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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비 Feb 20. 2024

그림일기

행복의 비밀

초등학교 시절 매일 숙제였던 그림일기.

그림도 그려야 하고 그림에 맞게 글도 써야 하고. 신났던 일이 있는 날이야 쓰기가 쉬웠지만 어린 마음에도 맨날 그날이 그날 같은 일상을 날마다 다르게 적고 그리는 건 고역이었다. 쥐어짜기도 하고 어떨 땐 없었던 일을 거짓으로 슬쩍 집어넣기도 하면서 꾸역꾸역 선생님께 제출했던 기억이 있다.


이제 나이가 들어보니 그 그림일기에 참으로 인생 행복의 비밀이 있는 것 같다. "난 행복해. 난 기뻐."라고 말한다면 그 행복과 기쁨이라는 추상형 명사에 대해 내가 왜 행복한지, 왜 기쁜지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형상화시킬 수 있는 장면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의 명제에 대해 실제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오래된 논리적 형식을 이 그림일기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면 심한 비약일까... 글과 그림. 이론과 실제. 믿음과 실천. 앎과 삶. 맘과 몸. 그 이분적 균형의 지혜.


오늘 아침 행복했다.

창밖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밝은 햇살이,

쌀쌀한 기온 가운데서도 어느새 녹녹해져 오는 바람이,

창밖에 흐드러지게 핀 동백이,

온 집을 감싸는 커피 향이,

아직 자고 있는 남편과 딸의 존재가,

따뜻한 공간과 나만의 책상이,

날마다 할 일이 있는 하루가 감사하고 행복했다.


결국 내게 행복을 주는 생생한 장면들을 내가 그려내는 것.

내게 주어진 축복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감사하는 것.


날마다 반복되는 별 것 없는 일상을 어떻게 그려내야에 따라, 어떻게 이해하고 써 내려가느냐에 따라 인생은 달라진다. 나의 인생은 내가 그리는 그림과 쓰는 글로 날마다 채워지는 그림일기이다. 때론 시커먼 잿빛도 있지만, 말도 안 되는 낙서와 같이 엉긴 날도 있지만, 우리에게 축복은 날마다 새롭게 쓰고 그릴 수 있는 하루가 어김없이 주어진다는 것.  


같은 날은 없다. 날마다 새로운 날이다. 새로운 축복과 감사와 경이와 기적의 날이다.


"Your mercy is new every morning; great is your faithfulness." Lamentations 3:23

위 그림은 구글에서 발췌. 밑의 그림은 동네 산책 중 찍은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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