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모습으로
대학 가을 방학을 맞아 며칠 집에 온 아들이 함께 장을 봐달라고 했다. 같이 사는 친구들과 Kbbq Night을 한다고 삼겹살이랑 각종 부재료를 사야 한다고 같이 H-Mart를 갔다. 늘 남편과 함께 장을 보고, 딸은 가끔 한국 간식이 필요하면 따라가는 정도이지, 아들 녀석과는 함께 마트에 간 기억이 언제인지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랜만이다.
남편과 장을 볼 때는 절대로 먼저 꺼내지 않는 카트를 가져오고, 무겁다고 들지 않는 쌀 포대를 번쩍 들어 카트에 담고, 아들이 밀던 카트를 나도 모르게 자꾸 잡게 된다. 키가 180이 넘고 덩치도 좋은 녀석인데, 뭐가 아까운지 자꾸 오버를 하는 내 모습에 실소가 나온다. 아들보다 작고 왜소한 남편에게는 당연히 다 시키는데, 간사하게도 아내의 마음이 다르고 엄마의 마음이 다르다.
돌아와 왜 이럴까 생각해 보니, 아들은 고개도 못 가누던 아기 때부터 만나서인지 자랄 때의 모든 돌봄과 습성이 그대로 담아, 훌쩍 다 자란 청년임을 머리로는 인식하는데 자꾸 내 몸이 먼저 나간다. 남편은 20대 후반 청년의 모습으로 만나서일까. 이제 늙어가는 모습은 안 보이고 옛날 체력 그대로 요구하는 기대가 여전하다.
지나간 시간은 아름다운 추억과 치열한 경험과 감사함으로 남겨두고,
아이들이 자라는 그만큼의 현재 모습대로 봐내는 훈련을 의식적으로 하지 않으면 생각 없이 행동하는 어른이 되기 십상이겠다.
귀하게 여기고 소중히 대하는 마음은 그대로 간직하면서,
아이들을 자꾸 부풀려 보고 싶은 과대망상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아쉬워하는 욕심도,
혼자 잘 해내는 일을 참견하거나 대신해 주는 교만과 간섭도,
나이에 맞지 않게 대하는 어리석음까지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겠다.
나도 모르게 너희들을 가리는 나무가 되지 않기를.
너희들이 훨씬 커져 하늘을 향해 쭈욱 뻗어갈 수 있도록
나는 더 낮아지고 낮아져
너희들의 뿌리를 감싸는 든든한 흙으로 남기를.
비바람을 대신 맞아줄 순 없지만 아무리 거센 폭풍이 몰아쳐도
너희를 끝까지 붙드는 묵묵한 땅으로 남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