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태국 #방콕 #골든마운틴
#푸팟퐁커리 #2017년4월27일
태국의 수도 방콕은 참 넓고 볼 것도 많다. 그래서 7일간 이곳에 머물며 그 매력을 집중탐구하기로 했다. 우선 여러 유명하다는 사원들을 제치고 우리의 방문 리스트에 오른 '왓 사켓 wat saket'. 영문 이름으로는 골든 마운틴이라 불리는데, 높이 78m의 인공 언덕 위에 금빛으로 빛나는 쩨디(사리 탑)를 올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는 높은 곳에 올라가 탁 트인 전망을 볼 심산으로 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전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에어비앤비로 구한 숙소는 도심 외곽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원하는 곳에 가려면 구글 지도 기준으로 1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하지만 교통체증 헬 오브 더 헬인 방콕에서 1시간이면 실제 4시간+α. 심지어 버스에는 에어컨은 고사하고 창문이 모두 뻥하고 뚫려 있어 온갖 먼지를 그대로 마셔야 했다. 결국 우리는 3시간 동안 목표 지점까지 반 밖에 가지 못한 버스에서 탈출하다시피 내려버렸다. 남편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찾아온 것이다.
나는 재빨리 검색을 통해 근처에 수상 버스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정말 다행히도 5분 거리 안에 선착장이 있었고, 직원으로 추정되는 이에게 얼마냐고 물어보았다. 분명 알아보기로는 거리에 따라 다르지만 최대 70밧(약 2,300원)을 넘지 않는다고 했는데, 1일 무제한권이라며 250(약8,300원)밧을 부른다. 내가 더 싼 배는 없냐고 물으니 눈 하나 깜짝 않고 배는 이것뿐이라고 한다. 그렇게 실랑이를 하던 중 멀리서 길쭉한 배 한 척이 다가왔다. 그리고 사람들이 막 올라타기 시작했다. 아, 이 배구나. 호구를 맞을 뻔 한 상황에서 가까스로 벗어나 우리는 둘이 39밧(약 1,300원)을 내고 교통 체증 하나 없이 20분 만에 원하는 곳까지 갔다. 그럼 그렇지. 현지인들이 그 큰돈을 내고 통근버스를 타고 다닐 리가 없지.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골든 마운틴. 입장권을 사고 사원 벽을 따라 곡선으로 이어진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점은 계단 옆 작은 화단에 꾸며진 동물상들의 표정이나 몸짓이 매우 특이했다는 것이다. 파이팅 원숭이부터, 가소로운 듯한 표정의 개까지. 계단이 많아도 볼거리가 많아 덜 힘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사원에 도착하니 도시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였다. 나는 창틀에 기대어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를 들으며 방콕의 또 다른 모습에 빠져들었다. 파란 하늘과 붉은 지붕은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렸고, 그 순간은 어떤 말보다 그저 바라봄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장면을 충분히 눈에 담은 뒤 대형 쩨디를 보기 위해 파른 계단을 따라 꼭대기로 올라갔다. 맹렬한 황금빛으로 우릴 맞이해준 쩨디는 마치 태양 같이 노랗게 타오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기도를 하고 커다란 종을 한 번씩 울렸다. 그들은 소원이 '소리'를 타고 신에게 전달된다고 여기는 것일까.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사원 곳곳에 달려있는 종들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한가로웠던 사원 탐방을 마치고 내려와 태국에 오면 꼭 먹어보고 싶었던 푸팟퐁커리를 찾아 나섰다. 검색을 해보니 '우텅'이라는 가게를 추천한 블로그가 많았다. 사실 나는 블로그를 믿지 않는 편이지만 새로운 가게를 발굴하기에 날이 너무 더워 그냥 가보기로 했다. 위치는 여행자 거리인 '카오산로드'. 기대에 가득 차 푸팟퐁커리와 파인애플 볶음밥을 주문했다. 어, 게 껍질이 딱딱하네. 한국에서 먹었던 푸팟퐁커리는 소프트 크랩으로 만들어서 껍질까지 그대로 먹도록 되어 있었는데, 여긴 완전 찜 먹을 때 나오는 그런 종류가의 게가 나왔다. 소스도 좀 기름지고 대체적으로 별로인 그런 맛. 생어거스틴이 내 입맛을 너무 올려놨나 보다. 그래도 이왕 주문한 것이니 집게발 속살까지 초인적인 집중력으로 싹싹 발라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카오산로드 산책에 나섰다. 옛날 같았으면 이것저것 파는 물건들에 신기해하고 그랬을 텐데, 3개월 동남아 순회가 끝나가는 지금 우리에게 여행자 거리는 별로 새로울 것이 없었다. 그래서 해나를 해주는 사람들, 저렴하고 알록달록한 옷가지들, 그리고 넘치고 넘치는 먹거리들을 지나 아까 내린 수상 버스 선착장으로 향했다.
5분 정도 기다리니 배가 들어왔고, 우리는 자리를 잡은 뒤 배 난간을 붙잡고 요금을 받으러 다니는 차장(?)에게 돈을 냈다. 수상 버스는 교통체증이 없어 많은 방콕 시민들이 출퇴근용으로 타고 다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일장일단이 있는 법. 싸고 빠르고 편리한 대신 운하의 똥물을 왕창 뒤집어쓰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이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배에 재미있는 규칙이 하나 있는데, 기둥 옆에 앉은 사람들이 동그란 손잡이를 당겨 자발적으로 가림막을 잡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원리는 배 좌우에 달린 각각 4개의 손잡이를 승객들이 협동하여 당기면 비닐 천막이 쭉 하고 위로 올라가 튀는 물을 막아주는 식이다. 남편도 우연히 그 자리에 앉아 본의 아니게 사람이 타고 내리는 것에 맞추어 가림막을 올렸다 내렸다 열일을 해야 했다. 그렇게 무보수 알바를 하며 40분 정도 달리니 어느덧 집 근처 선착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도심 외곽 대학가에 위치한 우리의 에어비앤비 숙소는 하루에 약 18,000원 정도만 내면 거실과 주방이 딸린 오피스텔을 통째로 빌려 쓸 수 있는 곳이었다. 교통은 약간 불편하지만 매일 밤 열리는 야시장의 끝내주게 맛있는 쏨땀에 길들여지고 있는 중. 거기다 관광지가 아닌 주거지여서 태국인들의 자연스러운 생활상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는 점이 맘에 든다. 내일은 그동안 맛있게 먹었던 태국의 음식들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요리교실에 가 볼 생각이다. 가장 기대했던 과정인 만큼 만전을 기하여 배 터지게 먹고 와야겠다! 맛있는 내일의 방콕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