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다녀가는 길, 차 안에서 무언가 표현해내고 싶어 이 글을 시작한다.
납골당에서 유골함을 마주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편지 몇 줄 써서 갖다 붙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생각한 것은 내 마음의 개방이 계속 지연된 데에 따른 결과였다. 원래부터 그런 것이 아니었다는 의미이다.
엄마가 병석에 계신 8년은, 마음을 열고 엄마에게 충분히 접속하고 교류하기를 보류한 기간이었다. 그 이유를 설명해 낼 수 있으나 상처라는 결과를 낼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것을 누가 보든 않든 상관이 없이, 그러한 성질의 나의 행위는 하지 않는 것을 택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선택을 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도 어떠한 성질이라 뚜렷이 말할 수 없는 그 8년의 연장선에 있다. 확실하게 엄마를 보내드리는 내 마음의 절차도 아직 밟지 못하였다. 그냥 나는 나를 지켜볼 뿐이다.
납골당 그 작은 칸막이 안에 넣어둔 사진 중에 20대의 엄마가 아기인 동생과 2살의 나와 함께인 모습이 있다. 그 어린 여인이 딸 둘을 안고 어떤 생각을 했을지 상상하며 어쨌든 행복한 표정인 것이 더 아프고 아팠다.
모처럼 흐르는 눈물을 그대로 두었다. 누가 삼키라 한 것도 아닌데 삼켜왔던 그것을.
그렇다고 시원하지도 않다. 충분히 열려있지 않다. 어느 때의 엄마와 만나야 하는 것일까? 어느 때의 나와 만나 나는 후회를 하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