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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미숙 Feb 25. 2022

너는 뭐가 그렇게 감사한데?

콜센터 10년 차가 하고 싶은 말


"너는 뭐가 그렇게 감사한데"



콜센터 상담사 시절 팀장한테 혼나는 중이었다.

무슨 일 때문에 혼나고 있었는지는 기억 안 나지만 큰일이었다.

나는 고장 난 라디오처럼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지은 죄가 커서 그 말 밖에 할 말이 없었다.

이미 팀장은 너무 화가 나서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고 거기다 대고 상황 설명을 했다가는 정말로 내일 출근 못 할 거 같아서 죄송하다는 말만 했다.




점점 가라앉는 팀장의 목소리에 이제 끝났다 보다 생각하고 습관적으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했다.

갑자기 팀장이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터트렸다.







내가 근무하는 콜센터는 오전 9시 땡 하면 전화받는 소리로 웅성웅성한다.

한참 콜이 들어오는 오후 시간에는 시끄러울 정도로 사무실이 울린다.

옆 사람 상담 소리에 집중이 안 되는 상태에서 일을 하려고 하니 모두가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때 내 앞에서 열 내고 있는 팀장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마지막 팀장의 말 한마디에 멍했던 정신이 돌아왔다.







"너는 뭐가 그렇게 감사한데?"



그러게. 나는 회사 다니면서 뭐가 그렇게 감사했을까.

내 고막 잘 있나 안부를 물어볼 정도로 혼이 났는데 왜 감사했을까.







"협조 메일 확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방향으로 처리해 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네네 감사합니다!"



생각해 보니 일하면서 감사하다는 말을 습관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상대방이 당연히 해야 할 일에도 나는 감사해하고 있었고 심지어 대화 중 끝인사에도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기운이 쭉 빠졌다.

지금까지 내 기분은 생각하지 않고 상대방의 기분을 맞추느라 온 신경을 집중했었다.

내가 감사하다고 말할 때마다 내 자존심이 조금씩 깎여나가는 기분이었다.







정말 고마워서 상대방에게 하는 감사 인사는 인사를 하는 나도 기분이 좋다.

하지만 회사에서 습관적으로 튀어나오는 감사 인사는 나를 위축시킨다.



이 세상에 내 기분을 잘 알아주는 사람이 나 말고 또 누가 있을까 싶다.


이제는 나에게 더 많은 감사 인사를 하기로 했다.

떨어진 자존심을 주워 담아야겠다.



알람 소리에 눈 감지 않고 바로 일어나 줘서 고마워

오늘 하루 잘 버텨줘서 고마워

오늘은 아프지 않아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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