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마음이 말랑한 날

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일주 기록

by 정새롬

#베트남 #호치민 #메콩강

#2017년3월


살다 보면 유독 마음이 말랑한 날이 있다. 조그만 바람에도 울렁울렁 기분이 들뜨고, 땅만 바라보던 다른 날들과는 달리 하늘을 더 자주 바라보기도 한다. 그런 날의 하늘은 유달리 예쁘다. 동남아는 날씨가 더운 대신 하늘과 나무의 색감이 지브리 애니메이션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비주얼을 지닌다. 가던 길을 멈추고 멍하니 입을 벌린 채 하늘을 바라본다. 그러면 가끔 벌레도 먹을 뻔하고, 앞서 가던 남편이 저만치 멀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순간을 어찌 즐기지 않을 수 있을까. 사진까지 찍고 뿌듯한 얼굴로 다시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간지러운 기분에 빙구처럼 히죽대다 보면 남편이 '제발'이라는 뜻의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오늘인데도? 이런 하늘인데도?'라는 뜻의 표정으로 한층 더 빙구 웃음을 지어 보인다.

<워. 색감이 뭐가 이렇게 만화만화해.>

오늘은 여행사를 통해 메콩강을 가보기로 했다. 이 강으로 말할 것 같으면 중국 티베트에서 출발하여 미얀마, 라오스, 타이, 캄보디아, 베트남을 지나는 동남아시아의 젖줄이라 불리는 어마어마하게 긴 강이다. 강가에는 현지인들이 살아가는 집들이 길게 이어져있고, 그 사이로 배들이 각자의 역할에 따라 흘러가고 흘러온다.

<아이가 노란 옷을 입고 파워 귀여움을 선보이고 있음>

과일 가게, 식당, 잡화점 등 없는 게 없는 수상 시장은 참 색다른 문화라는 생각이 든다. 이동하는 가게라니. 참신하다. 집 근처에 가게가 오면 물건을 사거나, 해당 가게 배(?)가 있는 곳으로 자가 배(?)를 이용해 다가가는 식으로 이용하는 듯했다. 우리도 과일가게 근처에 타고 온 배를 대고 구경에 들어갔다. 배를 넘어가는 것도 아주 스릴리 넘친다. 자칫 발을 잘못 디디면 누런 메콩강과 진한 포옹을 나누게 될 가능성이 크다. 나도 최대한 조심조심 과일 가게로 진입을 시도했다. 그리고 이름을 물어보았지만 까먹은 과일 하나를 사 먹었다. 달달하니 맛있어서 또 먹고 싶었지만 뭍에 시장에서는 더 싸게 팔 것 같아 그냥 재미로 하나만 먹고 말았다.

<물 위에 둥둥 떠있는 과일가게! 신기하다!!>

다시 통통통 배를 타고 어떤 강가 마을로 이동했다. 거기서 이빨 빠진 예쁜 찻잔에 꿀차도 마시고, 옆 마을 가서 라이스페이퍼 만드는 것과 코코넛 캐러멜 만드는 것도 구경했다. 모두 처음 보는 신기한 광경이었다. 특히나 라이스페이퍼 만드시는 분은 손기술이 장난이 아니었다. 얇고 넓게 만들어진 페이퍼는 조금만 잘못해도 자기들끼리 막 붙어서 뭉쳐버린다. 하지만 장인의 손길은 붙음도 뭉침도 없이 신속 정확하게 착 떠서 착 펴서 착 널었다. 나도 모르게 혼자 짝짝짝 박수를 치고 말았다. 1초간 민망함이 흘렀지만 이내 라이스페이퍼 장인께서도 나에게 미소를 보내 주셨다. 휴. 안 웃어 주셨으면 이불 발차기 감이었는데 다행이다.

<이가 빠져도 예쁜 찻잔. 그리고 달인의 라이스페이퍼 제조 현장.>

그리고 새롭게 안 사실인데 이곳도 튀밥으로 강정 같은 것을 만들어 먹는다. 그런데 이 튀밥을 만드는 방법이 아주 독특하다. 강에서 퍼 올린 검은 모래를 깨끗하게 씻어 말린 뒤 커다란 팬에 넣고 필요한 온도가 될 때까지 불을 피워 뜨겁게 데운다. 알맞게 뜨거워진 모래에 도정하기 전의 쌀을 넣는다. 모래와 함께 잘 볶아주면, 쌀이 뒤켜져 새하얀 튀밥이 퐁퐁하고 튀어 오른다. 그러면 1차적으로 체에 쳐 모래를 거르고 추가적으로 두 번 더 쭉정이와 모래를 걸러내는 작업을 한다. 그리고 나면 뽀얀 튀밥이 완성! 맛도 아주 고소하니 우리나라 튀밥이랑 똑같았다. 다만 길쭉한 쌀을 사용하기 때문에 모양이 조금 다르다. 이걸로 강정을 만드는데 그 맛도 우리나라 것과 아주 흡사하다.

<먹을 때 모래가 안 씹히는게 신기방기>

튀밥을 먹은 뒤 마을 구경에 나섰다. 이곳 사람들은 알록달록한 색을 좋아하는 것 같다. 자연이 이렇게나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색들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보고 살아온 사람들 역시 취향이 알록달록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들의 안목은 항상 매력적이다. 집 앞마당에서 펄럭이는 푸른 꽃무늬 이불과 짙은 밤색의 창문 그리고 붉은 문과 푸른 하늘. 뾰족뾰족한 지붕에 걸린 하얀 구름들도 한몫한다.

<요즘 꿈 같은 장면을 맨 정신으로 봅니다 제가 허허>

점심 식사는 관광객 전용 느낌이 물씬 나는 곳이었는데, 이곳 메콩강의 명물 민물고기인 코끼리 귀 물고기를 비롯해 밥과 몇 가지 반찬이 나왔다. 이 물고기 맛은 좋은데 생긴 것이 굉장히 비호감이다. 하지만 얼굴 안 보고 몸만 보고 먹으면 괜찮다. 같이 나온 국이나 반찬들도 굉장히 맛있었다. 차려진 과일까지 완벽히 흡입하자, 세 명의 사람이 등장해 노래를 부르며 공연을 펼쳤다. 그리고 바구니 하나씩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갔다. 잔돈이라도 내려고 가방을 뒤지는데, 오늘 투어에 같이 다니게 된 한국인 아주머니 두 분이 장기 여행자는 아껴 써야 한다며 본인들이 낼 테니 넣어두라고 하셨다. 밥 먹고 커피도 사주시고, 잠시 들른 곳에서 바나나 코코넛 찰밥(?) 같은 것도 사주셨다. 사실 그 두 분이 카드에 문제가 생겨 ATM 이용을 못하신다길래, 가지고 계신 한화를 우리가 찾아둔 달러로 조금 바꿔드린 일이 있었다. 전에 우딘이 잘 해준 일을 계기로 우린 도울 수 있는 사람은 할 수 있는 한에서 돕기로 결심했었다. 그래서 한 일이었고 또 큰 일도 아니었는데 이렇게 이것저것 챙겨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으면서도 참 감사했다.

<진짜 비호감 주의. 1초 이상 못 보겠음.>

투어가 끝나자 배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시티로 돌아왔다. 도착하고 보니 어둑어둑 저녁이 가까웠다. 밥을 먹고 들어가기로 한 우리는 며칠 전부터 숙소 앞에 점찍어둔 노상 음식점에 가기로 했다. 좁은 골목 사이에 간이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우리는 맘에 드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월남쌈 2개와 국수 한 그릇을 시켰다.

차차 내려앉는 어둠에 작은 가로등이 치지직 소리를 내며 켜졌다. 먹는 내내 옆으로 오토바이들이 지나갔다. 불편하고 싫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우리에겐 그저 낭만이었다. 아무거나 잘 먹고 아무데서나 잘 자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함 또한 '아무'의 범주에 속한다. 이런 곳의 특징은 음식이 아주 싸고 아주아주 맛있고 분위기가 좋다. 우리는 돈이 없고, 배가 고프고, 분위기에 껌뻑 죽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보다 딱인 곳은 없다고 본다.

<골목의 한 쪽 벽, 은은한 가로등>

여행이 깊어질수록, 별것 아닌 것에서 느끼는 감동의 크기가 점점 커진다. 행복은 정말 아무 곳에나 있다. 지켜야 하는 것이 많았던 한국에서의 시간들은 행복했지만 언제나 늘 불안했었다. 지금도 1년 뒤를 생각하면 아주 편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작은 행복들을 찾아가는 이 시간이 좋다. 행복의 방법을 조금씩 주워 담고 있는 이 마음으로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그리고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좋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오늘도 행복했다. 그리고 내일도 분명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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