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지고 있는 지금 이 시간에 대해 나도 모르게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애쓰고 있다. 차분하게 진득하게 수 시간을 써서 날 위한 작업, 다른 이와 약속된 일, 기한을 가지는 일 등을 하기 어려웠다. 객관적으로 물리적으로 어려웠다고만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내 정신이 혼란스럽고 집중력이 너무 떨어져 그랬기도 했다.
아이의 요구가 간간이 있었지만, 그것이 내 작업을 크게 방해하는 것도 아니었다.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윤곽을 잘 잡고 그저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못할 이유를 계속 생각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북클럽 리더를 맡게 되어 책을 열심히 읽어야 한다. 그 책을 지금 몇 시간째 읽고 있으면서 온갖 잡생각이 내 머릿속에 들어온다. 밖에서 남편이 설거지를 하는 소리, 아이와 밥을 챙겨 먹는 소리가 들렸다. 어제 어떤 사건을 거치며 딸과 남편을 내 시야에 담고 싶지 않아 방에 콕 처박혀 내 것만 하고 있는 중이다.
당연히 마음이 편하지 않은데, 마음 한편에서 이런 나를 정당화하려는 시도가 인다. 평소 이런 시간을 갖기 어려웠고 좀처럼 제대로 못 가졌으니 지금 가져 마땅하다고. 그래야 나도 내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겠냐고. 어느 누구도 개입되지 않은 '나의 삶'이라 부를 수 있는 영역을 구축할 수 있지 않겠냐고 찡얼거리는 나의 소리가 들린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이다. 작가 이름이 최은영으로 나와 같아서 책 표지에 쓰인 그 이름이 불쑥 선명하게 다가온다. 이 사람의 글을 내 십분 다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건네어진 글들이 살포시 내 머리와 마음에 내려앉는 느낌이다. 한글로 쓰인 글 중에 이렇게 잘 읽히는 글이 있을까 싶을 때도 있다. 글이 쉬워서가 아니라 인위와 거짓이 최대한 배제되어서일까? 그래서 참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 작가이다. 그녀의 '밝은 밤'은 정말 단숨에 읽었고 그 아린 감정에 며칠 동안 푹 빠져있었다. 생각만 하면 눈시울이 붉어질 지경으로 말이다.
어떻게 살아야 이런 글이 나올 수 있는 건지 궁금하지만, 굳이 이 작가를 만나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냥 이대로, 이 거리가 좋은 것 같다는 느낌적 느낌이다.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는 우리네 삶에 대해 정신 분열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는 내 안의 더 깊은 그곳, 타인의 눈 저 너머의 저곳을 보려는 노력을 하여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경우라도 나는 나이고 너는 너임을. 아마도 이 '희미한 빛으로도'의 뉘앙스에 젖어 이런 생각에까지 이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