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동안 하루에 10시간 이상 책상 앞에만 앉아 있었다. 변비에 걸렸다. 아랫배가 볼록 나왔다. 답답하고 초조했다. 변비에 좋다는 다시마를 비롯한 식이섬유가 풍부한 음식들을 먹었다. 요가를 하고 아랫배를 마사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일 동안 제대로 된 변을 못 봤다. 아랫배에서 신호는 오는데 변이 나오지 않는 이것은 변비가 확실하다.
최후에 수단으로 약국에 가서 약을 샀다. 효과가 있을까 의심하며 변비약 2알을 맥주와 함께 삼켰다. 다음날 시원하게 변을 봤다. 변비약은 장을 무력화시키고 내성이 생긴다. 약에 의존해서는 안된다.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봤는데 어떤 의사가 줄넘기로 효과를 본 환자에 대해 말했다. 쿵쿵 뛰면서 변이 아래로 내려간다고 한다. 줄넘기 줄이 없으니 계단 오르내리기 운동으로 대체해 봤다. 며칠 동안 아침에 20분씩 계단을 오르내렸다. 어렵지만 변이 나왔다.
유산소 운동이 변비에 효과가 있다. 달리기는 계단 오르내리기보다 격렬하니까 효과도 더 좋지 않을까 싶었다. 밖에 나가서 달려봤다. 러닝화가 없기 때문에 무거운 등산화를 신고 달렸다. 숨을 헐떡였지만 참고 달렸다. 25분쯤 달리고 나니 쓰러질 것 같았다. 최선을 다했다. 성취감이 들었다. 달리기를 꾸준히 해 볼 생각이었지만 며칠 달리고 오른쪽 무릎이 너무 아팠다. 쩔뚝거리며 걸었다. 다시 달리기를 시도한 것은 몇 달이 지나서이다. 나중에 똑같은 부위를 아파보고 알았지만 러너들이 흔하게 겪는 장경인대 증후군이었다. 39년 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갑자기 달리기를 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 후로 계단 오르내리기를 종종 했다. 변비는 사라졌다. 2021년 새해가 되었다. 겨울이야 말로 실내에서 하는 계단 오르기가 장점이 있다. 계단 오르기는 유산소 운동과 무산소 운동의 절묘한 조합으로 구성된 운동이다. 심폐지구력이 증진되고 다리 근력도 좋아진다. 계단 오르기로 운동에 자신감이 붙었고 달리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라톤과 같은 장거리 달리기가 나에게 적합하다.
사람들은 "마라톤은 애들 장난이 아니야"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마라톤에 도전한다. 비장한 각오로 싸움을 거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인내심과 육체적 한계에 부딪혀 보는 것이다. 성취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자신을 시험하는 것이다.
요가를 해왔고 친구들 사이에서 특이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 속된 말로 관종이기 때문에 그런 특이하다는 남들의 시선을 즐겼다. 마라톤이 그렇게 힘들고 특별하다면 내가 관심을 갖는것은 당연하다.
어떻게 달리는지 몰랐다. 사실 달리기에 특별한 방법이 있다고 여기지도 않았다. 그냥 밖에 나가서 달리면 되는 것 아닌가? 달리기는 어디에서나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진입장벽이 낮은 운동이다. 2만 원짜리 러닝화를 한 켤레 주문했다. 러닝화는 기존의 등산화에 비하면 거의 절반 수준으로 가벼웠다.
2월에 몇 번 달렸다. 5km를 달리는 것을 목표로 했다. 달리기를 한번 하면 종아리에서 고관절까지 몸이 너무 아팠다. 달리기는 계단 오르기에서는 쓰지 않는 다리 근육들을 쓴다. 또한, 지난 1년간 밖에 나가 활동하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한번 달리면 이틀은 쉬어야 다시 달릴 수 있었다.
3월이 되고 일주일에 3번 정도 달렸다. 책상 달력에 달리기 할 날짜에 동그라미를 하고 달리기 할 거리를 적었다. 밖에 나가서 왼발을 내딛고 오른발을 내딛는다. 다시 반복한다. 나는 러너가 되었다. 변비로 고생하던 시절은 잊어버렸다. 이제는 거리와 속도에 신경이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