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는 다수에 의한 그릇된 산물
나는 그의 화법을 이해하지 못한다.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사과하려면, 그에게서 진심이 느껴지도록 해야 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
그가 사과한다며 보낸 메시지는 오히려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다.
그의 메시지는, 머리글엔 ‘사과한다’로 시작하지만, 중간쯤엔 ‘당신의 잘못은...’이라는 형식이다. ‘나만 잘못했나?’ ‘너도 잘못한 것이 있다’라는 식이다.
언쟁은 쌍방이다. 그러나 사과의 내용이 언쟁의 연장선이어서는 안 된다.
특히, 그가 지적하는 잘못이라는 것이 일방적 주장이라고 느끼는 순간, 사과 메시지는 진정성을 잃어버린다. 그간의 언행으로 미루어, 이 또한 가면 뒤에 숨긴 ‘의도적 도발’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이 고소 고발 등의 행정 절차를 준비하면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의도로 유사한 행위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상대를 압박하려는 목적과 함께, 사실 여부를 떠나서 상대의 잘못을 고지하고 이에 대한 상대의 반응을 엿보려는 얄팍한 행위였다. 상대가 순진한 사람이라서 그의 의도에 말려든다면 이를 유리하게 이용하려 든다.
그가 그렇게 까지 비이성적인 사람이라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괘씸한 감정은 어쩔 수 없다. 이런 형태의 화법을 통해서 그는 그간 잘못된 학습을 한 것 같다. 사람들의 이야기 중에서 ‘뒤끝이 있을 것 같다’, ‘무섭다’ 등이 회자된다는 것은 상대가 느꼈을 감정이 어떠했을지 유추할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더 이상 문제를 키우고 싶지 않은 탓에 감내하고, 대꾸하지 않는 방법으로 그의 승리(?)를 인정한 셈이다.
그를 직접적으로 비난할 의도는 없다. 그러나 그가 리더의 역할을 맡은 자이기에 스스로를 올바르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모두의 미래를 위해서...
하지만, 주변에선 그냥 그냥 넘어가 주기를 바라는 듯한 언행을 목도한다. 내가 문제를 삼았을 경우, 직면해야 할 불안정과 불편함을 회피하고 싶은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처한 입장에 따라 제각각 달리 생각하고 행동함은 당연한 것이다. 나 역시 그리 행동했을 것이다. 그러나 입장이 바뀌고 보니 주변 사람들의 행동이 구분되어 보인다.
‘나와는 관계없다는 듯 선을 긋는 사람, 소극적으로 동참하며 관용을 종용하는 사람, 말로는 적극 동참하지만 행동은 소극적인 사람, 말과 행동으로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사람’
침묵하는 다수에게,
그는 주변의 침묵하는 다수를 인지하고 있으며, 여러분을 충분히 의식한 행동을 합니다.
그가 보낸 사과라는 형식의 메시지도 언쟁의 상대방이 아닌, 침묵하는 여러분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는 “나의 잘못은 코트 내 질서 유지자 역할을 충실히 하려다 보니 발생한 실수이지만, 당신의 과오는 질서에 어긋한 행위라는 것”이라는 점을 주장함으로써, 침묵하는 다수에게 자신의 정당성을 어필하려 합니다.
그러나 역할에 걸맞은 정당성이 인정되려면, 합리성과 함께 상대에 대한 배려심을 먼저 갖추도록 해야 합니다. 이점을 부각하고자 할 따름입니다.
‘침묵하는 다수’는 ‘잠재적 이해당사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