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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미숙 Feb 14. 2024

사람 너무 미워하지 마

13년 차 콜센터 직장인이 하고 싶은 말

''너 니트 입고 오니까 떡대 장난 아니다.''


몇 년 전 회사에 내가 좋아하는 민트색 니트를 입고 갔었다. 출근길에 옆팀 부팀장과 마주쳤다. 몸집이 크고 단단한 체격의 사람을 부르는 단어가 담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고 지나갔다.
그 뒤로 나는 니트를 입지 않는다.






내 몸무게는 고무줄이다. 살이 확 찔 때도 있고 갑자기 확 빠질 때도 있다. 뚱뚱하면 뚱뚱한 대로 날씬하면 날씬한 대로 내 몸을 미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팀장의 말을 듣고 자존감이 떨어졌다.


부팀장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원들에게도 비슷한 행동을 했다. 본인의 기준에서 못 생기거나 뚱뚱한 여자들만 골라서 괴롭혔다. 폭언은 기본이고 업무적인 괴롭힘도 있었다.


최대한 마주치지 말자, 무시하자는 생각으로 부팀장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도 부팀장의 악행은 멈출 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부팀장은 업무적으로 큰 실수를 하게 되었다. 실수한 뒤에 수습한다고 저지른 행동은 도덕적 문제로까지 이어져 회사가 발칵 뒤집어졌다.


평소에 부팀장은 자신에게 도움 되는 상급자들에게는 무한 충성을 다했다. 그 사건이 일어난 뒤로 자신의 편이었던 상급자들은 등을 돌렸다.


그 뒤로 부팀장은 조용히 지냈고 나는 다른 센터로 이동하게 되었다. 눈앞에 당장 보이지 않으니 더 관심이 없어졌고 곧 잊게 되었다.




연말, 연초 매년 이루어지는 인사이동 발표.
회사 친구를 통해 부팀장의 자리가 위태로워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잊고 있었던 떡대가 생각났고 그 사람의 처지가 안타깝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았다.


''사람 너무 미워하지 마.''


나와 같은 회사에 다녔던 남편에게 부팀장의 근황을 이야기했다. 남편도 부팀장에게 당한 일들이 있기 때문에 내 기분에 공감해 줄 거로 생각했다.


''그런 사람은 그냥 무시하면 돼. 생각하면 너만 괴롭고 힘들어.''





내 편이 아닌 남편의 말을 듣고 머릿속이 맑아졌다. 불편했던 마음도 편안해졌다.



신경 안 쓴다고 생각했지만, 머리 속 한편에는 부팀장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 사람이 퇴사했으면 망해버렸으면 하는 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에게 상처 되는 말을 듣고도 나는 지금까지 부팀장을 신경 쓰고 있었다. 나름 신경 안 쓴다고 했지만, 부팀장이 잘되지 않았으면 하는 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니 계속 마음이 무겁고 두려웠다. 그 생각을 할 때마다 자존감은 떨어지고 감정 소비로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남편의 말처럼 나를 먼저 생각하기로 했다. 부팀장이 어디서 무엇을 하든 이제 신경도 쓰이지 않는다. 영양가 없는 말로 내 자신을 괴롭혔다고 생각하니 시간만 아깝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에게 신경 쓰지 말고 내 곁에서 나를 지켜봐 주고 내 생각을 해주는 사람들에게 더 집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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