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있어 더 찬란한 봄
몇 달 전 우연히 지드래곤이 7년간의 공백기를 깨고 출연한 유퀴즈온더블럭을 봤다. 미국 온 이래로 한국에 대해 어둡다 보니 빅뱅이란 그룹도 GD라는 인물도 어렴풋하게만 알고 있었다. 다만 7년 전 내놓았던 '무제'를 어쩌다 듣고 곡이 너무 좋아 여태껏 내 플레이리스트에 있는 정도랄까. 무한도전에서 정형돈과의 짤들을 우연히 만나면 즐겁게 보는 정도의 아이돌이었는데 유퀴즈온더블럭에 나온 권지용을 보고 단박에 그가 좋아졌다. 시선 처리도 잘 못하고 손은 불안하게 머리를 만지고 말투도 느려지고 살도 좀 오른 그가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하던 모습에서 '봄'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본인 권지용으로 살아본 세월이 3~4년밖에 되지 않았다며, 어느 순간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겠더라는 그의 고백처럼 그는 다시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기나긴 겨울잠에 들어갔다. 모질고 모진 시선과 억측의 칼바람을 지나 얼음장처럼 차갑고 굳어진 혹한을 이겨내고 그가 마침내 기지개를 켜고 나타났다. 아주 수줍고 어색하고 어눌하지만 한결 따뜻하고 편안해진 그는, 긴긴 시간 동안 뿌리를 더 단단하고 깊게 내리다가 이제는 빛나는 햇살을 향해 돋아난 부드러운 새순 같았다. 엄마와 같은 심정으로 그의 겨울이 안쓰러웠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민 그를 축복해주고 싶었다.
지난 12월부터 정신이 없다. 말도 안 되는 일들이 한국이나 미국에 연달아 이어지니 마음이 놀랐다가 분노로 치밀어 올랐다가 낙담했다가 다시 낙관했다가... 추운 엄동설한에 한껏 고개를 숙이고 팔짱 낀 손을 겨드랑이에 끼운 채 사정없이 몰아치는 눈보라 허허벌판을 걷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문득 고개 들어보니 어느새 꽃은 피었고 어김없이 새순도 돋아났다. 햇살은 한결 부드러워졌고, 바람도 가끔 시리긴 하지만 온기가 전해져 온다.
이리 어수선한 시국에 꽃사진이나 찍어 올리는 게 맞나 싶은데,
이 봄꽃이 답이지 않을까.
혹한의 겨울을 품었다가 마침내 이겨낸,
그래도 꽃은 피고 잎이 돋는다는 분명한 선언.
더없이 따뜻한 다정함으로 오고야 만다는 희망.
아름답기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
그 긴 겨울이 있어
더 뭉클한 봄을 피우고
무성한 여름으로 성큼 자라나서
넉넉한 가을로 열매 맺기를 멈추지 말라는
자연의 준엄한 명령.
아직 겨울을 겪고 있는
눈앞에 떠오르는 이들에게 마음으로 속삭여본다.
봄이 온다고.
마침내 봄은 오고야 만다고.
우리 모두에게 허락된 좋은 봄날에 함께 걷기를.
좋은 날이 될지니.
#늦바람_팬질_무섭다
#귀호강_눈호강_마음호강
#봄을_지나_곧바로_최정상으로
#그도_데이지꽃으로
헬레보루스(크리스마스 장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