기가 불렀다'라는 답변을 들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개구리는 가끔 우물이 그립다.

<정글 속에는 방어용의 다양한 트랩들이 설치 되어 있었다>

베트남 전쟁은 국가의 완전한 독립과 통일을 위해 뭉친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이 기존 남베트남 정부군과 대립하며 시작된 슬픈 역사였다. 처음 내전의 성격을 띠던 전쟁은 미국과 소련의 냉전체제 아래 대규모 국가들의 참전으로 걷잡을 수 없는 큰 싸움이 되어버렸다. 우리도 불과 67년 전 비슷한 아픔을 겪었다. 우리는 불행 중 다행으로 3년 만에 휴전에 이르렀지만, 이들은 1960년부터 1975년까지 장장 15년이란 세월을 아픔으로 물들여야 했다. 이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구찌 터널 CuChi tunnels'이 오늘 우리의 여행지이다.

<전쟁 당시 베트콩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치열했던 전쟁은 미국+남베트남 정부군 vs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베트콩)+북베트남군의 구도로 치뤄졌다. 당시 미군의 주력은 무차별 폭격이었지만, 베트콩에게는 자연환경인 정글과 피나는 노력의 산물인 땅굴이 있었다. 딱 봐도 미군이 더 쎈캐 같지만 은근한 힘을 가진 베트콩의 전술은 결국 베트남전을 미국이 유일하게 패전한 전투로 만들고야 만다.

<세상 철두철미한 사람들.>

이 땅굴 지도를 보면 그들이 이길 수밖에 없었음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땅굴은 무려 250km 정도나 되었고, 그 안에 생활에 필요한 모든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침실, 주방, 병원, 무기고, 식량창고, 무기 제조실 등등 없는 것이 없다. 주요 공간으로 이동하는 통로들은 몸집이 작은 베트콩들이 드나들기 딱 좋은 크기로 아주 좁게 만들었고, 심지어 그 사이사이에 미군이 따라 들어왔을 시 감쪽같이 숨거나 반대로 그들을 가둬버릴 수 있는 트랩 등을 만들어 두는 치밀함까지 엿보인다. 주방에서 나는 연기는 길게 파둔 굴을 통과하며 흙속에 최대한 스민 뒤 아주 소량만 정글의 나뭇잎들 사이로 빠지게 만들어 위치 노출을 최소화했다고 한다. 또 땅굴 안에서 자전거로 자가발전을 하여 전기를 만들었고, 그 불빛 아래서 무기들을 제조할 수 있었단다. 이러니 하늘에서 아무리 폭격을 가하고 전기 시설들을 파괴해도 그들을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베트남전 하면 영화 <알포인트>밖에 모르던 우물 안 개구리는 이렇게 또 새로운 배움에 놀람을 금치 못했다.

<세상 신기한 구경이었다.>

가이드가 앞서 가다가 바닥의 낙엽을 쓱쓱 치우더니 입구 하나를 찾아 보여주었다. 이건 정말 내 어깨 넓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아주 조그만 입구였는데, 놀랍게도 거구의 미국인 아저씨가 쏙 하고 빨려 들어가는 마술을 보여줬다. 표정에서 얼마나 힘든지가 엿보이는 와중에, 주변을 둘러싼 모든 사람들이 '대박''어후~''왓?''오우!''언빌리버블!!'등 세계 각국의 감탄사를 내뱉었다. 왜인지 통아저씨의 원리랑 매우 흡사해 보였다. 우리는 조금 더 걸어가 비교적 넓은 입구를 가진 다른 굴에 들어가는 체험을 선택했다. 굴 속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좁아졌다. 내 앞의 중국인 아저씨는 몸집이 커서 통로에 끼다시피 하며 겨우 그곳을 빠져나갔다. 반면 우리는 호빗족의 명예로운 후예로써 여유롭게 사진까지 찍으며 체험을 마쳤다.

<좀처럼 좁게 느껴지지 않는 땅굴. 베트콩 체형까지 완벽 체험.>

반나절 투어를 마치고 시티로 돌아오는 내내 시원한 버스에서 단잠을 잤다. 그리고 허기짐에 눈을 뜨니 도착. 시간은 2시가 조금 넘은 상태였고, 일부러 집 근처가 아닌 벤탄시장 근처에 내려 월남쌈을 파는 로컬 식당을 찾아갔다. 목욕탕 의자 같이 생긴 빨간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아 월남쌈과 새우가 들어간 야채 무침을 시켰다. 우리의 배고픔을 눈치채셨는지 아주머니는 초고속으로 음식을 내주셨다. 우리가 알고 있는 월남쌈은 직접 싸 먹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곳은 고기와 쌀국수와 새우와 야채들을 넣고 미리 싸놓은 것을 땅콩소스와 함께 준다. 한 입 베어 문 순간, 소스 맛에 뿅 가버렸다. 초대박 맛있는 소스였다. 비법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말이 안 통해서 그냥 밥을 다 먹고도 소스만 계속 젓가락에 찍어 먹었다.

<건강과 맛을 두루 갖춘 베트남 음식. 핵꿀맛.>

양껏 늦은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 늘어지게 낮잠을 잤다. 그리고 5시쯤 일어나 다음날 하기로 한 다른 투어 예약을 위해 호치민 배낭 여행자들의 성지라 불리는 '신투어리스트'를 찾아갔다. 여행사는 전 세계사람들이 투어를 예약하느라 북적였다. 우리도 그들 틈에 끼어 예약을 하고 서둘러 나와 저녁으론 무엇을 먹을까 돌아보았다. 더위와 매연과 오토바이의 삼박자 공격 속에 우연히 남편 마음에 쏙 들어버린 '동키'라는 이름의 펍. 이 이름이 왜 좋았는지는 아직도 미지수이지만, 그냥 슈렉이 생각나면서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가롭게 테라스 쪽 자리에서 맥주를 홀짝이는 외국인들을 지나 안쪽에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폈다. 아낌 생활에 익숙해져 너무 아끼다 보니 예산이 여유 있게 남은 상황이라, 139동(약 7천 원)짜리 스테이크&감튀 메뉴를 시켰다. 사실 펍에서 파는 스테이크라 별로 기대는 안 했다. 그저 남편의 맥주 안주, 나의 저녁밥 메뉴의 교집합인 것 같아 고른 것일 뿐이었다.

<스테이크 맛집 동키. 널 만나서 행복했다.>

하지만 반전이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맛있는 스테이크를 이곳에서 맛보게 될 줄이야. 적당하게 구워진 고기는 육즙을 가득 머금고 있었고, 양도 둘이 먹으면 적당히 배부를 정도로 넉넉했다. 진짜 고기가 너무 부드러워서 입에 넣으면 그냥 사라졌다. 함께 나온 감튀도 바삭하니 맛났다. 쌀국수의 도시에서 스테이크 맛집을 찾다니. 정말 웃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호치민 여행 계획 있으신 분은 여행자거리 '동키'에 가셔서 '비프스테이크 윗 프렌치프라이'라는 메뉴를 꼭 먹어보시길 추천한다. 혹시나 해서 이틀 연속으로 가서 먹었는데 두 번 다 환상이었다. 이만하면 검증은 된 것 같다.

<지나치게 완벽한 너란 스테이크.>

그렇게 우물 안 개구리는 스테이크로 인해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잠시 잊고, 지인들이 했을법한 '배때기가 불렀다'는 말을 현실화시켰다. 입에 착착 감기는 맛있는 음식들이 입에 들어오니, 건강을 해치며 야식을 먹던 고향에서의 나날들이 떠올랐다. 그 치명적인 세계에서 손 씻고 아니 입 씻고 나와 건강을 되찾고 있는 요즘이었는데, 잘 때마다 이 맛이 생각나 곤란해졌다. 그래도 베트남 여행 간다는 사람에게 자신 있게 추천해줄 나만의 맛집을 찾았다는 것에 굉장히 희열을 느끼고 있다. 1년 뒤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로 돌아가는 날, 아마 그 속은 난리가 날지도 모르겠다. 우선 가자마자 밖을 내다볼 수 있게 수면을 껑충 높이고, 그곳에서 유유히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각국의 맛집을 소개해줄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언제든 나올 수 있는 우물 속에서 개구리는 아주 행복해할 것이다. 진정한 자유는 자신의 삶을 언제든 새롭게 쓸 수 있는 용기에서 나오는 법이니까. 그래서 오늘도 나는 열심히 우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나의 우물이 보다 멋진 우물로 탈바꿈할 그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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