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써보기로 한다] 키워드 5 - 여성 담론의 구태

여성에 대한 담론들의 구태와 새로운 담론의 가능성

by 말쿡 은영


이 사회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담아내고 있을까요?

말장난일 수 있지만, 담아내고 있는지, 적정선에서 허용하고 있는 것인지, 자유롭게 이야기되도록 두면서도 어느 이상의 것은 쳐내버리고 있는 - 또는 쳐내어지는 -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인생의 곡절을 많이 겪은, 인생치 농후한 어른 여성에 대한 어떤 담론들이 있을까요? 이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여성에 대한 담론’이 일반적으로 어떤 키워드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지 볼까요?


그전에 먼저 ‘담론 談論’의 정의를 알아볼게요. 아래의 세 가지 의미가 사전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하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논의함.

하나. (문학 소설에서) 서사 구조의 내용을 이루는 서술 전체.

하나. 언어 한 문장보다 더 큰 일련의 문장.


이 세 가지 의미 중 저는 두 번째를 택하여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 대한 ‘담론’이라 한다면, 특정 주제나 이슈를 중심으로, 그 상황을 가져온 배경, 그 사람이 처한 맥락, 거쳐온 경험 등을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봅니다. 그 내용에 고정된 것이란 없으며 누구나 자유롭게 어떤 것에 대해 담론을 펼쳐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한 담론들이 풍성하게 차오르고 교류되면서 하나의 ‘문화’에 가까운 상태로 발전이 되고, 그 가운데 이론이 정립되거나, 정책적 제안이 생겨나거나, 개선을 위한 새로운 프레임을 세우거나, 나중에는 사회적 논의의 한 축으로 우뚝 서게 되기에 이르는 흐름을 가지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담론’이 충분히 자유롭게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Photo by Beth Macdonald on Unsplash

다시 ‘여성에 대한 담론’으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담론이 일어나는 관점을 먼저 짚어보자면, 타인의 시선에 의해 보여지는, 규정되는, 억압되는 사회적 약자로 대상화되는 것들이 대부분인 듯합니다. 이 사회는 각 구성원들에 대해 스테레오 타입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벗어나는 경우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서툰 것 같습니다. 또는 굳이 적극적으로 다룰 의향이 없습니다. 그래서 보호 등의 명목으로 특정 틀에 가두고, 가둠을 당한 구성원은 그 틀을 타파하려 하는 식의 구조 안에서 담론들이 형성되어 온 듯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추후에 좀 더 조사해서 넣어볼게요.)


예를 들어, 여성의 몸에 대한 담론, 여성의 지위 등은 늘 남성의 눈으로부터 뻗어 나와, 남성의 지위와 대칭점에서 다뤄지고, 너덜너덜해진 우리의 심사가 밑에 짙게 깔려 상대인 남성을 비난하거나, 현 사회의 억압적 분위기나 제도를 타파 대상으로 규정하고 공격하는 등의 담론들이 여성을 휘감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주체로서의 여성들에 의해 이야기되고 다양한 방식으로 불합리나 불평등을 타파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이 사회의 선진화를 위한 필수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만 추가했으면 하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프로 연구자가 아니기에 빈틈없는 필요충분의 제시를 할 수는 없겠고, 추가를 했으면 하는 하나의 ‘관점’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만 사십오 년을 한국사회에서 살아온 한 명의 여성으로서, 대화를 좋아하고, 무언가 사회적으로 펼치길 원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자 상황의 이해와 가능성 있는 제안을 많이 일삼아 본 사람으로서, 그간의 직간접적인 경험의 결과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항이기에 제안드려 봅니다.


여성이 주체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은 이제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남성에 의해 지배되었던 정치적 영역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점차 주목받고, 제도권에서 다루어지지 못했던 여성과 밀착된 이슈들이 드러나고 제도화되고 있는 것, 환경문제의 또는 평화의 문제 해결을 위해 여성 특유의 장점, 즉, 소통과 조화 지향적인 접근법이 보다 선호된다는 것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남성의 지배력이 팽배한 영역에서 이따금씩 주목받고 있거나, 주목하여야 한다고 주장되는 정도로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물론 여전히, 주체성을 발동하고 있다고 이야기되고 있는 이러한 영역들이 하나둘씩 늘어나야 하고, 각 영역의 주체들이 노력함으로써 이 사회에서 더 드러나고 이야기되면 좋겠습니다.


제가 제안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인생의 우여곡절을 겪은 인생치 농후한 여성들의 ‘삶을 짜 나가는 이야기’를 집중 조명함으로써, 드러나지 않았던 가치로운 판 하나가 등장할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이것은 기존의 파이를 나누어 먹는 영역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의 여성이 겪는 역경과 고난의 경험이 새로운 탄생의 토양이 되고, 그 부정적 경험의 원인을 분석하고 정리하는 것을 넘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짜 나가는 어른 여성, 어른 여성들 간의 연결, 연결된 집단 지성에 의해 창출되는 삶의 콘텐츠에 주목하자는 것입니다. 사회의 기존 구조에 안정적으로 편승하지 못한 데에서 오는 패배의식을 극복하고, 문화적 콘텐츠의 자유로운 생산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 판을 만들고 거기서 놀자는 것입니다. 그 판에 경계를 치지 않고, 누구나 들고 나고 그 판과 외부는 서로 교류합니다.


Photo by Valentina Conde on Unsplash

누구보다 장래가 촉망되는 재원이었던 한 여성이 자본주의의 사다리 타기 게임에서 지지 않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건강,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희생하고 극소수의 여성만이 달성하는 임원의 자리에 올랐을 때, 많은 매체에서 성공사례로 그녀를 다루기는 하지만, 이제는 많은 어른 여성들은 그것이 승리자의 모습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선망의 대상으로 삼지도 않고 그 사람에 비해 개인적 영역에서의 희생이 터무니없이 적었기에 무능력하다거나 의지력이 약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하지도 않습니다.


아이를 곁에서 케어하는 시간이 적어도 어느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기준을 가진 여성이, 비록 자신의 경력을 살리진 못하여도, 자신의 경력과 의외로 발견된 능력을 결합하여 취직을 하거나, 개인작업을 하거나, 사업을 시작하고, 육아에 대한 기준과 비즈니스에 대한 기준을 독자적으로 마련하여 꾸려가려 하거나 꾸려가고 있습니다.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포기할 것인지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취한 것을 통해 더 큰 가치를 얻었다고 생각하고, 그 선택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삶의 의미로 정리해가며 사는 어른 여성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창의적인 길을 닦아가는 길이 고독하지만, 주변에 함께 상의하고 응원할 수 있는 여성 파트너들이 의외로 많아서 같이 나아갈 수 있게 되기도 합니다. 나의 고독한 이 길은 결국 나 혼자 걸어야 하는 긴 시간을 수반하기 때문에 어떤 힘을 내 속에서 발견하여야 할지 집중하고 표현해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현존의 자본주의 체제의 기준은 기득권 그룹이 스스로를 더욱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 설정한 것들이기에, 기득권이 아닌 사람들이 그 기준에 맞춰 산다는 것은 생각지 못했던 많은 희생을 수반합니다. 물론 내가 달성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기준을 추리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삶 역시 의미 있고, 유용한 성과를 제공합니다. 그러나 그 기준에 연연하지 않고, 기준이 아닌 ‘나의 삶의 짜임’ 자체에 의미를 두고 살아가는 삶의 예들이 많아지고 있고, 그것이 존중받고, 충분히 이야기 나누어져 풍부한 문화적 콘텐츠로 정리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제안을 써 내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저의 고독한 길을 걷기 위한 내면의 힘을 ‘사회적 실현의 욕구’로 삼고 가고 있습니다. 이 욕구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후에 올 챕터에서 다루겠습니다. 무엇을 할 때 가장 나다운 에너지가 빛이 나는가를 중심에 두고 비즈니스를 짜 나가고 있습니다. 그 중심이 내 삶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실감’ 나게 만들어주고, 더욱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여, 당장의 큰 수익이 없어도 지속할 수 있도록 합니다. 수익의 부분을 늘 염두에 두고 있지만 서두르지 않게 하는 여유를 부여합니다. 그 여유는 주변의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주고, 나에게 도움이 될 내용성을 흡인하는 힘으로 작용함을 느낍니다. 날카로운 목적성보다는 애정을 가지고 주변을 살펴보고, 감각되는 모든 것들이 나의 내용성의 성장을 위한 해석의 대상이 되고, 다음의 스텝을 생각하게 하는 구체적인 디딤돌이 되기도 합니다.


세바시 대학에서 강원국 선생님의 강의를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고 김대중 대통령, 고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문을 전담 집필하셨던 분이지요. 그 직에서 물러나신 후 줄곧 책을 써오셨는데, 책 쓰기가 인생을 180도 바꾸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분의 강의 내용 중 기억에 남는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는, 글 쓰는 시간에 키워드별로 파일을 개별화하여 바탕화면에 두신다고 합니다. 그 키워드가 뇌리에 각인된 채 생활하다 보면, 그 키워드를 중심으로 모일 소재나 내용성이 삶에서 캐치된다고 합니다. 키워드를 염두에 두면, 그렇지 않을 때 그냥 지나쳤던 것들이 달리 보인다는 것이죠. 소재로 적극 개입시키게 되는 것이죠. 이 방법론은 제 개인적인 경험에서도 증명된 바 있습니다. 뉴스레터를 2022년 상반기 내내 주 1회 발행한 적이 있는데, 어떤 내용으로 원고를 쓸지 정해지면 내내 그것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소재가 점점 축적이 됩니다. 살아가며 조금씩 소재들을 수확 해나가게 되더라는 거지요. 조금씩 메모해두었다가, 2페이지 정도의 글을 쓰는 것은 한두 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물론 그 이후 편집에 편집을 거듭하지만요. 이처럼, 그 키워드와 같은 중심축을 내 안에 두며 살아갈 때, 나에게 끌려오는 다양한 이야기 소재들이 다른 실천과 그다음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실제로 이러한 과정으로 각자의 이야기가 세상 곳곳에서 만들어지고 있고요.


어른 여성의 능동적인 삶의 이야기들이 사회적 담론이 되고, 그것이 확산되어 이 사회에서 여성을 주제로 이야기할 때 주요 카테고리로 자리 잡으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합니다. 사실, 이러한 상상에서 시작하여 ‘리브스토리즈’라는 브랜드의 내용성을 채워가고 있는 중이기도 합니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 의해 평가되고, 나에 대한 up and down을 결정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 물론 혼자 팔자 좋게 유유자적 나만의 세계에서 유영하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함께 사는 가족의 수고에 늘 감사하며, 보완적인 역할을 고민하며 실질적으로 수행하며, 현재 우리 사회가 운영되고 있는 원리에 입각한 행동수칙을 적정선에서 취사선택하여 행동하고자 노력하면서도, ‘연연하지 않고’, ‘소진되지 않는’ 방식으로 나의 존재를 세워가고 드러내는 작업을 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이번 글은 ‘현실을 바라보고 해체하기’의 하부 항목 다섯 번째를 다루고 있는데요, 키워드는 가능한 데까지 계속 하나씩 늘려가 보려 합니다. 이 작업에 이어 ‘삶의 프레임 다시 짜기’를 써가 보려 합니다. 삶을 구성하는 요소를 어떻게 해석하고 정리해놓으면 나에게 유리하게 인식이 되어 조금이라도 더 긍정적인 인식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내용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제안도 많이 들어보고 싶고, 제 취지에 공감하는 분들과 많이 만나고 싶습니다. 그날을 너무나 고대하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contents_entertainer, @live.stories.iyagisalda

유튜브 핸들 @live.stories - 여기에서 저의 욕구와 활동에 대한 ‘설’을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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