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인류는 언어를 통해 지구를 정복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호모 사피엔스 이론에 따르면 인류는 사회적 동물이다. 한 인간은 다른 인간에 대해 떠들어(gossip) 댄다. 예컨대 남자나 여자는 사자가 어디 있는지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들은 누가 누구와 잠을 자고, 누가 정직하고,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아는 게 중요하다.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인간은 언어를 통해 소통하고 스토리를 만든다. 스토리를 통해 추상적인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협력하고 번영할 수 있었다. 유발 하라리는 스토리 없다면 신도 없고, 천부 인권(태어날 때부터 인간에게 주어진 침해할 수 없는 권리)도 없고, 윤리와 도덕도 없다고 말한다. 인간은 스토리를 통해 세상을 이해한다.
인간처럼 말하는 것은 인간이다.
2022년 11월 챗gpt가 공개된 후 그 열풍이 뜨거웠다. 1년이 지난 지금은 잠잠하다. 그러나 신기술은 단기적으로 과대평가되고 장기적으로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1948년 최초의 컴퓨터 애니악이 발명되었을 때, 1990년 인터넷이 처음 나왔을 때, 2007년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처음으로 공개했을 때, 이 새로운 기술들에 대한 장기적 잠재력을 과소평가했었다.(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많은 기업들은 몰락했다.)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폰이 세상을 바꾼 것보다 인공지능이 더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챗gpt는 인공지능이란 미래가 눈앞에 다가왔음을 실감케 한다.
챗gpt가 놀라웠던 점은 컴퓨터가 언어(자연어)를 인간처럼 자연스럽게 말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구글의 강력한 검색엔진은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찾아주었다. 그러나 그 글은 다른 어떤 인간(한 인격)이 쓴 글이었다. 반면에 챗gpt는 스스로 말을 만든다. 데이터를 모아서 보여주는 것을 넘어 통찰력도 얻을 수 있다. 마치 인격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기계가 인간처럼 생각할 수 있는가?'는 오래된 철학정 논쟁거리였다. 1950년 앨런 튜링은 그 기준점을 제시했다. 튜링 테스트(turing test)는 인간의 것과 동등하거나 구별할 수 없는 지능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기계의 능력에 대한 테스트다. 이 테스트의 평가자인 인간은 벽을 두고 기계 또는 인간과 대화할 것을 제안한다. 평가자는 한 명은 인간이고 하나는 기계인 것을 안다. 대화는 컴퓨터 화면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만약 이 대화에서 평가자가 인간과 기계를 구별할 수 없다면 기계는 합격한 것이다. 인간처럼 말하는 것은 인간이다.
챗gpt에게 '인공지능에 대해 비판하라'라고 말하자 다섯 가지를 꼽았다. 전문가의 답변이다. 챗gpt와 같이 자연어를 이해하는 인공지능의 활용가능성은 무한하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제공하는 이미지 생성 인공지능을 사용해 봤다. '2030년 서울의 풍경을 그려봐'라고 말했다. 5초쯤 지났을까 높은 건물과 녹색이 조화를 이루고 드론이 날아다니는 이미지가 생성되었다. 제법 그럴듯해 보인다.
인공지능이 못하는 일이 있는가
인공지능은 최고의 전문직으로 꼽히는 변호사 시험을 통과했다. 앞으로 인간은 인간 판사에게 재판을 받느니 인공지능에게 재판을 받을지도 모른다. 이스라엘의 한 연구는 판사가 점심을 먹기 전보다 점심을 먹은 후에 가석방 판결률이 압도적으로 높음을 밝혀냈다. 배고픔이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칠 정도록 인간의 의사결정은 불완전하고 불공정하다. 판사가 인공지능이었다면 적어도 지치지 않고 판결을 내렸을 것이다.
비슷한 예로, 채용에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시도가 있다. 인공지능은 당신이 온라인에서 남긴 데이터를 모두 수집하고 분석할 수 있다. 메타의 페이스북은 이미 10년 전부터 사용자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페이스북은 사용자가 어떤 글을 클릭하고, 어디에서 떠나고, 어디에 '좋아요'를 누르는지 추적한다. 이 데이터를 통합하면 사용자가 직접 밝히지 않은 성적 지향(예:동성애자), 주소, 정치성향 같은 민감 정보도 알아낸다. 페이스북이나 구글에 어떤 광고가 떴다면 그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내가 지원하는 회사가 인공지능으로 나를 정확히 분해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현재 챗gpt 4.0 버전은 유료이고 3.5는 무료이다. 유료와 무료로 나누는 프리미엄(freemium) 가격 모델은 유료 버전의 성능이 무료 버전보다 몇 배는 더 좋아야 한다. 챗gpt 3.5도 모든 지식을 다 가지고 있는데 4.0은 어느 정도 수준인 걸까? 인공지능은 어떤 분야든 비판하고 기사를 쓸 수 있다. 시를 쓸 수 있다.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인간의 고유한 영역이라고 느껴지던 창의성 발휘까지 일정 수준으로 해내고 있다. 이 상태로 발전하면 10년 뒤에는 인공지능이 못하는 일을 찾는 게 더 어려울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 존재의 의미는?
인공지능은 디지털화된 인간의 정보를 모으고 분석하여 영양섭취, 운동, 수면, 치료계획을 제공하며, 개별 상황에 맞게 맞춤형으로 장수를 실현하도록 도울 수 있다. 인간은 건강을 위해서 계속 돈을 쓸 것이기 때문에 헬스케어는 인공지능을 활용하기 위한 투자가 가장 활발한 분야이다. 인간에게 생존보다 중요한 게 있을까?
그러나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했듯이 '단순히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이다. 인공지능이 모든 것을 해주면 인간은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할까? 유발 하라리의 말대로 모든 것이 '인간이 만들어낸 스토리'에 불과하다면 중요한 것은 하나도 없다. '민주주의', '생명의 가치', '신'도 스토리일 뿐 언제든지 반박할 수 있는 허구이다.
챗gpt는 모든 지식을 갖고 있다. 챗gpt는 인간보다 스토리를 잘 만든다. 인공지능이 스토리를 잘 만들어 낼수록 인간의 가치가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글을 쓰는 것도 말을 하는 것도 인공지능이 더 잘한다. 이제 사람들은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궁금한 게 있으면 스마트폰을 꺼내서 바로 검색부터 한다. 아마존이나 바이두가 만든 인공지능 스피커는 사람의 말을 이해하고 대화가 가능하다. 인공지능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점점 더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의 신념체계는 인공지능이 만든 스토리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갈수록 전지전능해지는 인공지능은 많은 사람들에게 존재의 불안을 촉발할 것이다. 자동화로 기계에게 일자리를 빼앗길수도 있고, 애초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인공지능을 포함한 첨단 기술에 많은 사람들이 연관성을 못 느끼고 소외될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인공지능 시대에 대비하여 '명상'할 것을 제안한다. 명상에 대한 한 가지 정의는 없지만 명상의 공통적인 특징은 내면을 지향하는 행위이다. 가만히 눈을 감고 앉아 있으면 무엇을 얻을까? 명상으로 개발되는 한 가지 능력은 '사실과 인식은 다르다'는 걸 구분하는 것이다. 사실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머릿속에서 생긴 인식일 가능성이 높다. 내면을 봄으로써 세상을 더 잘 이해하고 세상에 덜 휘둘릴 수 있다. CEO라면 명상을 하여 더 맑은 머리로 더 나은 경영전략을 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창의성과 기술혁신의 아이콘인 스티브 잡스는 명상을 했고 불교에 심취해 있었던 걸로 유명하다. 구글을 비롯한 많은 실리콘 기업들은 근무 시간 중에도 명상할 것을 장려한다. 뇌파 측정이나 심박수 측정을 통하여 명상을 돕는 인공지능은 이미 개발 중이다. 명상은 인공지능에 압도당하지 않고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힘의 원천 중 하나이다. 삶의 방식과 가치관이 급변하여 혼란스럽다면 명상을 시도해 보자. 세상에 대한 고유한 관점을 가지는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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