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마지막 출근 날, 조기 퇴근을 했다. 크리스마스 연휴, 황금연휴, 명절 연휴 등 긴 연휴가 시작되는 전날 조기 퇴근하는 횟수가 많아졌다. 초반에는 신이 나서 뒤도 안 돌아보고 회사를 뛰쳐나갔지만 조기 퇴근 하는 날이 늘어날 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는 12년 째 콜센터에 근무하고 있다. 아침 9시부터 6시까지 쉴 틈 없이 전화를 받아야 한다. 하루에 화장실을 갈 수 있는 시간은 30분 정도다. 전화를 끊고 상담 이력을 남기기도 전에 다음 전화를 받아야 하루 목표 건수를 채울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 조기 퇴근은 다른 회사 이야기였다.
AI가 발달하면서 많은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는 내용을 책에서 보았다. 콜센터도 그중 하나였다. 탐독을 좋아하는 난 AI와 관련된 책들에 파고들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었지만 아직 회사에 잘 다니고 있어 가슴으로는 와 닿지 않았다.
올 것이 왔다. 우리 회사에도 AI 관련 부서가 늘어나고 회사 홈페이지에는 챗봇이 등장했다. 몇 년째 감축되는 인원은 점점 늘어나고 센터 하나가 사라지기도 했다. AI와 챗봇이 우리 일들을 다 해주니까 결국 조기 퇴근 하는 날이 많아졌다.
온라인, 인터넷의 발달로 웬만한 업무는 고객들이 회사 홈페이지에서 다 처리할 수 있다. 홈페이지에서 하다 하다 안되면 콜센터로 전화 했기 때문에 일반 상담보다는 불만 접수가 많다. 이제는 AI와 챗봇의 업무 범위가 늘어나면서 불만 접수도 줄어들고 있다.
나는 우리 회사가 좋다. 직장인들이 들으면 화를 낼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물론 입사 초반에는 매일 울면서 퇴사를 입에 달고 살았다. 진급에서 여러 번 탈락할 때마다 이 회사와는 인연이 아니라고 또 울었다. 지금은 마음 편히 맨 아래 사원으로 맡은 일만 열심히 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회사 덕분에 생계 걱정 없이 이렇게 글을 쓸 수 있게 되지 않았나 고마운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내가 지금 하는 일을 오랫동안 하고 싶다. 올해도 힘들다며 희망이 없다며 퇴사하고 휴직하는 동료들을 보고 내 자리도 위태로울까 하는 불안이 꿈틀거린다. 그게 언제가 되었든 미련이 남지 않게 회사를 사랑해야겠다. 내년에도 광화문 거리를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