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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은영 Jan 09. 2023

진화의 방향

감정적으로 보다 풍부한 삶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남들보다 정이 많은 편인 듯하고, 예쁜 걸 예쁘다, 조금만 고마워도 고맙다고 표현하는 편이고, 안타까우면 안타까운 상황에 뭐라도 해서 도움을 주고 싶다. 조금이라도 웃기면, 아무도 안 웃는 상황에서 웃을 기회를 맘껏 누리고자 잘 웃는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해오면서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내가 만만하게 여겨지지 않기 위해 표현을 삼켜 버릇하고, 표현이 줄어들다 보니 그만큼 불러일으켜지는 감정도 줄어드는 듯했다. 나의 선한 의도 또는 아무 의도 없는 순수한 표현이 타인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모른다는 염려로, 이는 곧 타인을 믿지 못해서 미연에 여러 가지를 방지하려고 점점 속으로 삼켜버리게 된 것 같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그 한창 공부해야 할 시기에 나는 친구 관계다운 친구 관계를 처음 겪었다. 가장 먼저 발달된 방식은 상대의 좋은 점을 발견하고 그에 대해 칭찬하는 방식이었다. 또는 작은 것을 긍정적으로 확대 해석하여 결국 칭찬을 해주는 방식도 있었다. 타인에게 좋은 영향을 주려는 의도보다는 그렇게 좋은 인격체로 나 자신을 세워 올리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능동적으로, 다소간 희생을 하더라도 내가 무언가를 해주는 방식을 취하면서 덕분에 좋은 인간으로 자리매김하였던 것 같다.


대학에 올라가서는 매우 복잡, 미묘, 다단한 관계들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괜찮은 인간으로 인식되게 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는 가운데, 이제 모든 사람에게 다 좋게 인식되도록 하는 것은 불가능함을 깨닫고 나와 결이 맞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고 에너지를 분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비도덕적인 행동으로 여겨질 법한 것은 조금도 하지 않으려는 미련함은 유지되었다. 내 나름의 비도덕적이라 결정짓는 잣대가 비교적 까다로워서 고지식하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었다. 소싯적부터 욕먹기 싫어하고 눈치를 많이 보던 나는, 남 좋을 대로 하도록 해주는 것이 가장 속 편한 것이었기 때문에 싫은 소리, 뭐 시키는 말, 내 감정 솔직히 이야기하기 등의 표현은 하기 어려웠다.


결국 그런 경향성이 한쪽으로 강화되기에 이르렀는데, 대학 1, 2학년 동안 사회적 동물이 되어가는 방황기를 거친 후, 후반부에는 사회적 동물로서 내 정체성을 나 딴에는 깊이 있게 고민하는 과정으로 여러 대거리 모임이나 대학 내 기획 모임에 참여하면서 말발을 늘여가는 데에 집중하게 되었다. 동시에 타인으로 방향성이 강하게 잡혀 있어 상당히 많은 후배들과 상담해주며 제법 심각하게 인생 조언을 성심을 다해 건네었다. 동아리에선 '대모'라고 일컬어질 만큼 말이다.


이런 방식은 그 후로도 두고두고 계속되었다. 내 안의 똘기나 곤조에 의한 표현은 별로 계발되지 못하고 나는 마치 공익을 위한 프로그램 기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하는 인간인 것처럼 나를 정체화시켰다. 이 과정에서 난 늘 석연치 않음을 느꼈음에도 다른 방향으로 대담하게 나가지 못하는 나약함 또는 비겁함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생략하고, 지금 40대 중반을 넘어가는 나이가 되며 깨달음이라는 인생의 묘미를 경험하는 순간들이 조금씩 늘어나는 듯하면서, 감정이 움직이고 그것에 의해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맛이라는 믿음으로 가고 있음을 느낀다. 나와 이 세상의 요소들과 교감하는 감정들을 해석하고 언어로 표현하면서 인생이 조금 더 역동미 있고 색감 있는 것이 되는 것만 같다는 것이다.


나라는 사람을 정체화시키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이 부단히 이어져왔지만, 어떤 획기적인 계기가 닥치고 나서 가장 무게감 있게 하부를 떠받들고 있었던 사고작용이 부정되고 다시 세워야 하는 시간이 누구에게나 찾아올 것이다.

 

나는 지금 그러한 시간 위에 있고 나의 중심추를 다시 정박시키고 있다. 세상을 더욱 느끼기 위해 더 열어젖히고 싶다. 더 감정적이 되고 싶고 더 많이 표현하고 싶다. 나는 그렇게 진화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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