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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안 Nov 20. 2023

아이디어를 과감히 훔치는 전략

전략 4

 6명의 심사위원이 내 이야기를 듣기 위해 원형으로 둘러앉아 있었다. 예비창업패키지 2차 발표 평가였다. 지난 며칠간 준비한 발표를 외운 티가 안 나게 말하려고 애썼다. 10분 동안 아이디어를 발표하고, 10분 간의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내 아이디어는 운동하는 사람을 연결하는 어플(app)을 만들고, 플랫폼으로 발전시킨다는 것이었다. 심사위원들을 살펴보니 책상에 놓인 종이만 쳐다보고 있었다. 관심 없어 보이는 심사위원들은 불길한 예감이 들게했다. 가장 왼쪽에 앉아 있던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심사위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사업계획서 상의 '재무제표를 분석해 봤는데 매출이 언제 나냐?'고 물어봤다. 이익은 빨라야 2~3년 후에 날 것이지만 나는 1년 후에 매출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플랫폼을 만들려면 사용자를 최대한 빨리 많이 확보해야 한다. 내가 분석했던 기업은 페이스북과 우버였다. 그리고 플랫폼 모델에 대해 공부했었다. 인터넷 디지털 산업에서 성공한 기업들은 거의 다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다. 이 기업들은 창업 초기에 5년 또는 10년이 넘도록 적자상태였다. 페이스북은 광고를 하면 즉각 수익을 낼 수 있었지만 사용자를 끌어모아 네트워크 효과를 만들기가 우선순위였다. 창업 후 5년이 넘도록 광고도 하지 않고 수익은 없었다. 이런 기업들의 전략은 옳았다. 플랫폼으로 성공하려면 '네트워크 효과'를 만드는 것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돈보다는 사용자 확보에 주력하겠습니다. 어플을 만들고 바로 배너광고를 띄우면 매출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용자 확보부터 할 계획입니다. 플랫폼으로 만들기 위해 디지털 기업들의 기능과 전략을 벤치마크 할 계획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심사위원이 '모방하겠다는 거예요?' 하며 소리를 높였다. 나는 기가 죽어 모방하겠다는 게 아니라며 주절거렸다. 결국 이 2차 발표평가에서 떨어졌다. 나중에 안 사실은 1차 서류평가는 10:1 정도의 경쟁률을 뚫어야 하는 어려운 일이고, 2차 발표평가는 5:3 정도의 경쟁률로 떨어지기보다 붙을 확률이 더 높았다. 내가 설명을 제대로 못한 것도 화가 났지만, 심사위원이 소프트웨어 산업을 전혀 이해 못 한다는 원망도 들었다. 디지털 제품은 모방이 매우 쉽고 누구나 모방한다. 코드나 알고리즘은 특허로 거의 보호되지 않는 매우 치열한 산업이다.

    

모방에서 혁신으로

모방의 대가에서 혁신가로

왕싱은 1990년대 델라웨어 대학교에서 컴퓨터 네트워크를 전공했다. 박사학위를 밟던 중 프렌드스터를 알게 되었다. 프렌드스터는 '인터넷에서 친구 사귀기'라는 소셜네트워크의 원조였다. 왕싱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의 잠재성을 알아차렸고 사업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박사과정을 그만두고 중국으로 돌아가서 프렌드스터를 모방한 사이트를 만들었다. 아이디어는 모방했지만 디자인은 바꿨다. 그러나 당시 중국에서는 인터넷이 널리 사용되지 않았고 컴퓨터 보급율도 낮았기 때문에 실패했다. 왕싱은 이때부터 연쇄 (모방) 창업가가 되었다.  

    2004년 마크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을 만들었다. 페이스북은 하버드 대학에서 시작하여, 미국 대학으로 퍼지고, 곧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왕싱은 페이스북을 복제했다. '캠버스에서'라는 뜻의 '시아오네'라는 사이트를 만들고 세세한 디자인까지 페이스북을 그대로 베꼈다. 왕싱은 시아오네를 판매했고, 시아오네는 차후 '런런'이라고 이름으로 바꾼 후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했다. 2006년에는 잭 도로시가 트위터를 만든 해이다. 다음 해 왕싱은 트위터를 그대로 복제해서 중국 시장에 내놓았다. 이 사이트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 퍼지는 것을 방치하다가 중국정부의 개입으로 사이트를 폐쇄당하고 말았다. 2010년에는 그루폰이 공동구매 사이트로 세계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있었다. 왕싱은 그루폰을 그대로 모방해 메이퇀(meituan)을 만들었다.

    리카이푸의 <AI 슈퍼파워>에 따르면 중국인들 조차 왕싱의 '복사해서 붙이기'가 도를 넘었다고 생각했다. 중국 회사들이 미국 기업을 모방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최소한의 현지화나 자신만의 스타일로 조금 각색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왕싱의 복제 사이트에는 그런 노력이 조금도 없었다. 왕싱은 '모방은 퍼즐의 한 조각일 뿐, 어느 사이트를 복사하고 또 어떤 기술적, 사업적 전선을 추구할지는 본인이 선택했다'라고 반론했다. 2023년 현재 메이퇀은 기업가치가 150조 원에 달하는 거대 테크기업이다. 반면 원조인 그루폰은 파산 지경에 이르렀다가 헐값에 매각되어 그 존재감이 미미해졌다.

    리카이푸는 서구인들이 왕싱의 성공을 잘못 분석하고 있다고 말한다. 서구인들은 메이퇀의 성공이 중국 정부의 보호로 경쟁에 덜 시달리고, 사업 아이디어는 미국에서 훔쳐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왕싱이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복제할 때 실리콘밸리를 따라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마크 저커버그도 페이스북이라는 아이디어를 교내의 다른 학우들로부터 받아서 가로챘다는 이유로 소송에 걸렸었다. '인터넷에서 친구 사귀기'라는 아이디어 자체도 이미 프렌드스터나 마이스페이스라는 기업이 먼저였다. 페이스북은 마크 저커버그 한 사람의 완벽한 독창성에 의해 태어난 것이 아닌 셈이다.

    리카이푸는 '왕싱이 30조 원 가치의 기업을 일군 것은 비즈니스 모델을 중국에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루폰까지 포함해 5,000개가 넘는 회사가 똑같은 일을 했다.'라고 말한다. 중국에서 그루폰은 현지화를 위해 중국의 최대 인터넷 포탈 업체와 제휴를 맺었었다. 그루폰은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으며 경쟁에 이기려고 애썼다. 중국의 기업들은 공격적으로 서로의 제품을 모방하고 출혈 가격경쟁을 한다. 그리고 이기기 위해 밤낮으로 일한다. 메이퇀은 미국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시작했지만, 그것을 중국인들의 기호에 맞게 현지화하려고 노력했다. 왕싱은 치열한 경쟁을 통하여 세계 수준의 기업가가 된 것이다.


모방과 벤치마크

훌륭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 파블로 피카소

1997년 애플의 CEO로 복귀한 스티브 잡스는 '다르게 생각하라'라는 광고를 냈다. 스티브잡스는 아이팟, 아이튠즈, 아이폰, 아이패드라는 연속 혁신을 일으켰다. 혁신의 아이콘인 스티브 잡스는 '훌륭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라는 말을 즐겨 썼다. 이 말의 원조는 파블로 피카소이다.

    스티브 잡스가 80년 대 만든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 기반의 운영체제는 혁신이었다. 당시 컴퓨터의 작은 모니터에는 흑백에 획일된 글씨체만 있었다. 스티브잡스는 다양한 글씨체를 선택할 수 있게 만들었다. GUI는 사용자가 컴퓨터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어 컴퓨터가 더 빠르게 보급하는데 기여했다. 그러나 GUI를 최초로 개발한 것은 제록스였다. 스티브 잡스는 제록스에 방문하였다가 이 멋진 아이디어를 보고 와서 빌게이츠에게 외주를 주어 GUI 기반의 운영체제를 개발하였다. 기술을 최초로 개발한 제록스는 계속 복사기 회사로 남았다. (이 아이디어는 다시 빌게이츠에게 빼앗겼다. 빌게이츠는 애플에 운영체제를 만들어주고 1년 후 윈도를 만들었다.)


실리콘 밸리는 순수한 혁신 정신을 강조한다. 그들에게 왕싱의 카피캣 전략은 경멸의 대상인 듯하다. 그러나 모방은 언제나 혁신의 토대였다. 바이두, 텐센트, 알리바바는 중국의 구글, 중국의 메타, 중국의 아마존이라고 불린다. 이 회사들은 모두 카피캣으로 시작했다. 현재 이 기업들은 실리콘 밸리 기업들의 아성을 위협하는 경쟁자가 되었다. 특히 인공지능 분야에서 중국 기업들은 이미 실리콘밸리 턱 밑까지 쫓아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기업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악전고투하였다. 제품 생산 프로세스를 개선하고, 원가를 절감하고, 기술을 발전시키고, 그 가치를 인식시키기 위한 마케팅 수준을 높이고 있다.

    특별한 아이디어가 있다면 특허를 내고 법적으로 보장받아야 한다. 그러나 특허를 내서 지적재산권을 보장받으려는 시도는 대개 혁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아이디어는 한 사람에게만 소유권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시장의 요구에 맞게 아이디어를 멋진 제품으로 바꿀 때 비로소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트렌드를 정확히 인식하고, 리스크를 감수하는 사업가가 혁신을 일으킨다. 모방이란 말이 여전히 거북하다면 성공 사례를 벤치마크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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