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58.히말라야 이야기4

보통 남녀의 365일 세계여행 기록

by 정새롬

#네팔 #포카라 #히말라야트레킹4일차

#촘롱 #히말라야 #2017년5월6일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 가려는데 전날 무지막지했던 내리막길 덕에 무릎과 다리가 너무 아팠다. 알이 잔뜩 배긴 다리는 마치 무쇠 추를 매단 것처럼 천근만근이었다. 특히 턱이 진 곳을 내려갈 때, 정말 죽음이다. 무릎은 또 어찌나 쑤시는지 이 연골을 앞으로 최소 50년은 더 써야 하는데 앞길이 막막하다. 그래도 갈 길은 가야 하기에 아침을 든든히 먹고 안 아픈 척 괜찮은 척 평소보다 더 씩씩하게 걸어본다. 모든 다리 근육에 상상 그 이상의 찌릿함이 느껴지지만 그럴 때일수록 엄살은 저 멀리 던져두어야 한다. 한 번 맛 본 고통은 얼음판 위를 걷듯 엄살을 부리게 만든다. 하지만 눈 딱 감고 과감하게 평소처럼 걸으면 좀 아프긴 해도 오히려 근육이 풀리는 기분이 든다.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촘롱으로 출발~>

오늘 우리는 4시간 30분을 걸어 촘롱이라는 마을에 갈 예정이다. 촘롱은 어제 묵은 타다빠니보다 약 520m 낮은 2,160m에 위치해 있다. '520m밖에 안 낮은데 왜 4시간 반이나 걷지?'라는 생각은 금물. 어제 깨달은 바와 같이 히말라야 트레킹은 목적지까지 쭉 올라갔다가 쭉 내려오면 되는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니다. 오늘의 코스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출발지점인 2,680m에서 1,880m까지 한참을 내려갔다가 다시 내려간 만큼의 경사와 맞먹는 지옥의 오르막을 오르면 끝. 참 간단하네...... 하하하하하.

<밀당의 고수 히말라야가 내 놓은 당근>

끝이 보이지 않는 내리막길에 접촉 불량 코드처럼 멘탈이 나갔다 들어가기를 수차례 반복하다 보니 말도 안되게 아름다운 초원이 나타났다. 나 참내. 히말라야의 밀당에 정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개고생 중간중간에 이렇게 거부 못할 풍경들을 보여주니 힘들어도 군말 없이 걸음을 옮길 수밖에. 이런 잔망스러운 산 같으니라고!

<앞만 보고 가는 쫄보>

산이 깊어질수록 계곡의 폭도 넓어졌다. 흐르는 물의 양도 어마어마했고, 소리도 천둥같이 웅장했다. 하얀 물결은 거침이 없었고 그 앞에서는 바위도 나무도 무른 점토 같아 보였다. 그래서 그 위로 설치된 커다란 다리를 건널 때마다 나는 발 밑은 최대한 보지 않으려 노력했다. 높이가 높기도 했지만 계곡의 위엄에 압도되어 한 마디로 쫄아버렸던 탓이 크다. 그렇게 로봇처럼 앞만 보고 뛰다시피 다리를 건너니 공포의 내리막길도 얼추 끝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기뻐할 수는 없었다. 내리막의 끝은 언제나 오르막의 시작이었으니까.

<도도한 산소녀들아 사탕 맛있니?>

땀을 비 오듯 흘리며 한참을 오르다 잠시 쉬고 있는데, 저 멀리서 여자 아이 둘이 슬리퍼를 신고 돌계단을 총총 뛰어 내려온다. 그러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귀여운 모습에 나도 모르게 주머니를 뒤져 사탕 두 개를 꺼내 건넸다. 아이들은 우리 옆 바위에 걸터앉아 쿨하게 사탕 포장지를 벗겨 바닥에 던진 뒤 사탕을 먹기 시작했다. 가이드 아저씨는 아이들에게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라고 했지만 아이들은 우리가 사탕을 건넨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듯 보였다. 생각해보니 그 반응이 이해가 갔다. 이곳에 와서 사탕을 내미는 트레커들이 우리뿐이겠는가. 손 내밀면 열에 다섯은 초콜릿이나 사탕을 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후에 만난 아이들도 우릴 볼 때마다 '캔디, 초콜릿'을 외쳐댔고, 심지어 열린 주머니 틈새로 손을 넣어 '사탕 치기'를 해가는 아이도 있었다. 하지만 누굴 탓할 수 있을까. 나같이 생각이 짧았던 수많은 어른들의 잘못일테니 말이다.

<풍요로워 보이는 히말라야지만 현실은 여전히 척박했다>

씁쓸한 마음으로 조금 더 걷다가 이번에는 인적이 드문 산길에서 할머니 한 분과 마주쳤다. 할머니는 프램 아저씨에게 종이 한 장을 보여주며 네팔어로 하소연을 하시는 것 같아 보였다. 아저씨는 할머니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가방을 내려놓은 뒤 지갑을 꺼냈다. 그리고 30루피를 할머니께 드린 후 다시 묵묵히 우리의 길을 인도했다. 잠시 뒤 발길을 멈춘 아저씨는 배가 고픈데 먹을 것이 없어 집에 있는 아이들이 죽어간다는 딱한 할머니의 사정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셨다. 한 없이 아름다운 대자연 속에서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로맨틱하지 않았다. 이곳에서도 여전히 '삶'은 치열했다.

<평생 볼일 없을 줄 알았던 대마초도 만났다.>

프램 아저씨는 트레킹 중 잠깐씩 멈춰 서서 우리가 진귀한 광경들을 놓치지 않도록 안내를 해주신다. 보통은 야생 원숭이나 희귀한 새 같은 것을 보지만 오늘은 대마밭을 구경했다. 허허. 살면서 대마밭을 보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말이다. 아저씨는 잎 하나를 따서 우리에게 건네면서 지금은 덜 성숙한 상태이고 두세 달 뒤면 좋은 품질로 거듭난다고 했다. 과거 마취제로 사용되었던 대마는 참 유용한 식물이었는데, 인간은 이것으로 스스로를 해치는 마약을 만들어 냈다. 인류의 탐욕은 역사를 만들어 내지만 동시에 파멸의 길로 몰고 가기도 하는 것 같다.

<마늘 오조오억개 품은 히말라야 백숙>

오르락내리락 히말라야의 예민한 기복을 맞춰가며 오늘도 안전하게 목적지 촘롱에 도착! 신기하게 이 마을에는 한식을 파는 집이 많다. 기본적으로 김치볶음밥과 찌개 그리고 백숙을 판다. 내가 사랑하는 닭. 그것도 백숙을!! 가격은 3500루피(약 42,000원)로 굉장히 비쌌지만 그 순간 지친 나의 몸과 영혼을 치유해줄 방법은 백숙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주문을 했다. 1시간 뒤 모락모락 김이 나는 백숙이 압력솥에 담겨 나왔다. 닭 뱃속에는 원래 들어가야 하는 약재와 대추 대신 마늘이 가득 들어있었다. 닭과 함께 끓여서 나온 죽에도 마늘이 한 100개는 넘었던 것 같다. 그래도 맛은 끝내줬다. 고기도 쫄깃쫄깃하고 서비스로 나온 김치도 약간 쉬었지만 괜찮았다.

<방 앞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 이정도>

매일 트레킹과 낮잠으로 하루를 다 써버리는 것이 아까워 오늘은 커피 한잔씩을 마시고 잠을 참았다. 그리고 해가 질 때까지 방 앞 테라스에 의자를 놓고 앉아 한껏 가까워진 설산을 질리도록 감상했다. 그리고 마당에 서서 프램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전에 비정상회담에서 네팔 대표 수잔이 '레썸 삐리리'라는 노래를 불렀던게 문득 생각이 나 아저씨께 그 노래를 아시냐고 물었다. 아저씨는 그 노래가 엄청 옛날 민요 같은 거라서 요즘 사람들은 모른다고 하셨다. 하지만 본인은 옛날 사람이니 알고 있다며 맑고 고운 반전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셨다. 아저씨 뒤로 설산이 하얗게 빛났고 노래는 정겨웠다. 정말 멋진 순간이었다.

<설산을 배경으로 이닦기>

내일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7시간 정도를 걸어야 하기 때문에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낮에 마신 커피 탓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 코를 드렁드렁 골며 잘도 자는 남편 옆에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새벽녘 화장실에 가려고 문을 열었는데 너무 놀라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우리 방문 바로 앞에 롯지에서 키우는 커다란 검은 개가 누워서 자고 있었던 것이다. 개가 깨지 않게 조심히 타 넘어야 화장실을 갈 수 있는 상황. 나는 미션 임파서블의 명장면처럼 긴장감 넘치게 화장실을 다녀와야 했고, 결국 그 덕에 정신이 말짱해져서 한참 동안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래도 이런 재미있는 추억들 때문에 히말라야가 더 좋아진다.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이 아쉬울 정도로!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57.히말라야 이야기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