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캄보디아 #씨엠립 #톤레삽호수
#2017년3월30일
여유로운 씨엠립에서의 아침. 오늘은 조식을 먹고 누군가의 연락을 손꼽아 기다렸다. 이 머나먼 낯선 땅에서 나에게 연락할 사람이 누가 있겠냐만은 나에게도 '지인'이라는 것이 있다. 사실 내가 아는 분은 아니고, 부모님과 삼촌과 고모들과 친척 언니 오빠들의 지인이다. 쓰다 보니 모두의 지인인듯함은 뭐지ㅋ 이 굴비처럼 줄줄이 엮인 인연은 아버지가 평택의 한 교회에서 전도사 생활을 할 때 만들어진 것이다. 그곳에서 엄마와 고모들은 주일학교 선생님이셨고, 삼촌과 친척 언니&오빠들은 교회에 출석하는 학생이었다. 우리가 손꼽아 기다리는 연락의 주인공도 그 '학생'들 중 한 분이시다.
그 학생은 바로 캄보디아 씨엠립에서 9년째 선교 활동을 하고 계시는 황반석 선교사님. 우리 가족의 오랜 지인이시다. 소식을 모르고 지내시던 부모님도 선교사님을 만나러 간다고 하니 굉장히 반가워하셨다. 씨엠립에 도착 한 날 문자를 드리니 이틀 뒤에 바쁘신 일이 끝나는 대로 연락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틀 뒤인 오늘, 느긋한 아침을 즐기던 중 드디어 연락이 왔다. 점심 식사를 같이 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게스트하우스 입구까지 우리를 데리러 와주셨다. 처음 뵌 선교사님은 온몸에서 선함이 풍겨 나오는 그런 분이셨다. 옆집 아저씨 같은 편안한 훈훈함?ㅋ 무튼 추천해주신 로컬 맛집에서 맛있게 점심을 먹으며 막간을 이용해 아버지와 전화 연결도 해보았다. 오랜 세월만이었지만 여느 남자들처럼 통화는 짧고 간결하게 끝났다. 아마 긴 말 나누지 않아도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그 마음이 무엇보다 깊고 넓음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선교사님은 오후에 아이들 학교 면담이 있으시다고 다녀와서 3시쯤 톤레삽 호수에 데려가 주시겠다고 하셨다. 점심도 사주셨는데 관광까지. 오자마자 우리가 또 민폐를 끼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열심히 아이돌 칼군무처럼 합동 손사래를 쳤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따라가는 것으로 되어 버렸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선교사님 기쁘시도록 열심히 즐기기로 했다.
배를 빌려 타고 강을 따라 달렸다. 강에는 한국 다일 공동체에서 세운 수상 유치원이 있었다. 벽면에 그려진 뽀통령. 여기서도 먹히는구나. 조금 더 가다 보니 강가에 당장 허물어져도 이상할 것 없는 집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캄보디아에서는 자신의 땅이 있어야 그곳에 집을 짓고 살아갈 수 있는데, 극빈민층의 사람들은 그럴 땅이 없어 이곳까지 내몰리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들의 삶은 정말이지 치열했는데, 그것을 바라보며 유유히 지나가는 내가 싫었다. 가난은 구경거리가 아니다. 도와주지도 못하면서 동정만 하는 건 더더욱이나 최악이다. 때문에 나는 본의 아니게 최악의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맛보아야만 했다.
한참을 가니 옆으로 맹그로브 숲이 보였다. 정글에 가까운 숲은 바닥이 물로 채워져 있어 풍부한 어자원을 제공해준다고 한다. 숲을 지나 강을 따라 쭉 가다 보니 표지판 하나가 나타났다. 물결 모양에 금지 표시가 더해져 있다. 무슨 뜻일까 곰곰이 살펴보던 중, 우리 옆으로 배 한 척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 순간 강의 너울이 파도로 변신해 우리 배를 크게 흔들었다. 아, 이거였구나. 파도 만들기 금지. 탁해서 속을 알 수 없는 강에 빠지면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나를 고민하는데 저 멀리서 사람이 강속에서 걷고 있었다. 읭?ㅋㅋ. 건기여서 수면이 많이 낮아졌다고 듣긴 했어도 저 정도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내가 배를 타고 가고 있다는 사실이 웃겼다. 그래도 빠져도 죽지는 않겠구나 싶어 안심이 됐다.
동양에서 제일 크다는 톤레삽 호수는 우기 때 만수가 되면 충청 남북도를 합친 크기만큼 넓어진다고 한다. 뭐가 이리도 큰지 건기임에도 배를 타고 달리는 내내 수평선을 볼 수 있었다. 바다도 아닌 곳에서 수평선을 보게 될 줄이야. 그리고 한 가지 신기한 사실은 이렇게 수상가옥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베트남 사람이라는 것이다. 남의 나라 강에 자치주까지 세워 독립된 하나의 도시처럼 부락을 이루어 살고 있다고 한다. 수상 가옥이라는 것이 원체 배 위에 지어진 집이어서 보통 강 수위에 따라 이동하며 생활하는데, 이 사람들은 어쩌다 보니 베트남에서부터 물 흐르듯 여기까지 오게 되었고, 이곳이 좋았는지 계속 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탄 배는 커다란 수상 가게 앞에 멈춰 섰다. 가게 1층에는 악어 우리가 있었다. 악어가 정말 우글우글했다. 수상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주로 어업에 종사하거나, 일부는 이렇게 가게를 운영하는데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옥 안에 악어를 기른다고 했다. 고기와 가죽을 팔면 비교적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아니나 다를까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죽은 새끼 악어들이 박제되어 있었다. 살아 있을 때보다 유독 생동감 있는 포즈로 진열대에 올려진 악어들에게서 알 수 없는 쓸쓸함을 느꼈다. 살아있을 때는 좁은 공간에서 움직임이라고는 전혀 없는 생을 살다가, 마지막 순간 입을 쫙 벌린 채 사(死)를 장식해야 하니 말이다. 참 우리의 인생 못지않게 악어의 인생 또한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을 하며 계단을 따라 전망대로 올라갔다. 많은 사람들이 먼저 와 사진도 찍고 강 풍경도 감상하고 있었다. 우리도 선교사님과 함께 기념으로 셀카 한 장을 남겼다. 어휴, 더워서 그런가 얼굴이 많이 커졌네.
구경을 마치고 뭍으로 돌아오니 저녁 시간이었다. 점심도 얻어먹은 터라 저녁은 꼭 우리가 대접하고 싶었다. 하지만 선교사님은 현지인들만 알듯한 맛집에 데려가, 무려 스테이크를 사주셨다. 검고 네모진 돌판 위에 고기가 덩어리채 올려져 있어, 취향대로 익혀 먹으면 된다. 같이 나온 소스 3종 세트도 넘나 맛있었다. 천천히 맛을 음미하며 가게를 둘러보았다. 깔끔하고 세련된 공간은 내가 '캄보디아'하면 떠올렸던 이미지들을 완벽하게 바꿔놓기 충분했다. 하지만 또 이런 모습과는 달리 도심에서 20분 정도만 떨어져도 열악한 환경의 마을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여러모로 다양한 면을 가진 나라라는 사실을 다시금 피부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식사를 마치자 선교사님은 우리를 다시 숙소에 데려다주셨다. 죄송하게도 이렇게 자꾸만 민폐 레벨이 쌓여가고 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세월이 더 빠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기억 세포의 노화로 시간을 띄엄띄엄 저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1월 다음에 훅 3월이 온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기억 세포가 파릇한 아이들은 하루하루를 세밀하게 저장한다고 한다. 그래서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 같아서는 어른의 시간과 아이의 시간이 내 안에 공존하는 것 같다. 하루를 돌아보며 글을 쓰고 있노라면 오늘이 참 길다고 느껴지면서도 여행이 '벌써' 45일이나 흘렀다는 사실에 너무 빠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가장 맛있는 것을 아껴먹는 사람처럼, 이 여행의 남은 부분을 아주아주 천천히 아껴 먹고 싶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일들을 하며 여행의 맛을 은근히 음미하고 싶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폭 빠져 헤어 나올 수 없게 되겠지만,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좋다. 나는 지금 완전 맛 들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