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써보기로 한다] 키워드 3 - 명분

'떨어져서 바라보고 해체하기' 하부 목차 3 - 경제활동과 시간 명분

by 말쿡 은영

떨어져서 바라보고 해체하기' 하부 목차 2 - 다차원에 걸친 델타 값들

[1-3] 경제활동과 시간에 부여하는 명분



돈을 벌지 않으며 당당하기란 그 얼마나 어려운가요?



돈을 벌지 않고 있을 때, 혹시 스타벅스 커피 대신 이디야 커피를 사 먹자고 체념하듯 결정하신 적은 없나요?


저녁에 친목 도모 모임에 나가기로 되어 있을 때, 남편이 일하고 있는 시간 동안 나는 가사를 열심히 해놓아서 저녁에 내가 없을 때에 쾌적하고 막힘없는 세팅에서 남은 가족들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해야겠다 하신 적 있으시지요?


왜, 어떻게 하다가 돈을 벌어오는 것에 상응하는 가치를 창출하여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버린 걸까요? 돈을 번다는 사실이 ‘당당함’의 필요충분조건이 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인간의 존엄성’ 맥락에서 틀려먹은 명제가 아닌가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결국 돈을 벌어야 해당 일을 지속할 명분이 있는 것이라고 불가피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당당해지기 위해 기어이 돈을 버는 선택을 했을 때, 남편과 동등하게 당당해지려면 같은 액수를 벌어야 하나요? 같은 시간을 투입해서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데, 버는 액수가 차이가 나서 귀가 후엔 그것을 메우기 위해 가사와 육아를 여성이 더 감당해야 합리적인 건가요?


돈을 적게 벌어도 어떻게 하면 스스로 당당할 수 있고, 다름 사람들도 나를 얕잡아 보지 않을 수 있을까요? 물론 다른 이들이 얕잡아 볼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며, 나의 자격지심이 얕잡아 본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경제활동으로서의 일이 의무인 사람과 사회적 실현으로서의 일을 권리로서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 때, 후자의 사람이 일을 하여야 자신은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고 할 때, 이 양측은 대등하게 가치를 점할 수 있을까요?


자본 중심의 사회는 자본을 창출하지 못하는 곳에 선심을 베푸는 식의 태도를 견지하고 있습니다. 강력한 합리화로 뒷받침되어 온 자본의 횡포에 의해 상처의 굴레 속에 억눌려 있는 사회 구성원, 그리고 자연환경, 우리 모두의 정서는 그 자체로 존중받지 못하고, '병'을 준 자본의 호혜적 방식에 의해 '약'을 제공받고 있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그 자본이 원하는 이익을 창출한 뒤 남는 자본에 의한 것이기에 언제나 다시 차단될 수 있지요.


다소간 격앙된 어조를 양해 부탁드려요. 전업으로 육아를 하는 것을 집에서 ‘노는 것’으로 생각하는 몰상식 또는 무신경한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곤 하는데, 그들의 논리를 와해시킬 논리를 수립하는 것에 참 어려움을 겪어오고 있는 중이라 제가 좀 날카로워져 있습니다(웃음).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그냥 둘 수 없는 이유는, 우리는 어쨌거나 사람들을 계속 만나며 관계를 맺어가는 사회적 동물이기에, 주어진 시간에 어떤 활동을 하는지에 대해,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자연스러운 사교활동의 일환으로든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그들로부터 언어적/비언어적 피드백을 받게 되고, 스스로에 대한 인식도 발생됩니다. 즉, 자기 인식의 자극들이 계속 외부로부터 들어오게 되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나를 어떻게 포지셔닝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전제한다면, 그들을 이해시켜 나에 대한 인식을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에요.


보이지 않는 (육체적 / 정신적) 노동에 의해 재생산되는 경제활동을 위한 에너지에 대한 인풋이 정량적으로 계산되지 않아 왔음은 물론이고 정성적으로는 빛깔 좋게 무임 노동을 강화하기 위한 썰들로 풀어낸 것에 불과하지요. 제대로 된 정성적 설명에 대해서는 좀처럼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슬픈 현실이고요. 이 보이지 않는 노동을 자본주의 회계 시스템 상에 숫자로 넣는 노력으로 가치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것도 중요한 한편, 무임 노동의 시간이 가지는 내용과 가치를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그 명분을 언어로 표현해 내는 것을 병행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수치가 아닌 것으로 설명해 내는 것은 일목요연하게 한정된 경우의 수에 대해 분류하여 설명해 내기 몹시 어렵지요. 그러나 여성이 정치적 판단을 할 수조차, 또는 해서는 안 된다고 확정하였던 사회가 어느새 여성의 정치적 판단에 대해 존중하기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능력과 활동이 가지는 명분에 대한 설득 노력이 부단히 있었던 것을 생각할 때, 터무니없는 것을 터무니없다고 생각하고, 왜 터무니없는지 끊임없이 내용을 설계하고 확산하는 방법 외에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갑자기 저 투사가 된 것 같네요. 사실 우리 모두가 생활 속 투사이지요? 나 자신이 사라지지 않게 나를 지키는 투사, 내가 가지는 멀티 정체성 모두에 대한 책임을 다하면서도 정말 가지고 싶은 정체성을 찾아 나서고 있는 투사입니다.


제 경험적으로, 현재 제가 사용하고 있는 시간에 부여한 목적성 별로, 예상되는 성과를 온갖 가 치어들로 무장시키고, 그것을 스스로 내재화하고, 강화된 내용성을 토대로 언어로 계속 표현해 내어야 간신히 당당함을 가질 수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결과 가지게 되는 일종의 당당함 같은 것이 진정 당당함인지, 아니면 ‘당신이 날 이해하지 않으면 나 정말 화낼 거야!’라고 밀어붙이는 무데뽀인지 헷갈릴 때도 있습니다. 여기서 ‘당신’은 ‘남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내의 의지와 노력, 그리고 활동성을 존중하며 나름 노력하는 남편이 사회적 통념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이 투지는 가정 내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공기처럼 당연시되는 사회적 통념을 향하고 있는 것이지요. 주부로 살고 있다면 저녁식사를 직접 지어놓아야 한다, 엄마에 의해 아이의 지적 성장이 결정된다는 것을 전제로 공포 마케팅의 대상이 되고 있는 교육상품을 적절히 사들이고 적용해야 한다, 가족의 건강을 위해 좋은 식재료나 건강식품을 탐색하고 가계의 사정에 맞게 구입해야 한다, 가족의 건강 상태를 잘 살피고 적절한 상품과 서비스를 적용하여야 하는 것 등 엄마 여성에게 지워지는 무수히 많은 책임들은, 그것을 놓치면 가정을 방치하는 엄마가 되게 하지요. 아니, 자본주의에 의해 조장된, 진위가 제대로 증명되지도 않은 갖가지 소비가치들을 어떻게 다 검토하고 결정한단 말인가요? 그것에 시간이 다 뺏기어 진정한 나의 사회적 정체성은 언제 세운답니까?


슈퍼우먼 콤플렉스, 현모양처 콤플렉스, 모성 이데올로기, 이 모두는 우리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비인간적인 족쇄 같습니다. 일단 자신을 혹사하는 이 프레임을 벗어나게 하는 새로운 프레임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윗부분에서 제가 당당해질 수 있었던 경험을 언급했었는데요, 그 당당함이 언제나 유지되는 것은 아니지만 몇 가지 예를 공유할까 합니다. 경력 공백 기간 동안 가정이나 아이의 다양한 요청에 거의 즉각적으로 대응 가능하다는 장점이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이긴 하나, 회사 청소하시는 분이 좀 더 열심히 했는지 대충 했는지에 대해 우리가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굳이 짚어내지 않으면 눈여겨보지 않는 것이지요. 경력 공백 기간 동안, 저는 사회적 가치 또는 사회적 혁신, 체인지 메이커와 같은 쪽에 관심을 가져 보았었어요. 2010년도 전후해서, 그때는 아직 출산 전이었고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었는데요, 희망제작소 등의 기관에서 운영하는 ‘모금’ 또는 ‘제2의 인생 설계’ 등을 키워드로 하는 교육을 듣곤 했는데요, 그때 들었던 것이 도움이 되어, 출산 후 내가 사용하는 시간의 목적성 중 하나로 우리 부부의 ‘제2의 인생 기획’을 넣었던 적이 있습니다. 당장 돈을 벌기 위해 취직을 하는 것도 좋지만, 육아로 인해 경력이 떠버린 이상, 그 선상에서 이어가려고 하기보다는, 새로운 길에서 내의 적성에 맞는 것을 찾아가는 것이 잃어버린 나의 기회에 대한 보상이 됨은 물론이고, 긴 호흡에서 고민하게 되어, 퇴직 후 인생에 대한 계획을 세워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명분을 가졌었습니다. 이와 결이 맞는 교육이나 활동을 해감으로써, 그것을 위한 시간 확보를 위해서는 남편이 가사와 육아를 전담해 주는 흐름을 만들 수 있었어요. 이것은 다만 저의 예일 뿐이고요,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가사와 육아의 노하우로 인정을 받고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지닌 분들도 좋은 참고가 되는 것 같습니다. 어떤 방식이든 ‘인정’이라는 부분은 당당하게 지속하게 하는 필요충분조건이라 봅니다. 앞서 언급했던, 사회관계 속에서 타인에 의한 나에 대한 인식, 내가 스스로 나에 대해 갖는 인식은 ‘인정’으로부터 형성되며, 그 분명한 인식은 다음의 실천을 위한 동기가 되어준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인생의 스토리를 쫀쫀하게 짜나가는 것은 돈을 벌지 않아도 당당할 수 있는 근거가 되어주는 것 같습니다. 지금 현 상황에서 할 수 없는 것은 제치고,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서, 그 일을 위한 시간의 확보에 대한 명분을 세운다는 것, 한번 도전해 보면 어떨까요?


같이 도전해 보아요.


여기서 만나요: 인스타그램 @live.stories.iyagisalda 유튜브 핸들 @live.stories





이전 08화[책을 써보기로 한다] 키워드 2 - 델타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