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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해서 나 주기] 내가 아이로부터 독립해야지

by 말쿡 은영

21년 11월에 써두었던 한 자락의 글을 발견했어요.

묵혀 두기 아까워 아직 정리가 좀 덜 된 듯도 하고, 리서치 해서 좀더 가미할 부분도 보이지만,

나중으로 미루고 일단 여기에 옮겨 봅니다.


<우리가 독립해야지, 암..>


아이를 ‘키운다’고 말들한다. 이 말은 부모인 ‘나’를 주체로 ‘아이’를 ‘대상화’하는 맥락이 강하다. 하지만, 우리 부모들은 자신의 의지로 아이를 좌지우지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지 알아서 크는 거지, 내가 어쩌겠어?’라는 말들을 하는 것일게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사사건건 간섭하는 것을 멈추지 못한다. 일상을 잔소리로 채우면서, 후회를 지속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나를 포함한 부모들이 아이를 ‘자라나게 한다.’의 관점에서 육아와 교육을 생각하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려는 쪽으로 대단한 의지를 발동하고 있다. 그 ‘환경’이란 것은 결국 부모의 정보수집능력, 그에 따른 자본의 투입에 따라 조성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일종의 교육 수혜에 대한 ‘계급’이 생겨나고, 자본에 의해 획득된 그 ‘계급’에 의해 알량한 우월감을 갖는 등의 현상도 많이 목격한다.


부모 노릇이라는 것이 여러 양상으로 구현되고 있고, 주된 추세라는 것이 있기도 하지만, 진정 ‘부모 노릇’이란 게 무언지 우리는 늘 혼란스럽고 도무지 알기 어렵다. 위에 언급된, 자본에 의한 환경 조성 외에도 책으로 둘러싸인 도서관을 자주 가거나, 숲으로 우거진 숲 유치원을 보내거나, 공동육아를 통해 각자 아이들이 가진 고유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자유로움을 제공한다거나 하는 인본주의 중심의 가치관을 토대로 환경을 조성하는 노력도 있다. 더 나은 미래를 조성해주기 위한 부모님들의 노력을 보면 나는 해준 것이 너무 없어 ‘뭐 하고 살았나.’를 읆조릴 때도 종종 있다.


한편, 아이들을 위한 일종의 프로그램 기획의 차원이 아닌, 부모와 자식 간의 정서적인 관계 측면에서 우리는 어떤 맥락을 조성하고 있고 어떤 원칙을 가지며 살고 있을까? 또, 어떤 원칙을 가져가야 할까? 아이들이 하루 하루 자라 나면서 새로운 모습들을 불쑥 불쑥 보여줄 때, 우리는 의연하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일상을 살아 나가면서 수시로 만나는 아이의 말과 행동, 그리고 태도에 대해 우리는 부모의 잣대로 해석하고, 그에 따라 걱정하고, 그 걱정에 따라 지적과 지도를 일삼는다. 부모 자식 간 인연이란 것이 도대체 무언지, 끊어낼 수 없는 이 질긴 인연을 부여잡고 어떡해서든 좋은 쪽으로 만들고자 그렇게 애를 쓰건만, 점점 커가는 아이와 마찰이 있을 때마다 ‘나는 이렇게 부족한 부모이구나.’를 연발하며 하루 하루 살아내고 있다. 그 때 그 때 내 마음이 이렇게 미친 년 널뛰듯 하다니, 대체 이렇게 되어도 되는 것인가? 점점 더 자신이 없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또 그렇게 자식을 키우는 거란다. 그렇게 인생은 살아진다.


얼마 전, 환기를 위해 커튼을 열어젖히며, 왜 하필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출가외인’이란 말이 떠올렸다. 조선시대 때 여성에 대한 극심한 차별의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결혼을 하면 더 이상 이 집 사람이 아니라 시댁 사람이라 이것이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남’이란 이야기이다. 두 집안의 교육 방침이 충돌하면 아니되니 시집을 간 여성은 시댁의 교육 시스템에 귀속되어 그에 따라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일절 간섭을 더이상 하지 않는다는 것일 것이다.


그 당시에는 ‘시집’을 가는 것이니 그 시스템에 귀속되는 것이었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결혼’을 하는 것이고 남과 여가 하나의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고 그들이 세운 시스템에 의해 살아가야 한다는 차원에서 ‘출가외인’이란 말을 남녀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으로 재해석 해봐도 될 것 같다. 물론 집안에 따라 부모에게 여전히 의지하고, 또는 부모가 결혼한 자식을 몹시 간섭하는 경우들도 많지만, 지향점을 어디에 찍어야 하느냐는 차원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보고자 한다.


하여튼, 열어젖히는 커튼과 함께 현대적 의미의 ‘출가외인’을 떠올렸다. 독립한 자식, 또는 결혼을 통해 출가한 자식의 세계를 존중하여야 한다는 차원을 강조하며 생각해보았다. 부모 눈에는 아직도 걱정되는 자식이고, 뭐라도 더 해줘야 할 것 같지만, 끊고 떠나보내야 하는 때가 오는 것이다.


자식이 물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독립을 완전히 하기 전, 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 청년기를 쭉 거치는 동안에도 부분 부분 조금씩 출가를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초등학교 3학년 딸은 진작에 문을 닫고 자기만의 시간을 갖기 시작했는데, 나와 연결된 수많은 끈 중에 그 끈이 떨어져나간 기분이 든다. 내가 알지 못하는 말과 행동의 축적, 내가 알지 못하는 자기 친구들과의 관계의 축적과 발전 등이다. 완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완전한 간섭도 힘들다. 그러면서 점차 조심하게 되고 딸이 내어주는 곁만큼 접근할 수 있게 된다. 부모가 자식의 동의 없이 어느 정도까지는 파고들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시겠다. 그것은 각자의 선택일 것이고, 어쨌든 여전히 점차 나에게서 분리된 세계를 가지는 아이가 되어간다.


여기서 우리는 부모로서의 역할, 책임을 생각할 때, 끊임 없이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아이의 자율에 대한 존중도 좋지만, 그것이 자칫 방치가 되면 어떡하나라는 두려움이 크다. 또한, 부모의 성격대로 옳다고 믿고 휘두르다가 아이에게 정신적인 상처를 주고, 인생의 항로의 방향이 나로인해 안좋은 쪽으로 틀어지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점점 아이에 대한 지적의 횟수가 늘어나거나 지적의 강도가 늘어나더라도 이러한 나의 노력으로 아이의 성장에 과연 그리 의미있는 도움이 될까 싶다. 나의 말말말들을 아이들이 수용하지 않는 경우들도 그만큼 많아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이에 대한 이해의 부족의 상태에서 염려로 점철된 예방적 잔소리들이 대화 내용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면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악화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추가된다.


이러한 시간 속에서 경계해야할 지점이 슥 고개를 들었다. 어른의 기준으로 섣불리 아이에 대해 판단하는 것이다. 이것은 더 심하게 얘기하면 ‘횡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아이의 어떤 행동을 문제적 행동으로 판단하고, 그로 인해 생겨날 수도 있는 염려스러운 상황을 멋대로 그려내고는 그것을 예방한다는 명분으로 이런 저런 수칙들을 다다다다 열거하는 상황, 이것이 우리네 부모들이 취하고 있는 방식 아닌가. 나의 한 경험은, 열을 내며 아이에게 잔뜩 쏟아낸 다음에 내가 무시하여 아이가 말할 수 없었던 설명을 뒤늦게 듣고 내가 냈던 열은 낼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우리의 마음 속에 엄습하는 불안감, 이것은 결국 세상의 다른 어른들에게 우리 아이가 어떤 식으로든 부정적으로 판정날까 두려워 그것을 막아야겠다는 생각, 그것 아닌가? 부정적으로 판정나는 것이 우리 애 잘못이 아니고 설사 그 어른들 잘못이라 하더라도 그 피곤하고 거추장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굳이 듣지 않아도 될 무수히 많은 말들을 아이에게 늘어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무리 아이라도 아이의 세계가 만들어졌고 점차 확장되고 복잡해지고 있다. 단편적인 대화는 아이로 하여금 자신의 세상을 내어보이기 싫게 만들 뿐이다. 염려보다는 그 세계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우선되어야 한다. 일종의 아름다운 거리를 두고 아름답게 아이를 만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모든 일거수 일투족을 다 관찰하고 필요한 것을 채워주던 그 시기가 지나고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이렇게나 많아지고 생각들은 어찌나 다양하여 지는지. 그 아이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까? 점차 조금씩 아이가 독립해가는 데에 우리는 어떻게 지켜보고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까?


아이가 결국에는 독립하여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의 돌봄, 그리고 잘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지도와 훈련을 함에 있어 아이가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것과 함께 우리가 아이로부터 독립하는 것을 별도로 집중하여 고민하여야 하지 않을까? 온갖 걱정과 염려를 대체할 수 있는 가치를 발굴하고 자리매김시키는 것이 부모로서의 과제를 행함에 힘이 되어 줄 것이고, 아이로부터 점차 독립해가면서, 특히 엄마의 입장에서는 ‘나다운’ 홀로서기, 홀로 작업을 빌드업할 수 있는 정신적 토양을 준비하는 데에도 핵심적인 요소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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