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네팔 #포카라 #히말라야트레킹3일차
#푼힐전망대 #타다빠니 #2017년5월5일
두툼한 솜이불 속에 쏙 들어가 잠이 든 지 6시간 만에 알람이 울렸다. 새벽 4시 30분. 드디어 눈 덮인 히말라야의 봉우리들을 만나러 푼힐에 갈 시간이다. 푼힐은 3,210m에 위치한 전망대로 고레빠니에서 약 1시간 정도 떨어져 있다. 우리는 장갑에 털모자까지 쓰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걸었다.
해가 뜨기 전이라 얇은 바람막이 속으로 추위가 스몄다. 한참 프램 아저씨 뒤를 따라 쫄래쫄래 걷다 보니 시리도록 푸른 새벽의 틈새로 하얀 히말라야의 산맥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냥 가는 길에서 본모습이 이 정도인데, 전망대 위는 어떨까 하는 생각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전망대가 있는 3,210m에 오르자 눈 앞에는 거짓말처럼 새하얀 설산들이 펼쳐졌다. 손 쓸 새도 없이 눈물이 핑 돌았다. 지금껏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거대한 자연의 민낯이 두 눈 가득 차올랐다. 그리고 천천히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벅차오르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어 크게 숨을 한 번 들이마셨다. 차가운 바람에 실린 만년설의 기운이 온몸 구석구석에 닿는 느낌이었다. 남편과 나는 잠시 동안 말없이 산들을 바라보았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어떤 말도 쉽사리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게 바로 내가 만난 히말라야의 첫 얼굴이었다.
한 30분 정도 지났을까, 잊고 있던 추위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다행히 부지런한 사람들이 일찍이 올라와 전망대 한편에서 따듯한 차를 판매하고 있었다. 블랙티 두 잔을 사 프램 아저씨께 한 잔을 건네고 나머지 한 잔을 남편과 나누어 마셨다. 차를 마시며 하늘을 보는데, 물고기 꼬리를 닮은 유일한 2등정 봉우리인 마차푸차레 뒤로 붉은 해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순간 나는 빛의 태초를 목격한 듯한 착각에 빠졌다. 이전에 한 번도 떠오르지 않았던 것처럼 태양은 천천히 설산의 거친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온 세상을 끌어안았다. 따듯한 햇볕이 땅 위에 내려앉자 차가운 히말라야도 어느덧 하얀 솜이불을 덮은 듯 포근해 보였다.
푼힐 전망대를 뒤로 하고 롯지에 내려오니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아침을 먹고 다시 짐을 챙겼다. 오늘은 어제보다 1시간 늦은 8시 반 출발. 목적지는 2,680m에 위치한 타다빠니이다. 트레킹을 시작하기 전 나는 ABC까지 가는 길이 계속 오르막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내려가기도 한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다.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면서 4,130m까지 가는 것이었다니. 생각보다 더 험난할 것 같은 느낌이다.
처음 타다빠니로 가는 길은 평화로웠다. 드넓은 초록의 평원 뒤로 설산이 펼쳐지는 역설적인 풍경을 바라보며 힘든 줄도 모르고 걸었다.
숲 속으로 난 오솔길 곁으로 햇볕이 부서져 내렸고, 연둣빛 이끼들이 옹기종기 반짝였다. 마른 낙엽들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이름 모를 새들의 끝없는 노래를 들으며 높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나무 사이를 성큼성큼 걷는 것이 좋았다. 산등성이를 따라 걸을 때는 영화 '반지의 제왕'의 원정대가 된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농담도 하며 꿈같은 길을 걸어 첫 번째 쉼터에 도착했다. 햇볕이 좋은 롯지 마당에는 고산지대 여인들이 만든 다양한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털장갑부터 각종 장신구까지 특유의 알록달록한 색감들이 눈을 사로잡았다. 이 예쁜 것들을 짐이 될까 봐 하나도 사지 못하는 슬픈 장기 여행자의 현실. 사진을 남기는 것으로 아쉬운 마음을 대신하고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평화로웠던 길이 끝나자 오르막보다 무섭다는 극강의 내리막이 나타났다. 대중없이 제각각으로 생긴 돌계단은 높이까지 높아서 한 칸 내려갈 때마다 무릎에 부담이 컸다. 중간중간 계곡을 끼고 있어 돌들은 젖어 있었고 자칫하면 미끄러질 염려도 컸다. 거기다 하필 이 구간에서 다른 트레커들이 내 뒤로 줄줄이 늘어져 본의 아니게 속도를 내며 대장 놀이를 하게 되었다. 왕부담.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발목이 접질리지 않기를 바라며 초집중 모드로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뿐. 그렇게 우리는 무려 1000m를 2시간 동안 쉬지 않고 내려갔다.
극강의 내리막이 끝나자, 다시 지옥의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거리상으로는 500m였지만 경사가 높아 1시간은 더 올라가야 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쳐 호흡을 조절하며 걷는데도 엄청난 피로가 몰려왔다. 무릎이 너무 아프고 발목도 시큰거렸다. 하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괴로운 시간들은 내가 포기하고 주저앉을 때 더욱더 기승을 부린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져줄 수 없었다.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 이 무거운 발걸음도 잠시 후면 포근한 롯지에 닿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을 지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힘겹게 도착한 타다빠니는 이전 마을들 보다 규모가 작았다. 우리가 짐을 내린 롯지는 화장실과 샤워실이 밖에 있어 살짝 불편해 보였지만 어차피 샤워는 딱 한 번만 할 테고, 화장실은 방이 위치한 2층 복도 끝에 있으니 괜찮았다. 무엇보다 프램 아저씨가 추천한 곳에 묵어야 아저씨께도 편안한 식사와 잠자리가 보장되기 때문에 군말 없이 짐을 풀었다.
숙소 앞에는 넓은 마당과 큰 식당이 있다. 그래서 타다빠니 마을에 온 많은 트래커들은 누구나 이 마당에 가장 먼저 발을 들이게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낡은 시설과 샤워실이 밖에 있다는 이유로 다른 숙소를 찾아가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오늘 이곳에 묵는 손님은 딱 우리 두 사람뿐. 그 덕에 롯지는 조용했고, 전기도 마음껏 쓸 수 있었다.
전기 코드가 있는 식당에서 한참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후두둑'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천정에서 난로와 테이블 위로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원래 그런 건가 하고 다시 머리를 말리는데 물소리가 점점 커졌다. 안 되겠다 싶어 1층으로 내려가 주인에게 이 사건을 급히 알렸다. 놀란 직원이 어딘가로 뛰어가 조치를 취하니 금세 물이 그쳤지만 이미 식당은 난리가 난 뒤였다. 한동안의 청소가 있은 뒤 우리는 젖지 않은 다른 쪽 테이블에 앉아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잤다. 그리고 어제처럼 5시쯤 일어나 따듯하게 난로가 피워진 식당으로 가 빨래도 널고 일기도 쓰며 창문 너머 풍경을 구경했다.
저녁으로는 피자와 뚝바를 먹었다. 뚝바는 네팔식 수제비인데 속이 풀리는 듯한 시원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든든하게 식사를 마치고 남편은 책을, 나는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난로 곁에 앉아 계시던 롯지 주인 할아버지가 말을 걸어오셨다. 우리도 할아버지도 영어가 유창하지는 않았지만 신기하게 말은 잘 통했다.
우리 숙소의 이름은 히말라야 게스트하우스. 할아버지는 36년 전 이 마을에 아무것도 없을 때, 처음으로 롯지를 세우셨다고 했다. 우물 조차 없던 이곳에 파이프를 연결해 식수를 끌어오고 전기도 놓은 것이 바로 할아버지라는 놀라운 이야기를 듣고 나니, 우리가 '원조집'에 묵게 된 것이 자랑스러웠다.
할아버지와의 즐거운 대화를 끝내고 이를 닦기 위해 마당으로 내려갔다. 복학생 언니 오빠처럼 차려입은 우리는 노란 달이 어스름 떠있는 밤하늘 아래서 열심히 이를 닦았다. 롯지마다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하얀 난로 연기가 우리네 시골 풍경 같아 정겨웠다. 가을처럼 선선한 날씨에 마당을 거닐며 남편과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눴다. 히말라야에서의 세 번째 밤. 고단하면서도 운치 있던 그 시간들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