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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빕니다

by 길 위에

손녀의 첫 미사 참례가 가져온 신비한 기쁨


말도, 걸음마도 아직 먼 생후 3개월.


하지만 이 작은 생명은
어느덧 세상을 향해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처음으로
엄마와 할미 품에 안겨
성당 미사에 참석했습니다.


높고 넓은 천장,
햇살이 스며드는 창문,
낮고 깊은 어른들의 기도 소리,
성가대의 화음,
신부님의 잔잔하고 따뜻한 음성.


처음 마주하는 모든 풍경들.


혹시 울지 않을까,
불편해하지는 않을까,
엄마와 할미는 걱정스레 아이의 얼굴을 살폈지만


아이는,
그 모든 낯섦을
눈동자 가득 담아내고 있습니다.


동그랗게 뜬 눈으로
이리저리 세상을 살피며,
작은 몸은 엄마 품에 안긴 채


마치 오래전부터 이 자리를 기다렸다는 듯
조용히, 고요히
경건한 시간 속으로 스며듭니다.


성체를 모시는 순간에도
엄마 품에서
그저 숨을 고르듯,


들리는 소리마다,
보이는 빛마다,
하나하나 마음에 새기는 듯합니다.


아이는 아직 말을 하지 못하지만,
오늘 이 시간은
몸으로 드린 첫 기도이자,


세상과 신 앞에 올린
가장 순수한 미사였는지도 모릅니다.


기도란,
말보다 먼저 오는 마음의 떨림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맑은 눈빛으로
이 시간을 함께한 아이는

아마도 누구보다 깊고 단단한 마음으로
오늘의 미사를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손녀가 살아갈 이 세상에
평화가 함께 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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