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떼arte 유니버스universe
봄이다. 이렇게 찬란한 봄은 어떤 때는 당연하지 않은 현상으로 느껴진다.
시큰거리는 내 마음과 내 피부에 닿는 이 봄 햇살 사이의 괴리감 때문일까?
멍하니 산책을 하다 봄꽃의 움들이 눈에 들어온다. 활짝 핀 꽃들은 나에게 별 감흥을 주지 않는데 이 움은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첫 감정은 ‘애틋함’이다.
무엇인가 하려고 잔뜩 의지를 품고 있고 터뜨릴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마음이 아리고 안타까운데, 어떤 때는 마치 내 새끼를 보는 것 마냥 응원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울컥 올라온다.
어떤 날에는 그 움에서 나, 그리고 나와 같은 여인들의 모습도 보인다. 잔뜩 품고 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밖으로 나와야 할 것만 같다. 움이 터지는 온도와 습도가 있듯이, 몇 가지 조건만 맞으면 가만있지 못할 우리다. 온 우주의 기운이 우리에게로 ‘쿠오오…’ 다가와 휘감는 상상을 해본다.
나의 긴 경력 공백기는 내 생애 최대 위기의 시간이었으나, 오히려 나 자신을 더 파고들 수 있는 더없이 소중한 계기를 제공해주었다고 해석하고 있다. 여기서 잠깐, 나는 ‘경력 단절’이라는 용어 대신 ‘경력 공백’이라는 단어를 쓴다. 이 역시 최적의 단어는 아니나, 타인에 의해 문제 해결의 대상으로서 붙여진 ‘경력 단절’이라는 용어를 내가 나 자신에게 일단 사용하기를 피하고자 함이다. ‘경력 공백’이라는 단어는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객관적으로 서술한다는 인상을 주어 그나마 사용하게 된다.
저마다 자신의 경력 공백의 시간을 설명하는 멜로 드라마 또는 막장 드라마가 있겠다. 자아가 강한 편인 나 역시 그렇지만, 너무도 강력한 부정적인 감정으로 가득 차 나를 소모하고 주변을 힘들게 했던 그 이야기는, 적어도 감정적인 언어로는 더이상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 ‘할 수 있는 것’, 또는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여 그 부정적 감정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개발하는 것에 집중하기로 하였다. 나를 위해 그리하기로 했다.
한편, ‘하고 싶은 것’을 대충 찾아서는 그것으로부터 이어지는 생각이나 실천이 지속해서 나와주지 않더라는 거다. 그래서 나는 ‘욕구’라는 단어를 어느 날 운명처럼 떠올리고는 거기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사람들 앞에서 뭘 하고 싶지?’
‘사회적 활동을 어떤 방식으로 해나갈 때 가장 내가 멋져 보이고 쾌감이 느껴지지?’
‘사회적 연결’을 염두에 둔 ‘욕구’를 발견하기 위해 내 속에 잠자고 있던 여러 ‘나’를 차례로 만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반드시 이 작업은 ‘삶의 실천’으로 이어지도록 하려 했다.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것은 나의 시간을 의미 있는 실천으로 채워가는 과정이니 말이다. 욕구를 표현하고, 실천을 설계해가는 것, 그것이 결국에는 요즘 세상에서 그렇게 강조해 마지않는 ‘나다움’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삶의 실천이 가능해지려면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인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하고 싶은 것을 하늘만큼 땅만큼 발견하고 보니, 세상 모든 것이 나를 막아서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 좌절감이 막대하지 않겠나. 그러니 인정할 것은 딱 인정하고, 그 안에서 자유롭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이 나의 삶을 어떻게 만들고 있는지, 내 의지가 약해서 지금 내 꼴이 이 모양 이 꼴이 아니라, 불가피한 부분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나를 편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내가 처한 현실을 인정하는 가운데 내 의지를 발동하여 이뤄갈 수 있는 부분을 끝까지 밝혀내 보자 싶었다. 이 세상을, 또는 누군가를 원망하고 억울해 하여도,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누가 만들어주지 않는다. 내 시간이 없어지고만 있을 뿐이다. 이 가혹한 현실의 틈바구니에서 어떡해서든지 내가 추구하며 살 수 있는 가치들을 발견하고, 그 가치가 내 삶에 계속 작동할 수 있도록 가치실현을 위한 사고방식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생각 끝에 지금 진행하고 있는 사업 이야기는 뒤쪽에서 털어놓아 보고자 한다. 집단 지성이 필요한 일이라 독자들이 꼭 끝까지 읽어봐 주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발견한 나의 욕구가 어느 정도 정리된 것이 있지만, 현실에서 그 욕구를 구현해보자 싶어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하면 한숨이 나오기를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멀티버스의 수많은 나를 만나러 떠나본다.
‘선택의 순서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일어날 일은 모두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얼마 전 자기계발 강연을 들으러 갔을 때, 분위기 살리는 사전 순서에서 무대 위로 관객 몇을 불러올리더니 춤을 추게 하였다. 이성의 끈을 살짝만 놓았어도 진작에 같이 뛰어 올라가 은영은 용트림을 분출했을 것이나, 그 학습된 자제력이란.. 쯧쯧.
아르떼 유니버스의 ‘은형’이라면 당연히 제일 먼저 뛰어 올라가, 고등학생 때 연마한 에어로빅 동작을 조화시킨 골반에 집중된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보였겠지.
은형이 유치원생일 때였다. 한 살 위 언니들이 재롱잔치에 선보일 백조의 호수 율동을 연습하고 있었다. 그 동작에 비해 은형 그룹의 병아리 율동은 너무 유치했다. 언니들 연습 시간에 늘 주변을 얼쩡거리고 있으니 선생님께서 같이 해보자며 율동을 선보이는 대열에 은형을 끼워주셨다. 평소 동작을 눈여겨보고 암기하고 있었던 은형은 막힘없이 파도 대형을 리드미컬하게 선보였다. 얼굴이 후끈거렸던 것은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해냈다는 성취감 때문이었다.
은형은 늘 음악에 몸을 맡기고 움직이는 것을 좋아했다. 쪼개진 비트 하나하나에 동작을 박아 넣으며 강약 중 강약 움칫움칫 두둠칫을 딱딱 맞춰낼 때의 쾌감은 자신이 멋지다고 생각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1980년대 마이클 잭슨의 모든 댄스곡을 차례로 플레이하며 춤추는 어린 은형은 생애 가장 높은 집중력을 보였다. 소방차 오빠들의 ‘어젯밤 이야기’, 도시의 아이들의 ‘달빛 창가에서’에 맞추어 노래하고 춤추며 세상 다 가진 듯 즐거운 은형이었다.
80년대에서 90년대 초반의 대한민국은 진학을 위한 발레나 현대무용 외의 춤을 배울 수 있는 인프라가 생기기 전이다. 발레나 현대무용은 은형의 자유로운 영혼에 끌리지 않았기에, 학교 체육 시간이나 무용 시간에 몸을 움직이고 표현하는 시간을 적극 활용할 뿐이었다. 고등학생이 되어 번죽이 생겼을 무렵에는 아줌마들 틈에 끼어 에어로빅을 하기에 이른다. 제대로 에어로빅복을 챙겨입고 거리낌 없이 음악에 몸을 맡겼던 은형이었다. 혼자 사부작거리는 것 이상으로 본격 진로의 트랙을 닦아 나가지는 못했지만, 기회 될 때마다 에어로빅 학원에 다니고, 댄스스포츠가 붐이 일었던 2000년대 초반에는 퇴근 후 ‘차차차’를 밟으러 가곤 했다. 공연을 보러 가면, 배우를 동경하기보다는 ‘내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아마츄어 뮤지컬단을 알아보기도 했다.
은형은 또 노래하기를 무척 즐겨, 중고등학교 때 장기자랑 시간에는 늘 한 곡조 뽑으며 친구들의 호응에 흠뻑 젖곤 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안타깝게도 노래방에 빠져 성적이 크게 떨어지기는 했어도 절대 후회하지 않았다. 우렁차게 노래하는 것은 “나 여기 살아있숴~!!”라 만방에 알리는 것 같았고 가장 나다운 기운을 뿜어내는 행위였던 것이다. 덕분에 대학생 때 ‘대학가요제’에 나가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된 게 아니겠나.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게 되는 법. 무언가에 나를 던져보는 것은 써보지 않았던 마음 근육과 에너지 파장을 쓰는 경험이기 때문에 잠재력이 깨어나는 결과를 주는 게 아닐까. 그 감각은 두고 두고 남아 훗날 분명 다시 꺼내어 쓸 기회로 자신을 이끌지 않을까. 음악으로 연결된 인연은, 훗날 직장에 다니면서도 콘서트를 기획할 수 있게 했다. 계속 요동치는 음악적 파장은 직장인밴드, 합창단 활동을 하게 했고, 성악 레슨과 보컬 레슨과 같이 배우고자 하는 의욕도 불러일으켰다.
은영은 이런 은형을 만날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은형이 되어 새롭게 만들어갈 일들이 마구 떠오르기 때문이다. 너무 진지한 은영은 대단한 의미를 자꾸 부여하려 하기에 ‘그냥 하자’가 되지 못하는 자신을 깨닫고 눈을 가만히 감아버리고 만다. 그럼에도 은영은 음악이 가지는 힘을 믿기에 음악에 자신의 중요한 것을 실어보려고 생각은 한다.
(다음 글에서는 '카데나cadena* 유니버스'의 '은제'를 만나봅니다)
*cadena: '인간사슬'을 뜻하는 스페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