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즐겁게 살고 있을 유니버스
어렸을 적 동경했던 ‘마루치 아라치’의 ‘아라치’ 언니는, 비록 ‘마라치’가 더 주목받는 인물이긴 했지만, 태권도를 적잖이 구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또 나라를 지키는 로봇 조종팀의 일원인 언니 조종사나 독수리 5형제의 여성 멤버의 적극적인 모습은 뇌리에 늘 남아있었다. 물론 현대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약자로 그려지거나 문제 해결에서 다소 뒷전으로 물러나 있는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있고, 굳이 그 활동적인 일에 스커트를 입혀 놓은 연출은 많이 아쉽긴 하다. 그러나 80년대에 아동기를 거쳤던 나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이 멋진 언니들은 내 실생활에서 롤모델이 되지는 못했고 가끔 내가 그들 중 하나가 되어 적을 무찌르는 꿈을 꾸며 능동적인 모습의 여성에 대한 동경을 이어갈 뿐이었다. 현실 세계의 나는 성실히 학생의 본분을 다하고 어른들에게 칭찬받는 것에 보람을 느끼는, 어쩌면 보람을 느끼도록 학습된 고지식한 어린이로 살아가게 되었다. 태권도를 분명 배우고 싶었는데 피아노와 미술학원과 같은 대다수 아이의 선택에 편입되어 별다른 도전 없이 살았다.
마이클 잭슨 오빠가 세상을 한창 뒤흔들고 있을 때, 그의 곡 중 나의 최애는 ‘빌리 진’이었다. 이 곡이 1983년 1월에 발매되었으니 내 나이 만 다섯 살 때였다. 마이클 잭슨의 ‘빌리 진’ 음반을 틀어놓고 가족들 앞에서 한 시간 가까이 땀을 흘리며 춤을 추곤 했던 기억이 뚜렷하다. 무언가에 가장 깊이 집중했던 최초의 순간이었다. 흥이 많은 외가 가족들은 무대를 수시로 마련해주어 나에게 아낌없는 격려를 해주었다. 그 긴 시간 동안 지치지 않고 매번 호응해준 가족들을 회고하면 감사한 마음이 든다. 땀흘리며 춤추는 나는 그 후에도 이따금씩 나타났다.
중학교 때 연극반의 연극부원 몇 명의 멋짐이 눈에 띄었다. 점심 시간마다 그들은 발성 연습을 하였는데, 그들만의 세계에서 그들만의 외침을 누가 듣든지 말든지 아랑곳하지 않고 표출하는 모습이라니. 그 모습을 볼 때마다,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동경은 하되, 나는 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그저 어른들이 나에게 입력한 값이었을 게다. 나의 기억 속에는 무용 시간에 에어로빅 안무를 짜 열심히 친구들과 합을 맞추었을 때, 중창이나 합창단에서 곱디곱게 음을 뽑아내었던 때가 가장 나의 심연에 닿았던 순간들이다. 당시에는 ‘과외활동’이라는 분류로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곁다리로 붙어있었던 일들이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가장 나다움에 가까웠던 활동임을 깨달았다. 그 활동들을 내 인생의 중심으로 가져오지 못했던 것은 늘 아쉬웠다. 나의 자유함이 확장되지 못하게 한 ‘틀’이란 무엇이었을까. 지금에 와서 그 틀에 대한 비판을 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란 주어지는 것이고, 그 안에서 나는 무언가에 균열을 내고 변화를 꾀해보며 사는 존재이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나는 그렇게 살고 있으니 만족한다.
위에서 열거한 선택되지 못한 ‘나’들은 각자 다른 유니버스에서 태권도 전공의 사회체육학과 졸업생, 댄스와 노래를 모두 잘하는 종합 예술인, 또는 무대 위에서 인생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토해 내는 연극배우 등으로 살고 있을 것 같다. 지금 사는 이 유니버스의 나는 겨울잠을 자고 있던 정신 일부가 '각성'한 그 순간의 선택으로 결정된 길을 걸어오는 중인 듯 하다. '대학생이 되면 니가 하고 싶은 것 뭐든지 하라.'는 어른들의 말씀을 충실히 따른 나는, 어찌나 급속도로 공부에서 손을 놓았는지. 그에 따라 성적이 곤두박질치는 그 시간에 자유로운 선택의 나날들을 보냈다. 대학 동기 중에는 현재 회사의 임원, 대학교수 등으로 전공을 살려 살고 있는 친구들이 많지만, 현재 내가 하고 있는 '내 나름의' 생동하는 생각들을 곱씹어볼 때 나에게는 지금의 나의 삶이 좋은 선택이었다는 만족감을 매번 느낀다.
위에서 언급한 ‘각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대학 1학년이 되며 크게 확장된 인간관계를 통해 그때까지 겪지 못했던 마음의 움직임을 느꼈고, 생각지도 못했던 나의 여러 정체성들을 만났으며, 사람과의 수많은 소통 속에 삶을 그려내는 언어도 점차 다채로워졌다. 그때야 비로소 내가 사는 사회를 살펴보고 세상에서 작동하고 있는 변수들도 하나씩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을 나는 ‘각성’이라 부른다. 1, 2학년 때 공부를 거의 놓다시피 살았고, 인생과 사람에 대한 고민으로 점철된 시간을 누구보다 강렬하게 보냈다. 1학년 때는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고 변화를 외치는 운동권 선배들을 쫓아가 내 깜냥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데모에 참여하였고(물론 이것보다는 술 마시는 걸 더 열심히 했...), 2학년 때는 음악 동아리 활동에 빠져 열심이었고, 교내에서 여학생들이 기획했던 문화포럼에서 홍보밴드 공연을 하기도 했다. 이때 나에게 중대한 의미가 있는 순간을 맞게 되었는데, 음악이 음악으로서가 아니라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설득할 대상의 마음을 움직이는 매개체가 된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당시 홍보의 메시지와 일련의 음악을 버무려 하나의 문화프로그램으로 펼쳐냈던 경험은 이후 나의 삶의 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중에게 들려주고 싶은, 꼭 이해했으면 하는 내용을 충분히 내재화하고 그것을 적절히 언어화하여 문화적 코드에 실어 내보내는 방법이 큰 매력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당시 ‘페미니즘’을 갓 접하고 뜨거운 가슴으로 메시지를 설계했었기에 내가 전하고자 하는 진심과 표현된 메시지 간의 높은 싱크로율이 주는 짜릿함이 아주 좋았다. 이를 계기로 그 후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야기모임이나 문화행사의 사회를 보거나 공연을 기획하는 등의 사이드프로젝트를 하곤 하였다.
그후 대학 2년간 열심히 공부한 기간, 그리고 명분과 선택의 이어짐으로 엮어간 커리어, 출산과 육아를 통해 얻은 대혼란의 역사, 그 가운데 살아내기 위한 선택들을 지나 지금의 내가 있다. 나의 재능과 역량에 집중하여 진로를 택하고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으나, 심각한 오류를 저질렀음을 다 지나고 깨달았다. 그러나 그 오류의 경험을 값지도록 재해석하고, 지금의 나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기 위한 양분으로 삼아가는 과정을 밟고 있다. ‘새로 나기’ 위한 과정과 계획을 설명함에 있어 위에서 이야기한 각성의 순간과 가장 나다웠던 과거의 순간들을 톺아보는 것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와 다시 만나 미래를 그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가 오류 외에도 다양한 가능성으로도 채워져 있다고 믿는다. 과거의 경험들이 추동력으로 쓰일 수 있도록 찬찬히 재정리해보고자 한다.
앞으로 건넬 이야기들은 ‘은영’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정체성을 소중하게 어루만져간다. 그리고 내가 사는 현재가 타당한 선택에 의한 것인지 확인해보는 과정이 될 것 같다. 그렇게 되면 현재를 사는 나에 대한 만족감이 올라갈 것이고 더욱 즐거워질 것 같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그려갈 나의 삶에 타인을 초대하기 위한 ‘초대의 글’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 유니버스의 내가 여러분과 함께 웃음을 짓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