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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놀기] 사랑이 고픈 순간

by 말쿡 은영

원인은 알 수 없다. 특정적 상황이란 것이 있지도 않다. 어느 순간 내게 사랑스러운 가족들이 있음에 감사하고, 남편이 어서 퇴근해서 집으로 왔으면 싶고, 일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으면 싶고, 그래서 우리 모두 다 함께 모이는 그 상황이 어서 왔으면 싶을 때가 있다.


가족이라는 고마운 존재, '사랑'이라는 가치, 이 근본적인 에너지원이 우리 삶의 중심으로 여겨지지 못하고, 현실에 매몰되어 살다가 가끔씩 앉아 쉬는 그런 곳으로 취급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않는가라는 생각을 지금 이 순간 하고 있다. 섣불리 대부분이라고 이야기하기엔 오만한 태도인 것 같고, 적어도 나에겐 그러해 왔던 것 같다.


'사랑'이란 가치가 나에게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다고 가정할 때 그 원인 중 하나는, '책임감'이라는 항목이 어쩌다 내 CPU 내에 가장 파워를 발휘하는 변수로 자리 잡아버렸기 때문인 듯하다. 그저 좋아하고 행복해하는 그 감정에서 편안하게 헤엄치지 못하고, 상대를 '대상'으로 바라보면서 내가 저 대상에게 해주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이 나에게 안도감을 주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내 스스로에게, 내 가족에게, 사회에서 만나는 타인에게 '제대로' 해주어야 하는 생각이 나를 많이 지배하곤 하는데, '가족'이란 대상에게는 그 철저함이 느슨해질 때가 많고, 제대로 해주지 못함에 자책하면서 힘들어하곤 할 때가 종종 찾아온다.


사회에서 만나는 타인과의 관계 형성에 있어서도, '끝까지 책임지지 못할 것'이라면 애당초 정을 일정 선 이상 주지 말자는 가치관을 적용한다. 순간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애정이 불쑥 올라와서 한번 호의를 크게 베풀었다가, 다른 날엔 그렇게 안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일관적일 수 없다면 일단은 '관리'하고 보아야 한다는 주의이다. 그래서 나는 두루두루 잘 지내기는 하지만, 아주 깊게 사귀는 친구가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그다지 원하지 않기도 하지만 말이다. 또 하나는 어차피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 그것은 다른 이들로부터 상처를 입었다거나 원망할 거리가 많아서라기 보다는, 나의 상황을, 나의 생각을 제대로 이해시키기란 쉽지 않고 때로는 불가능하기도 하기 때문에 애써 많은 용을 쓸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 모든 나의 기제가 '사랑'이라는 무경계의 그 영역에서 유영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란 사람은 또 '정'이 많다.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긴 하지만, 일단 저 사람이 나의 호의를 잘 받아들이겠다 싶으면 이것저것 내 잇속 따지지 않고 베풀면서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 간의 상호 왔다 갔다 하는 그 호의적인 기류 그 자체가 참으로 좋고, 그 속에서 발동하는 나의 흥과 신, 그 흥과 신으로 상대가 즐거워하는 그 모습 보는 것이 참으로 뿌듯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을 좋아하지만, 뭔가 나 자신을 준비시킨 후에나 그 관계에 돌입한다든지, 상대의 상황, 그 사람으로부터 느껴지는 기류, 상호작용을 통해 내 속에서 발생하리라 예상되는 일종의 흥 등을 고려한다는 점 등은 때때로 나를 외롭게 만들기도 한다.


문득, 얼마 전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악뮤'의 이찬혁의 한 마디가 생각난다. '초월 자유'. 아무리 바닥에 있어도 자유할 수 있는, 그 '자유'의 영역. 난 자유롭지 않기에 아름다운 영역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나를 자꾸 중심으로 두고 내가 허용하는 영역 내로 나와 관련된 것들을 관리하고 있지는 않은가?


외롭지 않으려면, 충분히 사랑하고 살려면, 마음껏 자유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군가로부터 욕먹을까 봐, 부정적으로 평가받을까 봐, 손해를 입을까 봐 주춤하고, 조심하고, 일정선을 지키는 등의 작용, 그것이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닌가.


미스테리한 인생.. 습습 하.. 습습 하..

Inner Peace..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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