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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은영 Dec 30. 2023

나비 프로젝트와 뿌리영양 프로젝트

2024년을 내다보며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바라보며 계획을 세우는 것에 별 의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때 그때 필요한 계획과 실행이 필요할 뿐, 각 해에 붙여진 수에 불과한 것에 연연해 과하게 의미를 부여하고 다음 해를 위해 텐션을 끌어올려 야심에 찬 계획을 세우는 것에 이르는 일은 좀처럼 나에게 없었다. 한해를 돌아보며 거둔 성과나 성찰을 정리하는 것은 자칫 언어로 치장하는 것에 머물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에게 계속 엄격하게, 늘 부족했다 생각하며 더 노력하자는 태도로 일관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2023년을 하루 남겨놓고 있는 지금, 나는 남들이 다 하는 그런 정리와 새해 계획을 세우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왜?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기에? 


나라는 사람은 소위 ‘필[feeling]이 꽂힐 때’ 돌입하고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끝내거나, 꽂혔던 필이 달아나면 이내 손에서 놓는 식이었다. 그 ‘필’이란 것이 하찮은 수준이든 예술혼 급으로 폭발을 하건 쉽게 나에게 깃들던 시절도 있었다. 의미의 맥락이 그다지 빌드업 되지 않아도 나의 젊음의 에너지가 기본적으로 나의 역동을 받쳐주고 있는 동안에는 어렵지 않게 삶의 운영을 위한 실천을 일삼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인생이란, 점차 다루어야 하는 변수가 늘어나는 과정이다. 그래서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도 나오고 ‘균형’이라는 말도 등장하는 게 아닌가. 정신 멀쩡하게 살아 가려면 추가적인 노력을 해야한다는 의미이다. 


여러 가지를 다루는 가운데, 또한 멀티태스킹에 서툰 나는, 하나에 온전히 집중해서 완수하기를 추구하는 나는, 제대로 끝내지 못한 채 다른 요구를 만나고, 또 그 요구를 만나 용을 쓰다가 제대로 끝내지 못하여 아무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부유하는 기분으로 살아오고 있는 것 같다. 그 ‘필’이란 것도 들어오는 횟수가 줄어들고, 들어와 머무는, 지속력도 약화됨을 느껴왔다. 작년에 사업을 시작하면서도, 작업을 하는 방식을 거의 ‘필’에 의존했다. 그러니 자연 진도가 더디고, 탄력을 좀 받았다가도 금방 방향을 잃곤 했다. 진정 내가 원하는 작업을 찾았거늘, 지금 이것을 이런 식으로 놓쳐버렸다가는, 다음에 다른 무언가를 다시 발견할 수 있는 동력이 과연 있을까 싶었다. 위기감이 휘감는 올해였다. 위기감이 들수록 사업적인 콘텐츠를 더 채우고 정교화해야한다는 부담감으로 더 깊이 진지해지고 어렵게만 느껴졌다. 제대로 해서 나의 콘텐츠가 고객의 호응을 얻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 ‘제대로’에 미치지 못하는 나를 한심하게 여겼다.  이 꽁꽁 묶인 느낌으로는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실천적인 돌파가 당최 되지를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최근까지 전문코치인증 자격증 시험 준비를 위해 코칭 실습을 해왔다. 같은 시험을 준비하는 다수가 있는 단톡방에서 서로 코치와 고객 역할을 해주며 실습 시간을 채운다. 내가 고객 역할을 할 때면 내 인생의 중대한 문제를 주제로 삼는데, 코칭을 하는 분들은 기본적으로 경청과 공감의 태도를 가지고 계시고, 적절한 질문을 이어 해주시기에 굉장히 진솔하게 나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 가운데 격려와 지지를 받기 때문에 나의 의지가 한층 강화되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딸 아이와의 관계에서 슬기로운 말과 행동을 하는 엄마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나누게 되었다. 사춘기인 아이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까지 짜증을 내곤하고, 언사가 눈살을 찌푸리게 할 때가 있다. 아이의 표현 하나하나에 대해 일희일비 하지 않고, 큰 틀에서 중요한 메시지를 가끔씩 건네는 것을 ‘여유’라는 키워드로 이야기하게 되었다. 아이의 시간을 지켜보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감정적 대응을 최대한 삼가고 가볍고 명랑하게 말을 건네는 쪽으로 ‘슬기로운 부모상’을 정리해 나갔다. 이 얘기를 하다 보니, ‘가만, 나 자신에게는?’이라는 질문을 자신하게 하기에 이르렀다. 나의 삶을 다루는 나는 나의 행실 하나하나에 대해 지적하고 닥달하지 않았었나. 하나하나 꾹꾹 그렇게 누르며 살면 지치지 않고 배기겠냔 말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했던 나의 작업을 보다 가벼운 시선으로 바라보자는 결심을 했다. 지금까지 한 것으로 충분하다는 관점에서 할 수 있는 기획을 하고, 용기있게 재차 시도하고, 잠재고객으로부터의 피드백을 수시로 경청하여 조정과 보강에 적극 활용하자 싶다. 조정과 보강을 하는 과정에서 다시 깊이 들어가서 나의 뿌리를 더욱 강화하자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지난 한해의 나의 흐름을 살피고, 새해부터는 나비처럼 가볍게 가는 트랙과 뿌리를 튼튼하게 만드는 트랙을 가지고 가고자 한다. 특히 가볍고 명랑한 트랙은 작업을 지속하는 데에 무엇보다 큰 역할을 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를 위해, 나의 취미에 맞는 루틴을 통해 나의 몸과 마음, 그리고 진행 중인 작업을 찬찬히 살피는 여유를 가져야겠다고 다짐한다. 루틴 역시, 나로서는 지속하기 힘든 부분이었는데(필이 꽂힐 때만 가끔 하곤 했다), 큰 틀의 지향점이 생긴 지금 루틴 역시 같은 물줄기 안에서 흘러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루틴의 항목은 아직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았지만, 하였을 때 즐겁고 상쾌한 것으로 꼭 찾아 설정해보고 싶다. 

나의 새해는 이렇게 시작된다. 나비처럼 가볍게 잘 날기, 그리고 그러려면 든든한 믿을 구석인 뿌리가 자리잡도록 하기. 이번에는 이렇게 나에게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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