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캄보디아 #씨엠립 #앙코르왓
#일출 #닥터피시 #2017년3월
새벽 4시 반. 눈곱만 간신히 떼고 뚝뚝에 올라탔다. 그 유명한 앙코르왓의 일출을 보기 위해 밤이 채 지나지 않은 새벽길을 30분간 달렸다. 입구에 도착하니 열명 남짓한 사람들이 우리처럼 좋은 자리를 맡기 위해 일찍부터 나와있었다. 주변은 정말 어두컴컴했다. 잠시 기다리니 어둠 속에서 경비원들이 나타났고, 티켓 검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천천히 사원의 성벽 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우리는 그저 어디가 어딘지 분간도 못하고 앞사람이 가는 대로 따라만 갔다. 앙코르왓은 어둠에 둘러싸여 돌 부스러기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일출은 명당으로 소문난 연못가에 걸터 앉아 보는 것이 보통이라 조심스럽게 자리를 선정했다. 그리고 긴긴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남편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한 시간 가량을 보내고 나니 거대한 전설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연못 위로 검은 실루엣을 늘어뜨리고 고요하게 우릴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느리게 느리게 단장을 시작했다. 곱게 빗어낸 구름을 늘어 뜨리고, 붉은 태양으로 치장한 사원은 아름다우면서도 수수했다. 앙코르왓은 늘 그래 왔듯이, 연못가에 자신을 비춰가며 공들여 매무새를 고칠 것이다. 때문에 새벽과 아침 그리고 오후가 모두 다르다는 앙코르왓. 그 한계 없는 매력에 경계 없이 빠질 준비가 모두 끝났다.
차츰 사람들로 북적이는 앙코르왓을 뒤로하고 6시 반쯤 다시 툭툭에 올라탔다. 앙코르왓의 부조(조각)들은 오후 시간에 봐야 더 선명하게 잘 보이기 때문에, 시티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반떼이 쓰레이 Banteay Srei' 사원을 먼저 구경하기로 했다. 이 사원은 '여인의 사원'이라고 불릴 만큼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프랑스의 유명한 소설가가 이곳에 있는 데바타 여신상 3개를 밀반출하려다 적발된 사건도 있었다고. 그런 짓을 하고도 프랑스 정부가 힘을 써줘서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다고 한다. 아마 짜고 친 고스톱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원은 듣던 대로 섬세한 부조들로 가득했다. 유독 곡선을 강조한 부분들이 많았으며 탑문 곳곳에 다양한 힌두 설화가 조각되어 있었다. 이 사원은 왕자들의 스승이었던 사람이 왕에게 땅을 하사 받고, 그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건설한 사원이다. 때문에 높고 웅장하게 짓는 것이 목표였던 기존 왕가 사원들과는 달리 층 없이 눈높이에 맞게 지어졌다. 어딜 기어오르지 않고도 관람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원이 아닐까 생각된다. 정신 놓고 구경하다 보니 그 유명하다는 데바타 여신상은 사진도 안 찍었다. 나참. 결정적인 순간에 사진을 안 찍는 이 버릇은 언제쯤 고쳐질까.
한 시간 반 가량 굼뜨게 사원을 둘러본 뒤 다시 우리의 훈남 툭툭 기사 '먼'과 함께 숙소로 가는 긴 여정을 시작했다. 가는 길에 서너 개의 마을을 지나는데, 자전거 타고 삼삼오오 학교 가는 아이들과 많이 마주쳤다. 걸어가는 아이들도 많았는데, 안녕하고 손을 흔들면 꺄르르 대며 손을 흔들어준다. 세상 어딜 가나 아이들의 웃음은 예쁘다.
그다음으로 많이 보게 되는 장면은 바로 흰소다. 이곳에는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누렁소가 거의 없다. 그리고 이 흰소 불쌍할 정도로 뼈가 보인다. 아마 사료를 먹이거나 억지로 살을 찌우지 않고, 자연에서 풀만 먹이면서 기르기 때문에 그런 거 같다. 때문에 고기 질이 매우 좋다고 한다.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먹어봐야겠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이 살짝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 때쯤 툭툭이 매연 가득한 도심으로 진입했다. 숙소에 다다랐다는 의미이다. 일찍도 너무 일찍인 시간에 일어난 터라 얼른 이 눅눅함을 씻어내고 뽀송한 침대에 눕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배도 고팠다. 참 인간은 손이 많이 가는 존재다.
게스트하우스에서는 간단한 조식이 제공되는데, 바게트와 계란 프라이 그리고 커피 한 잔이다. 근처 마트에서 거금 3달러를 주고 산 크림치즈와 2달러짜리 우유까지 곁들이면 든든한 아침식사가 완성된다. 우적우적 빵을 먹는데 미친 듯이 눈이 감겼다. 졸다 먹다를 반복하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남은 빵을 입안에 모두 욱여넣고 방으로 올라왔다. 세수만 간단히 하고 쓰러지듯 침대에 누워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뭔가 엄청 힘든 꿈을 꾸던 중 알람이 울렸다. 오후 2시 30분, 좀비처럼 일어나 옷을 주워 입고 세수를 하고 썬크림을 덕지덕지 바른 뒤 툭툭에 올라탔다.
오후의 앙코르왓은 새벽과는 많이 달랐다. 내려가는 해는 올라오는 해보다 더 따듯한 빛을 가진 듯하다. 온화한 얼굴의 사원을 바라보며 신선한 감동과 함께 1층 회랑 구경을 시작했다. 부조는 사원의 동서남북 네 면에 모두 조각되어 있는데, 각 면의 중앙에 나있는 문을 중심으로 좌우 내용이 나뉜다. 그리고 처음 들어서는 입구가 서쪽이어서 서쪽 회랑부터 관람을 시작하게 된다.
서쪽 회랑의 왼쪽 파트에는 힌두 신화 중 라마야나의 '랑카 전투'가 그려져 있는데, 디테일하기가 아주 이를 데 없다. 전체적으로 선신의 군대인 원숭이 병사들과 악신의 병사들이 치열하고 무서운 전투를 치르고 있지만, 그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안습 장면 두 가지를 소개하고 싶다. 첫 번째는 원숭이 병사의 혓바닥 어택이다. 혓바닥을 낼름 낼름 내밀어 악신 병사의 눈에 아밀라아제 투입. 눈을 뜰 수 없게 되는 순간 마무으리ㅋ 중간에 가까워질수록 착한 팀이 승리하는 방향으로 전개되는데, 이들은 점점 다양한 전투 방법(?)을 구사한다.
중요 부위 깨물기 공격. 방어하지 못하게 상대의 손목을 붙잡는 영악함이 돋보인다. 물린 악신 병사의 표정이 정말 '아야야 사람 죽네'하다. 벗어날 수 없는 영원한 고통이 바로 저런 것일까. 공감해 줄 수 없음에 유감을 표한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동쪽 회랑에 들어서자 익숙한 신화인 '우유 바다 휘젓기'가 나온다. 동쪽 회랑 전면이 이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중앙에는 유지의 신 비슈누가 있고 좌로는 악신 우로는 선신들이 거대한 뱀 바수키의 몸을 잡아당기고 있다. 이 휘젓기가 얼마나 강력했는지 중심축으로 사용한 메루산의 아래쪽에 있는 바다 생물들이 모두 갈기갈기 찢어지고 있다. 바로 이런 장면들이 부조에 생동감을 더하는 감초 역할을 한다.
왕국의 쇠퇴로 부조의 디테일이 떨어지는 북쪽 회랑을 지나 앙코르왓의 메인 관람지인 중앙 성소로 올라갔다.
앙코르왓 이곳저곳에 무수히도 조각되어 있는 압사라는 천상의 땐서(?)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압사라는 신들이 우유 바다 휘젓기를 할 때 6억 명이나 탄생했다고 한다. 6억 명이라니. 거 과장이 너무 심한 거 아니요.(암살 이정재.ver) 재미있는 감상 포인트는 머리 모양, 손동작 등이 모두 다르게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착용한 장신구까지 하나하나 따져보고 구경하는 맛도 쏠쏠하다. 수많은 압사라를 지나면 하늘 높이 솟아 있는 중앙 성소를 만날 수 있다. 하루에 300명만 한정 입장이 가능한 이곳에 가기 위해 우리도 긴 줄에 합류했다.
기다리는 동안 땀이 주룩주룩 흘렀지만, 더위를 잠재우는 고즈넉한 사원의 멋이 지루함을 잊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드디어 다가온 3층 성소 방문의 기회. 목걸이로 만들어진 허가증을 걸고, 높은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사원을 둘러싼 정글이 한눈에 내려다보았다. 푸르른 초록의 품에 몸을 누인 사원은 마치 그림 같았다. 네모진 창에 더해진 곡선의 창살들은 강렬한 해를 한숨 가라 앉혀 온순하게 맞이하도록 도와주었고, 그렇게 잔잔히 흘러든 햇살 자락은 마음까지 차분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이곳에서 머리로 이해하려는 노력은 더 이상 필요치 않아 보였기 때문에 손에 든 많은 것들을 가방 안에 넣고, 아무 말 없이 가만히 회랑을 거닐었다.
모두에게 기회가 돌아가게 하기 위해 관람은 15분으로 제한이 되어 있었다. 저물어가는 해와 함께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계단을 내려왔다. 떠나 오기 전 1년간의 긴 여행을 통해 무엇을 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참 많이 궁금했었다. '아무것도 나에게 남지 않으며 어쩌지'라는 걱정도 많이 했다.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여행은 우리에게 자발적 공부의 즐거움을 알려주었고, 능동적으로 갈등 상황을 헤쳐 나가는 지혜를 가르쳐 주었다. 또한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동시에 타인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는 의연함을 주었으며, 부지런함과 게으름의 절묘한 조화가 얼마나 삶에 이로운지를 알게 해주었다. 한편으로는 이런 삶이 불가능한 대한민국에 조금 분하기도 했다. 하지만 화만 내고 있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그 굴레를 끊어내고도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늘 고민하고 있다. 여행이 이 바보 같은 질문에 현명한 답을 내어 놓아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툭툭 기사님께 씨엠립에서 가장 번화한 펍 스트릿에 내려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내리고 보니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예쁜 인테리어의 펍들이 넘치고 넘치는 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맥주는 50센트(약 600원) 칵테일은 2달러로(약 2200원) 애주가들의 천국이 아닐 수 없었다. 저녁을 간단히 먹고 거리를 걸었다. 작은 노점들이 쭉 이어진 거리에서 거미와 전갈 뱀 등을 튀겨 꼬치로 파는 곳을 만났다. 사 먹으면 사진 찍기가 공짜이지만, 안 사 먹는다면 50센트를 내야 찍을 수 있었다. 용기 있게 왕거미 튀김을 먹고 있는 서양인에게 괜찮냐고 물었더니, 쿨하게 '괜찮아. 바삭해'라고 말했다. 거짓말. 근데 너 표정이 왜 그래? 다 티 나거든ㅋ
조금 더 걸어 올라가니 한국에서 한 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다가 홀연히 사라진 닥터피시 체험장이 나타났다. 2달러를 내면 맥주나 음료 한 캔을 주고 30분 동안 물고기들한테 발을 뜯길 수 있다. 우리보다 먼저 체험 중인 서양인 가족에게 괜찮냐고 또 물어보았다. 나쁘지 않다고 하여 나도 발을 넣어 보았는데 뭐지 이 느낌은. 소스라치게 놀라서 발을 빼고 난색을 표하자 아이들이 깔깔대고 웃는다. 그때 아빠로 추정되시는 분이 들어와 내 옆에 앉으셨다. 그랬더니 물고기 한 50마리가 떼로 그쪽으로 몰려갔다. 그리고 옆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남편의 발에도 한 30마리 정도가 붙어있었다. 나와 여자아이와 남자아이 발에는 10마리도 채 되지 않았다. 각질의 부익부 빈익빈인가. 넘나 괴상한 느낌을 참다 참다 한 15분 뒤 밖으로 나왔다. 돈 내고 이놈들의 먹이가 된 것 같은 요상한 이 기분은 뭘까. 남편은 나보다 한 5분 정도 더 있다가 나왔는데, 그 많던 각질들이 사라지고 아기발이 되었다. 갑자기 물고기들이 걱정되었다. 내일 아침 모두 배를 보이고 물 위에 뜨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얼른 물기를 닦고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아주머니 죄송해요ㅋㅋ
땀과 기름에 쩌든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와 깨끗하게 맑게 자신 있게(?)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새벽 4시부터 밤 10시까지 이어진 오늘의 일과가 단 하루라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중간에 낮잠을 자서 그런지 한 3일은 지난 것 같은 효과가 있었다. 여하튼 내일부터는 유적 관람 대신 유유자적을 즐길 예정이다. 인연이 있는 선교사님을 만나 봉사할 거리가 있는지도 물어보고, 이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 방법들을 궁리해야겠다.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이 쉼을 얻는 이 밤, 나도 긴 하루를 마치고 쉼을 얻어야겠다. 수고했어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