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삶
이국에서의 삶은 가장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다.
나를 표현하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인 말이 나를 속박하고 배반한다.
머릿속에 있는 내 생각과 언어가 감옥에 갇혀 있는 느낌이다. 살아온 세월만큼 축척된 자연스럽고도 명쾌한 모국의 언어들이 철커덩 쇠창살 문 같은 내 입을 통과하면 어눌하게 뭉개진 파편의 소리로 부서져 흩어진다. 멀쩡한 어른이 초등 아이만도 못한 언어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답답함과 자괴감과 괴리의 시간을 겪다 보면 차라리 안전하고 따뜻한 침묵의 감옥에 갇혀 있고 싶어진다. 밖은 날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님을 확인사살 당하는 고문실이므로. 그래서 벗어나야 할 감옥의 담을 더 높고 공고하게 쌓는 아이러니.
그러다, 한국 사람을 만나면 갑자기 온 감각이 살아난다. 명료한 의식의 템포에 맞춰 조금의 지체도 없이 말이 물처럼 흐른다. 거대한 댐에 갇혀 있던 말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온다. 안 해도 되는 말을 주절주절 여과 없이 내뱉기도 하고. 콩글리시와 어색한 웃음을 거두고 되찾은 모국어의 권력을 누리며 미묘한 뉘앙스까지 완벽하게 살리는 갑자기 비대해진 거만함이 드러나기도 하고.
언어 때문에 몇십 년의 삶 전체가 부정당하는 느낌은,
뽑혀와 아무리 새 땅에 다시 뿌리내리고 새로 잎을 내고 꽃을 피워도
물 위에 떠있는 부평초 같고
안갯속 구름 위에 떠 있는 섬 같다.
언어를 잃고서 얻은 건 뭘까...
우물 안 개구리처럼 확신에 찬 울음소리는 적어도 삼가는 조심성.
세상엔 너무나 다양한 이야기가 존재함을 배워가는 이해의 폭.
이 세상 어느 곳도 완전하지 않음을 아는 나그네 의식.
말보다 더 진실하고 큰 울림으로 전달되는
눈빛과 표정과 손짓과 행동이 있음에 감사하며
주어진 삶을 온몸으로 뚫고 살아가는 일상의 날들을 가졌노라고 자위해 본다.
#이렇게_글쓰기를_시작하게_된_계기일지도
*표지 그림은 인터넷에서 가져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