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는 더 이상 붙여진 이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네
연말연시라는 개념은 나에겐 한 해의 끝과 시작에 붙인 ‘이름’에 불과한 것이기에, 그때라서 특별히 한해를 회고하거나 새해 계획을 세우는 식의 행위를 챙겨하지 않았다.
아쉬운 느낌이 드는 경우는 있는데, 다른 사람들에 비해, '의미 있다.'라고 정리해놓고 기억에 저장해놓는 행동양식이 나에겐 잘 자리잡지 않아온 것 같다는 것이다. 순간순간 진하게 의미를 느끼고 감동이 화르륵 타오르곤 하는 경우는 제법 자주 있는 것 같으나, 그 순간뿐인 것 같다. 아침이라서, 밤이라서 어떤 행위와 더 매치가 강하게 되어서 특정 시간에 어떤 리츄얼을 진행한다든가 하는 경우 역시 거의 없다. 이런 사람과는 꼭 이런 술집에 가야 한다든가, 이런 날씨엔 어디의 어느 길을 걸어야 한다든가, 어떤 이벤트에 이런 선물을 준비하여야겠다거나 하는, ‘이것 아니면 안 된다.’라는 식의 공식이 나에겐 잘 적용되지 않았다. 확실하게 꽂히지 않으면 잘하지 않고, 별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 밑에는 귀차니즘이 강하게 흐르고 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만인에게 정을 느끼고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순간순간에 집중하는 것은 즐기고 잘하는 것 같다. “순간에 충실해!!” 그런 건가 보다.
이상하게도 2022년, 올해는 마무리하면서는 ‘회고’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들었다.
그것의 가장 큰 원인은 아마도 이것 같다. 내 마음속의 열정과 욕구가 지랄을 떨며 휘몰아치고 있는, 엔트로피 상승의 상태였던 것이 어느 정도 통제가 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해가 올해이기 때문인 듯하다. 작년에 “더 이상 부정적인 감정에 매몰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 뒤, 내 다음의 삶은 물론이고 내 아이의 삶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그것을 토대로 정신 차리고 판단들을 잘 내리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에 선택한 방법들이 내 삶에 미션을 부여하였고, 일단 그것을 잡고 가다 보니 놓기 싫다는 마음이 들었고, 어렵사리 느리지만 계속해왔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내 삶의 관리를 위한 메커니즘이 정착되어가는 과정을 경험한 것이라고 정리될 수 있겠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전환의 시작점을 찍었다.’라고 단언할 수도 있겠다.
인스타그램에 올초 1월 1일에 쓴 포스팅의 글이다:
‘2021년은 그 어느 해보다 나 자신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치열까진 아니어도 열정을 가지고 나 자신을 들여다본 한 해였다. 또한 사회적 관계에 있어, 큰 일을 두 차례 치르며 오만함을 빼려고 더욱 노력하게 되는 한 해였다. 아무것도 없이 코로나만 있었던 시간이었는 줄 알았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중대한 한 해였군.’
2021년 후반부터 <라라레터>라는 뉴스레터를 기획하기 시작했고, 2022년 2월부터 발행을 시작해 지난 7월까지 시즌 1을 진행했다. (시즌 2부터는 함께 했던 파트너가 혼자 진행한다.) ‘다음의 삶을 고민하는 레터’를 슬로건으로 여성의 꿈과 다음의 삶, 그리고 다음 세대의 삶을 지탱할 가치 등을 주요 주제로 다루었다. 내 개인적으로는 ‘아는 것을 더 확실히 알자.’를 모토로 임했는데, 중요한 것들이 왜 중요한지 그 근거를 공부하고 아이에게 충분히 설명할 수 있어야겠다는 것이 뉴스레터를 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아이와 나눌 수 있는 대화의 주제도 많이 확장시키고 싶었고 말이다. 원고의 주제가 정해지면 계속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자료조사를 하고, 글로 정리한다. 그 과정에서 내 시간이 의미 있는 것들로 채워졌고, 덩달아 성과물도 축적이 되니 이로부터 느껴지는 뿌듯함이 또 한 번 있었다. 찰 팔 년 전에 답답한 마음에 독박 육아를 주제로 팟캐스트를 하였을 때, 비록 대본 작업을 한다지만, 긴 호흡으로 논리 구조를 쫀쫀하게 짜는 작업과는 좀 거리가 있었다. 축적되는 결과물로부터 느껴지는 보람은 있었지만, 살짝 헐거운 느낌은 있었다. 그러나 글을 써가는 과정이 주는 ‘성장’의 느낌은 사뭇 다르다. 나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조각조각의 나의 미니미 정체성들이 하나씩 세워지는 느낌적 느낌이랄까. 나를 세우고, 사회적 연결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회적 정체성을 세워갈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임을 깨달았다. 2021년에 마구 분출되었던 나의 욕구의 용암이 이 과정을 통해 숨이 죽고 정리되고 무거운 중심축으로 자리 잡게 된 것 같다는 이야기이다.
준비해오고 있던 사업의 구체성이 강화되는 과정을 포함하는 한해이기도 했다. (사회적 실현) 욕구에 집중하고 그것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마구 표출 또는 표현하는 가운데 어른 여자의 삶의 콘텐츠가 업사이클링되고 그것을 확산시키고자 하는 구상이었는데, 아직 부족하지만 조금씩 정교화되고 있는 듯하다. 사업계획서를 작성해서 몇 군데 제출하고 떨어져 보고, 사회적 기업 또는 소셜벤처 창업 교육과정 몇 개도 들으며 좋은 파트너들도 알게 되었다. 사업내용을 공유하고 의견을 교류하고 뽐뿌질을 해주며 서로 힘이 된다. '이 사람들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나의 욕구 중 하나인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을 위해 책을 쓰듯 내용을 정리하고 있다. 누군가 딴지를 걸어도, 잘난 사람이 지적을 해도 흔들리지 않도록 단단하게 만들어가고 싶다. 물론 수시로 ‘될까?’하는 불안감이 쳐들어오기도 하지만 말이다.
'안 하면 어쩔 것인가, 안 하면 안 된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이번이 좌절되면 나에게 다시는 기회가 없다.'
무엇인가 놓치고 있는 기분을 늘 느끼고는 있지만, 정신 차리고 살고자 하는 의지로부터 나온 일련의 실천들, 이를테면 책모임 참여(살면서 올해 가장 많은 책을 읽은 듯하다), 내 콘텐츠 정리를 위한(나중에 사업에 써먹을 내용을 정리하는) 글쓰기, 사업 구체화 작업과 재원 마련을 위한 공모전 지원 등이 자리 잡게 되어서 너무도 다행이다. 이 과정에서 끊임없이 뇌가 작동한다. 내 인생 내내 쭉 잡고 갈 중심가치를 계속 떠올리고 그것을 둘러싼 실천이 하나둘씩 생겨난다. 이 느낌 놓치고 싶지 않다.
몇 개월 전 어느 시기, 나에게 사람이 너무 필요했다. 무기력보다 더 아득한 상태를 겪고 있을 때, 교육과정에서 만났던 한 분의 손길에 살짝 그 늪에서 빠져나왔고, 이후 우연히 잡아놓았던 약속들을 통해 점점 에너지가 올라가는 것을 느껴가면서 사람이 더더욱 필요해지는 중이었다. 그때 ‘창고 살롱’이라고 하는 커뮤니티를 만났고, 여성의 지속 가능한 삶과 일을 위한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정말 자연스럽게 그 문화에 젖어들었고 온갖 소모임에도 다 참여하고, 모든 모임에 올 참석하면서 ‘신인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하기에 이르렀다. 창고 살롱 운영진이 멤버의 움직임을 세심하게 살펴서 ‘신인상’이라는 타이틀로 챙겨준 것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참여한 소모임 중 하나가 ‘나를 위한 글쓰기(led by 정소령)’이었고, 내 콘텐츠 빌드업을 위해 한창 씨름하고 있던 중, 이 소모임을 통해 글쓰기 루틴이 자리 잡게 되었다. 과연 될까 불안해하고 있던 것에서, 어쩌면 되겠다고 하는 강단 있는 마음으로 전환된 중요한 계기가 되어 너무 고맙게 생각한다.
다양한 감정들이 존재하고, 그것과 이어진 많은 기억들이 있지만, 그중 일부만 이 글에 포함하였다. (이미 너무 길어졌어…)
내년에 대박 날 띠들 중 나의 띠인 ‘뱀’이 포함되어 있다. 이 흐름을 타고 내 인생 처음으로 상승곡선 한번 타보기를 기원한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회고글을 공유할 수 있는 고마운 공간이 있어 이처럼 길이감 있는 회고글을 쓸 수 있게 됨에, 이 기회를 만들어 준 쏘냐 님에게 정말 감사하다.
요즘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어쩐지 나... 인생의 묘미를 아주 조금 알아가고 있는 것 같아. 계속 깨달으며 살아가고 싶어. 충분히 깨닫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면 너무 안타까울 것 같아.”
마음 농사, 시간 농사 잘 지으며 살아가고 싶다. 정말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