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캄보디아 #씨엠립 #학교
#나눔 #2017년3월31일
이 세상은 불공평하다. 때문에 누군가는 지나치게 많은 것을 가지고 또 누군가는 지나치게 적은 것을 가진다. 하지만 이 불공평 안에도 작은 공평들이 존재한다. 많건 적건 자신의 것을 타인과 기꺼이 나누는 사람들. 아마 그들이 만들어내는 불공평 속 미세한 균열이 세상의 균형을 맞추어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곳 씨엠립에서 만난 선교사님도 세상의 작은 공평들을 위해 살고 계신다. 주된 사역은 현지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점심 급식 지원과 지역 교회를 통한 선교활동. 그중 우리에게도 학교 봉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기쁜 마음으로 선교사님을 따라나섰다. 시티에서 차로 약 15분 정도 떨어진 마을 '안짠'에 위치한 학교는 전기가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을 정도로 어려운 환경이었다고 한다. 아침 9시 반쯤 가니 아이들이 온통 운동장에 나와 놀고 있었다. 여느 때 같으면 수업이 한창이었겠지만 선생님들이 회의하러 교무실에 가자 자동 놀이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그래도 맨 끝 교실에서는 선생님들이 유치부 아이들에게 바람개비를 만들어 주고 계셨다. 우리도 교실에 들어가 두 분의 선생님을 도와 바람개비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갑자기 나타난 이방인에게 손도 흔들어주고 장난도 쳐줬다. 그리고 '어서 바람개비를 만들어 주거라'라는 의미의 눈빛도 날려주었다. 우리는 정성과 스피드를 더해 고객만족을 실현시켰다. 몇몇 아이들은 바람개비를 받아 들고 창가로 갔다. 그리고 창틀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 팔랑팔랑 돌아가는 색종이를 보며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바람개비 가내 수공업을 마치고 점심 준비가 한창인 주방으로 갔다. 그릇에 음식을 나눠 담고 나니 할 일이 없어져 아이들과 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실례가 될까 싶어 사진을 안 찍었는데, 찍어주면 엄청 좋아한다는 선교사님의 말에 본격적으로 촬영에 돌입했다. 찍고 보여주고 찍고 보여주고를 반복하고 있는데, 한 아이가 나에게 꽃을 꺾어다 주었다. 그러자 갑자기 모든 아이들이 꽃 사냥에 나섰다. 그리고 곳곳에서 쟁취한 꽃들을 내 손에 쥐어준 뒤 천사처럼 웃었다. 나는 아는 캄보디아어가 '어쿤=감사합니다' 뿐이어서 무한 어쿤을 반복했다.
아이들의 꽃 배달은 한참 동안이나 계속됐다. 나는 모든 꽃을 받아 머리에 꽂기 시작했다. 점점 꽃투성이가 되어가는 머리를 보고 아이들이 신나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신나게 웃었다. 이같이 아이처럼 웃어본 게 얼마만일까. 내 안에 쌓여있던 묵은 어른의 때가 말끔히 씻겨 내려간 기분이었다. 순수한 마음들에 둘러싸여 보낸 이날은, 캄보디아에서 보낸 모든 날 중에 진심 최고였다.
식사 시간이 되면 가장 어린 유치부 아이들부터 밥을 먹는다. 올망졸망 줄을 서서 밥을 받아 간 뒤 테이블에 앉아 다 같이 큰 목소리로 기도를 했다. 국민의 대부분이 힌두와 불교를 믿는 이 나라에서 하나님을 알리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기에 선교사님은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이곳 씨엠립에 오셨다. 나라면 택할 수 없는 선택지였겠지만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그 길을 가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그저 묵묵히 그들을 후원하고 기도할 뿐이다.
잠시 쉬었다가 오후에는 선교사님 가족과 씨엠립에 새로 생긴 트릭아트 박물관에 가기로 했다. 약속한 4시 반에 게스트하우스 앞으로 봉고차 한대가 멈춰 섰다. 선교사님 댁에서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는 아이들과 같이 간다고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한 두세명 정도 새로운 얼굴들이 차에 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을 열었을 때 8명의 아이들이 앉아있었다. 와 초 대가족이구나. 아이들은 낙엽만 굴러가도 까르르 웃는다는 중고등학생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새로운 곳에 간다는 설렘으로 기분 좋은 공기가 봉고차 안을 가득 메웠다. 덩달아 나까지도 엉덩이가 들썩거리는 것 같았다.
도착한 곳은 아시아 최대 규모의 트릭아트 갤러리. 제작에 참여한 팀이 한국 사람들이어서 우리말로도 설명이 적혀있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안내원이 신발을 벗어 리셉션에 맡기라고 했다. 타일로 된 박물관 바닥을 맨발로 걸어 다니는 기분이 굉장히 신기했다. 하지 말라는 짓을 하는 기분이 이런 걸까. 아주 마음에 들었다.
전시 공간에 들어서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그림과 하나 되어 신나게 사진을 찍었다. 한 센스 하시는 선교사님의 포즈들도 예사롭지 않았다. 모두에게 제안하신 단체 모아이 석상 샷. 오늘의 포토 기획상을 드려야겠다.
한 시간 반을 돌아야 다 볼 수 있는 공간을 한바탕 휩쓸고 마지막으로 다 같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선교사님은 내일 학교에서 있을 달란트 시장에도 우리를 초대해 주셨다. 사실 오늘 내가 내놓은 것은 보잘것없는 노동일뿐인데, 아이들은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순수한 마음을 주었다. 그렇다. 나눔은 늘 이렇게 더 많은 것을 남겨 날 부끄럽게 만든다. 하지만 그 부끄러움까지도 감사하다. 세상의 이모저모만 보는 여행이 아니라, 잠깐이나마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여행이어서 감사하고 그 안에 작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는 것에 감사한다. 그리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소유를 위한 소유가 아닌, 나눔을 위한 소유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줌에 감사한다. 그래서 오늘도 감사한다. 어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