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달리기를 한다고? 네가?
장거리 달리기는 괜찮아
2014년 여름, 30대 초반이었다. 달리기를 하려고 마음먹었다. 알록달록한 색깔의 옷, 나이키 신발, 러닝 백, 아디다스 러닝 모자를 샀다. 그리고 페이스북에 나의 달리기 장비들을 보여주며 달리기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여자가 댓글을 달았다. "오빠가 달리기를 해?"라고 말한다. 기분 나빴다. 대꾸하지 않았다. 나는 달리기를 시작했다. 출퇴근을 뛰어서 하려고 했다. 달리기용 옷가지를 가방에 챙겨 다녔다. 아침에는 출근에 시간에 쫓기느라 달릴 시간이 없었다. 저녁에는 달렸다. 오래 달릴 수 없었다. 뛰고 걷고 하면서 집에 도착하면 땀으로 흠뻑 젖었다. 맥주를 마시면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렇게 한 달 동안 몇 번 달렸다. 달리기용으로 산 옷은 너무 튀어서 평소에 입을 수가 없다. 신발과 옷은 구석으로 들어갔다. 언제인지 기억 안 나지만 다 버렸다.
나는 나이지리아에서 일했다. 치안이 불안한 곳이다. 납치, 강도, 살인이 흔하다. 현지 신문을 보면 갱단이 납치하고 몸값을 요구했는데 가족이 응하지 않자 손가락을 잘랐다는 내용과 증거 사진을 모자이크 처리 없이 보여준다. 사고 발생 확률도 높다. 경비원들이 긴 총을 들고 문을 지키고 담벼락은 3m가 넘는 단지 내에서 생활했다. 한국인들만 20여명 살았다. 나이지리아에 처음 도착한 날 한국과 8시간의 시차와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긴장감으로 매우 피곤했다. 새벽이 돼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갑자기 쿵하는 소리에 잠이 깼다. 형광등이 떨어졌다. 내 침대 옆으로 떨어져서 다행이지 첫날부터 사고를 당할 뻔했다. 피곤해서 그냥 계속 잤다. 아침에는 현지인이 투싼을 몰고 데리러 온다. 사무실에서 10시간을 일하고 다시 집까지 데려다준다. 주말에는 한국 사람들과 장을 보러 가서 일주일치 식량을 구입했다. 식량은 대부분 유럽에서 수입되기 때문에 한국보다 비싸다. 맥주만 한국보다 싸다. 하이네켄을 한 박스씩 사다가 집에 두었다. 매일 맥주를 마셨다. 술을 좋아하는 한국인과 술만 마셨다. 그것이 스트레스를 푸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집, 사무실, 술을 반복하며 뱃살이 늘어났다. 1년이 지나자 처음 나이지리아에 갈 때 입었던 정장 바지와 셔츠가 몸을 조이기 시작했다.
2014년 한국에 들어가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병원에서 재검을 받으러 오라고 했다. 밥을 굶고 재검을 받았다. 의사와 상담했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 범위는 240인데 나는 250이었다. 고지혈증이다. 고지혈증은 당뇨, 고혈압과 함께 3대 성인병에 속한다. 나이지리아 살면서 살이 좀 늘긴 했지만 비만은 아니었고, 30대 초반이었다. 그래서 의사가 아마도 유전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행히 콜레스테롤 약은 내성이 없다고 한다. 약을 처방받았다. 나는 약을 먹기 싫었다. 혼자 이리저리 검색해 보고 일단 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유전으로 피에 지방이 쌓이는 DNA를 타고난 것이라면 운동을 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인터넷에는 운동과 식이요법을 병행해도 성인병은 못 고친다는 증언들이 넘쳐났다. 살을 빼는 대표적인 운동은 달리기이다. 달리기를 하기 위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장비를 구입했다.
돌이켜보면, 어렸을 때도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학창 시절 운동회는 질색이었다. 당시 운동회는 청팀과 백팀으로 나누어 응원을 하고, 어머니도 참여하고, 피날레로 주머니 터뜨리기를 하는 작은 축제였다. 초등학교(그때는 국민학교라고 불렀다) 5학년 때 운동회 연습을 했다. 4~5명씩 100미터 달리기를 했다. 나의 차례를 기다리며 바닥에 앉아 있었다. 젊은 남자 선생이 와서 나의 따귀를 날렸다. 흙장난을 했다는 이유였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었다. 억울하지 않았다. 공개적으로 모욕을 당했다는 것은 알았다. 무기력하고 수치심을 느꼈다. 내 차례가 되어 달리기를 했다. 그때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달리기에서 1등을 했었다. #고마운선생님께
중고등학교 때도 매년 가을이 되면 체력장을 했다. 턱걸이, 공던지기, 100m 달리기, 장거리 달리기, 유연성 테스트 등을 했다. 수업을 안 하고 하루 종일 체력 테스트만 했다. 체력장도 싫었다. 100m 달리기는 매번 꼴찌였다. 고3 때에도 체력장은 했다. 100m 달리기를 했는데 선생이 기록이 너무 느리다고 다시 뛰라고 했다. 열심히 뛰었다. 달리기를 하면 기록 순서대로 줄을 지어 앉았다. 나는 맨 남학생 줄 끝에 앉았다. 달리기는 나를 나약해 보이게 만들었고 자존감은 한 없이 낮아졌다.
장거리 달리기는 싫지 않았다. 3km였는지 5km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운동장을 여러 바퀴 뛰어야 했다. 100m 달리기와는 달라서, 처음부터 전 속력으로 질주하면 금방 지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근육에 젖산이 쌓이지 않도록 페이스를 조절해야 오래 달릴 수 있다. 처음에는 천천히 달렸지만 결국 중간 정도의 순위로 들어왔다. 장거리 달리기는 순위에 따라 줄지어 앉는 걸 하지 않았다.
2021년 겨울. 나는 10개월째 달리기를 하고 있다. 처음에는 한 주에 세네 번 5km씩 달렸다. 부상으로 2주간 쉰 적도 있지만 꾸준히 달렸다.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20km의 거리를 몇 번 달렸다. 트레일 러닝과 마라톤대회에 참여해 완주했다. 속도는 여전히 느리만 멀리 달릴 수 있게 되었다. 내 몸의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는 이미 몇 년 전에 정상으로 돌아왔다. 조만간 42.195km 달리기에 도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