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앙코르의 전설

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by 정새롬

#캄보디아 #씨엠립 #앙코르유적

#앙코르톰 #2017년3월


나의 종교는 기독교이다. 이것은 내 신념들의 시작이자 뿌리이다. 때문에 서른한 해를 살고 있는 지금까지, 다른 종교에 대한 관심이 크게 없었다. 아마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었던 것 같다. 하지만 동남아를 여행하며,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힌두와 불교 그리고 이슬람에 대한 공부는 필연적인 것이 되었다.

<진정한 오프로드를 달리는 나란 남자>

이곳 캄보디아 씨엠립은 매년 앙코르 유적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수백만명의 사람들로 늘 북적인다. 수입원이 관광과 농업 그리고 어업으로만 이루어져 있을 만큼 이 유적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참 많다. 조상 덕에 후손들이 배부른 아주 좋은 예인 셈이다. 날 숙소에 툭툭 기사님을 섭외해 달라고 요청을 드렸다. 하루 15달러(약 16,500원) 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리가 원하는 일정에 맞추어 이동해준다. 저 늠름한 등짝은 우리와 2일간 함께한 '먼'이라는 이름의 기사 청년이다. 나이는 대략 20대 후반? 정도 되어 보이며 훈남이다. 매너와 안전을 겸비한 운전 실력과 어딜 가나 우릴 잘 찾아내는 예민한 촉의 소유자. 남방 뒷자락을 흩날리며 정글을 달리는 그의 뒷모습이 참 든든하다.

<우어. 코끼리가 코 앞에 막 지나간다. 신기.>

그 옛날 크메르 제국의 수도였던 이곳은 9세기부터 15세기까지 어마무시하게 부귀영화를 누렸다고 한다. 하지만 태국의 침략을 막아내지 못하고 멸망하여, 거대한 정글 속에 감추어지게 되었다고. 이후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 19세기 중반쯤이다. 우린 과거의 그 찬란했던 흔적을 엿보기 위해 30분을 달려갔다. 투어를 예약한 것이 아니라, 직접 공부해서 구경해야 했기에 지난밤 늦게까지 앙코르 관련 책자를 읽었다. 그것도 모자라 툭툭에서도 책을 펼쳤다. 남편에게 1일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호언장담을 왜 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여하튼 우리는 맨 처음 '앙코르 톰 Angkot Thom'의 남쪽 문 앞에서 내렸다. 우어. 갑자기 코끼리가 내 옆을 지나간다. 문화충격. 코끼리는 동물원에서 저 멀리 우리 안에 있을 때 본 것이 다였는데, 웅장하고 우아한 걸음으로 나와 함께 걷고 있다니. 정말이지 놀라운 날이다.

<바수키의 몸을 붙들고 열심히 휘젓기 중인 선신과 악마들>

앙코르톰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남문 앞에는 힌두교의 창조 신화 중 하나인 '우유 바다 휘젓기'가 묘사된 다리가 있다. 좌측에는 험상궂은 악마 '아수라'가 우측에는 인자한 선신'데바'가 쭉 이어져 있고 각자 손에는 거대한 뱀 '바수키'의 몸통이 들려있다. 간단히 내용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어떤 이유로 선신들이 저주를 받아 힘을 잃어 악신들이 활개를 치던 어느 날 선신이 악마에게 같이 바다를 휘저어서 그 안의 영생의 약인 '암리타'를 꺼내 나눠 마시자고 딜을 해왔다. 악마는 이에 즉시 콜을 외쳤다. 그래서 신들이 산다는 '루산'을 뽑아다가 회전축으로 삼고, 거기다가 거대한 뱀 '바수키'를 둘러 머리는 악마가 꼬리는 선신이 잡은 뒤 천 년 동안 우유 바다를 휘젓는다. 그 결과 영생의 약 '암리타'와 6억 명의 댄서'압사라'와 해, 달, 보물, 신성한 흰 암소등이 생성되어 세상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아수라 눈에서 레이저 나오기 일보직전>

그들이 열심히 우유 바다 휘젓기를 하는 다리를 지나면 상단에 커다란 사면상이 있는 문이 나온다. 이것이 누구인가에 대한 여러 설이 있는데, 크메르 제국에서 가장 인기쟁이였던 왕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이라는 설이 가장 신빙성 있다고 한다. 자야바르만 7세 이전의 왕들은 신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강압적인 정치를 했다면 그는 부처와 자신을 동일시하여 자비로 백성을 보호한다는 의미를 강조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신전뿐 아니라 병원, 학교 등의 건물들도 많이 지었고, 결국 건축 왕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먼이 사진도 잘찍는구먼 ~ 읭?ㅋㅋ>

문 안쪽으로 들어와 다시 툭툭을 타고 10분을 달리니 우리의 첫 목적지 '앙코르 톰 Angkot Thom'이 드디어 나타났다. 앙코르 톰은 특정 사원의 이름이 아닌, 도시의 이름이라고 보면 된다. 쨍한 해 아래 수백 년이 지난 돌 사원은,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이곳은 자비의 왕 자야바르만 7세가 지은 신전으로 불교 사원이다. 여기서 이상한 것 하나. 불교 사원인데 들어오는 입구에 왜 힌두 설화 다리가 있는가. 처음에는 뭔가 앞뒤가 안맞는 것 같아 굉장히 이상했다. 하지만 불교도 일정 부분 힌두에 뿌리를 두고 있고 또 자야바르만 7세 이전과 이후는 거의 다 힌두를 믿었기 때문에 두 종교가 자연스럽게합된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앙코르톰의 정중앙에 있는 바욘사원>

이곳은 앙코르톰의 첫 사원 '바욘 Bayon'이다. 구경의 핵심은 회랑의 부조이다. 좌우로 길게 난 벽면을 따라 이어지는 섬세한 조각들은 당시 생활상과 힌두의 설화, 왕의 업적들로 이루어져 있다. 아이를 낳는 여인, 물건을 파는 상인, 전쟁에서 승리하여 연회를 즐기는 사람들 등 정적인 조각임에도 당시의 왁자한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듯한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님들>

무슨 이유에서인지 여인의 어깨에 손을 두른 남자 주변으로 세 명의 남자가 다가온다. 한 명은 무릎을 꿇고 여인의 손을 잡고 있고, 두 명은 손가락으로 남자와 여자가 있는 쪽을 가리킨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저 여자가 소문의 초절정 미녀인가 봐'내지는 '저 녀석 예쁜 색시 얻어 장가가는구먼' 정도가 아닐까 상상해본다.

<표정에서 전투의 삼엄함이 느껴진다>

이건 참족과의 전쟁을 묘사한 부분인데, 베트남에서 온 참족은 머리에 꽃모자 같은걸 쓰고 있다. 아래 물고기들을 보니, 배를 타고 해상전을 하던 모습인 것 같다. 공격당한 크메르 군인들이 물속으로 떨어져 죽어가는 모습이 잔인할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정말 이 사람들 극사실 주의를 지향했나 보다.

<에헤이. 이보세요들 그만 마셔요. >

전투에서 이긴 후 왕이 잔치를 베풀었고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서빙을 하고 있다. 잔을 저렇게나 많이 나르고 있는 걸 보니, 다들 꽐라가 될 때까지 마시는 중인 것 같다. 술을 받아가는 사람들 표정이 아주 신났다 신났어. 이렇게 디테일하고 재미있는 장면이 많기 때문에 우리처럼 개인적으로 책 들고 가서 보면 2시간은 족히 든다.

<화근이 된 베트남 모자ㅋ>

사원 안쪽은 여러 겹의 프레임이 겹쳐진 듯한 형태의 문들이 이어진다. 그 고즈넉한 멋을 즐기며 걷고 있는데, 사원 관리자가 남편에게 모자를 벗으라고 주의를 주었다. 나도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나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른 외국인들에게도 별다른 말이 없었다. 왜일까 계속 궁금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주의를 못 듣고 그냥 다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는데, 그 사원에서도 또 남편한테만 주의를 줬다. 가만 생각해 보니 날씨가 더워 베트남에 있을 때 구매했던 모자 '논'이 문제인 것 같았다. 그래서 관리인한테 물어보니, 베트남과 캄보디아가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사이가 좋지 않아서라고 했다. 맙소사. 이것은 마치 기모노를 입고 경복궁에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얼른 사과를 하고 모자를 벗었다. 사정을 알고 나니 들고만 다니는 것도 미안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이렇게 아직도 모르는 것이 참 많다.

<차곡차곡 쌓인 시간의 형태를 눈으로 볼 수 있었던 장소들.>

바욘을 지나 조금 더 가면 흔적만 남아 있는 '바푸온 Bapuon' 사원이 나오고 또 조금 더 가면 왕이 일도 하고 잠도 잤던 왕궁이 나온다. 그리고 왕궁 옆에는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넓은 목욕탕이 나온다. 어째서 이것이 연못이 아니고 목욕탕일까. 때 밀어주는 사람 100명이 같이 들어가는 걸까.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왕궁 앞으로 길게 뻗은 길을 따라 나가면 코끼리 테라스와 문둥왕 테라스가 나온다. 코끼리 테라스는 전쟁을 마치고 돌아온 군인들을 맞이하는 곳이었고, 문둥왕 테라스는 그곳에서 발견된 동상에 이끼가 많이 끼어 있어서 문둥병에 걸린 듯한 모습이라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가보니 이끼는 없앤 듯 보이는데, 장난인 것인지 종교적 의식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누군가가 연지곤지에 입술과 손톱까지 붉은색으로 칠해놓았다. 사실 이 동상은 왕이 아니고 힌두 신화 속 저승사자 격인 '야마'이다. 때문에 이곳이 재판을 행하던 장소라는 설도 있다.

<립밤 완판 저승이로 등극할 수 있을 듯한 자태>

아침 8시부터 해가 뜨거워지기 시작하는 11시 반까지만 구경을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이 곳은 지금 건기에다 가장 더울 시기이기 때문에 점심식사를 하고, 조금의 휴식을 취한 뒤 에너지를 충전하여 3시쯤 다시 구경에 나서는 게 보통이라고 한다. 우리도 근처에서 2달러짜리 볶음밥과 1달러짜리 샌드위치를 사 먹고 에어컨 아래서 낮잠을 잤다. 점점 바이오리듬까지 현지화되고 있는 듯하다.

<버려진 사원이라 더 오묘한 느낌이 든다>

기운을 차리고 3시쯤 다시 유적 구경에 나섰다. 오후 첫 방문지는 미완의 사원 '따께오 Ta keo'이다. 말 그대로 이걸 짓기 시작한 왕이 중간에 별세하여 공사가 중단된 사원이다. 다음 대 왕이 계속 이어서 지어주어야 하는데, 다른 사원들 짓는데 집중을 해서 그냥 버려진 셈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부조들도 없고, 그냥 외형만 갖추고 있다. 그래도 역사적으로 의의가 있는 점은 최초의 사암으로만 만든 사원이라는 점과, 높이가 어마무시하다는 것이다. 나도 중앙 성소가 있는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 보려고 했지만, 네 발로 기어 올라가도 느껴지는 그 오싹한 높이를 이기지 못하고 가다가 내려와 버렸다. 남편은 더워서 아예 시도도 하지 않았고, 내가 어기적거리며 올라가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었다. 그리고 행복해했다. 옛다 많이 찍어라.

<붕괴의 위험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 많다. >

버려진 사원을 뒤로하고 찾아온 '따프롬 Ta Prohm'. 이곳은 인자한 자야바르만 7세가 그의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만든 사원인데, 거대한 스펑 나무가 사원 구석구석에 퍼져 기이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어 툼레이더의 배경으로도 사용된 곳이다. 실제로 만난 사원은 정말 나무와 뒤엉킨 곳이 많았다. 나무가 천천히 사원을 붕괴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것을 떼어내면 바로 주저앉아 버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손을 댈 수 없다고. 나무 모양도 정말 괴기스러워서 가만히 보고 있으면 으스스한 기분마저 든다.

<나무 뿌리와 혼연일체가 된 사원은 언제 봐도 신비롭다.>

따쁘롬에는 유명한 방 두 개가 있는데, '어머니의 방'과 '통곡의 방'이다. '어머니의 방' 벽에는 작은 구멍들이 많이 나있는데, 이곳에 보석이 종류별로 박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바닥에는 500kg 즉 13만 3천 돈 정도의 금이 들어간 접시 두 개가 놓여있어, 천정에 뚫린 구멍에서 들어오는 빛을 반사하여 방 안의 보석이 온통 제각각의 빛을 냈다고 전해진다. 상상도 못 할 화려함이다. 정말 스케일부터가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통곡의 방'은 그 방에 들어가 중앙쯤에 서서 가슴을 치면 '퉁'하는 울림소리가 들리는 신기한 곳이었다. 다른 부위를 치면 소리가 안 난다. 가슴을 쳐야만 소리가 나는 구조이기 때문에, '통곡의 방'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 같다.

<석양을 받아 따듯한 색감으로 옷을 갈아입은 사원>

그리고 해가 지는 모습을 보기 위해 찾아간 마지막 사원 '쁘레 룹 Pre rup'. 이곳은 과거 왕실 사람들의 화장터로 사용되던 곳이어서 마당 한편에 석관이 놓여있다. 우리는 천천히 계단을 타고 중앙 성소가 있는 꼭대기로 올라갔다. 하늘 위에서 맹렬하게 타오르던 해가 천천히 서쪽을 향해 기울어 가며 사원을 붉은빛으로 물들였다. 낮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몇백 년 전 사람들이 드나들던 이곳에 앉아 저무는 해를 바라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벅참이었을까, 아니면 모든 죽어가는 것들에 대한 묵념이었을까. 저무는 시간은 나에게 그렇게 아름답고도 슬픈 순간이었다.

<모든 것이 막을 내리는 순간>

가슴에 잊지 못할 장면을 담고 순간을 등진채 아래로 내려왔다. 조금씩 어둠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서둘러 툭툭을 타고 흙먼지를 날리며 과거 빽빽한 정글이었던 곳을 달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무 사이로 이따금씩 가로등이 보였다. 이제 과거라 부를 수 있는 것들보다 현재라 부를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아진 이곳 씨엠립에서, 앙코르 사원들은 여전히 많은 여행자에게 역사로 향하는 이정표가 되어주고 있다. 나에게 오늘은 책과 TV 속에서만 보던 일방적 지식이 아닌, 오래된 역사의 흔적과 교감하며 만들어가는 지식이 더없이 즐거운 하루였다. 더위에 지치기도 했지만 지쳐도 좋을만했다. 나의 감정에 대해 또 눈 앞의 사실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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