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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샘의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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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움 May 19. 2023

떡볶이와 순대

엄마손 떡순이

 

엄마손 떡순이


 어릴 적부터 이어진 잦은 이사로, 나는 입학한 중학교와 졸업한 중학교가 다르다.


 이야기를 열게 될 첫 번째 중학교는 초등학교를 갓 마치고 입학했던 여자 중학교였다. 온 동네 여자 아이들이 다 모였고, 학교에서 악명 높았던 '합주부'에 들어가게 되었다. 악기를 하나도 몰라도 상관없다고 했다. 중학교 적응이 힘들었던 나는 도피처가 필요했고, 심장을 울리는 첼로를 택했다.


 '그곳'은 남들이 등교하지 않는 시간에 등교를 하게 했고, 남들이 먹지 않는 시간에 점심을 먹게 했으며, 남들이 다 가고 없을 시간에 집을 가게 했다. 선배들은 하늘 같았고, 악기를 켜는 그곳은 전쟁터 같았으며 여름엔 땀으로 젖고, 겨울에는 손이 얼었다.


 아이들이 몰리지 않는 시간에 일찍 등교하는 것도 누구보다 먼저 점심을 먹는 것도 다 좋았지만, 집에 돌아갈 때는 어둑해진 하늘과 약간의 찬 공기가 다였다. 한소끔 끓어오르고 난 뒤 꺼져가는 학교는 언제 시끄러웠냐는듯 고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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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요일이면 악기를 가져가 연습을 해야 했다. 어깨 한쪽에 맨 첼로는 더 무겁게 나에게 의지했다.


'내가 너보다 더 지쳤어.'


 나는 심장으로 말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첼로는 매일 같이 내 등에 누워 몸을 기댔다. 가끔 눈을 흘겼지만 그래도 첼로의 현이 상할까 한 쪽 손으로 오목하게 감싸 내 몸에 더 붙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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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는 바이올린을 켰다. 악기에 대한 애착만큼 서로에 대한 마음 역시 깊었다. 바이올린의 선율은 첼로와 함께 했을 때 더 단단했고, 첼로의 선율은 바이올린과 함께 했을 때 더 섬세했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의 화음을 맞춰갔다.


 겨울로 접어들자, 악기를 든 손은 사춘기 소녀처럼 상기되기 십상이었다. 친구와 함께 유독 추웠던 어느 겨울날 학교 앞 떡볶이 집을 찾았다. 우리는 늘 활을 들었지만, 그 날은 은수저를 들었다. 그 가게의 이름은 '엄마손 떡볶이'였다. 간판은 낡았고 녹이 슬었었다. 메뉴에는 단품도 있었지만, 우리는 '떡순이'를 제일 좋아했다. 떡볶이와 순대를 섞어 한 그릇에 대충 담아주는 떡순이는 순대가 다 풀어질 정도로 양념에 치대져 있었지만 정말, 정말 맛있었다.


 아줌마의 손길을 막 떠난 떡볶이 그릇은 김이 모락모락 우리의 사이로 피어올랐다. 떡볶이의 매운 내가 코를 가볍게 건드렸다. 우리는 느낌표 하나로는 부족한 감탄사를 던지며 탁자에 몸을 붙였다.


 비스듬하게 썰려 무심해 보이는 떡 조각은 양념을 머금어 적당히 매콤하고 달았다. 푹-퍼진 삼각 어묵은 오래 씹으면 고소하게 생선 맛이 났다. 가끔은 달달한 파가 부드럽게 들어왔다. 넘치던 그릇이 조금은 여유 있어질 때쯤 우리의 숟가락질은 더 과감해진다. 나는 그럴 때면 통통하게 불은 순대를 퍼올렸다. 순대는 당면이 삐죽삐죽 터져 나온 철없는 모습을 하곤 했다. 한 입에 넣어 뜨거움이 올라오면 차마 씹지를 못하고 대충 뭉그러뜨려 꿀떡하고 넘겨버렸다. 그러자 가슴팍이 훅 뜨거워졌다. 첼로를 킬 때처럼 심장이 아렸다. 내 외로움을 알기라도 하듯 나를 천천히 만졌다. 먹을 때조차 음악 얘기를 하며 떡을 입에 넣던 우리는 나중엔 순대와 떡을 함께 넣고 씹었다. 제각기 다른 식감은 우리의 서투른 화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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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손 떡볶이는 1년 후 아주머니가 바뀌시면서 맛이 변했다. 바뀐 아주머니는 우리가 먹을 때마다 "얘들아, 맛있니? 맛이 같아?" 하고 물으셨다. 이상하게 아주머니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는 변한 맛에도 차마 맛이 다르다고 하지 못했다.


 우리의 맛있다는 한마디에 "아휴, 다행이다" 하며 앞치마에 덮인 가슴을 쓸어내리시곤 했다. 맛있다는 말은 아주머니에게 위로였을까. 나는 이후에도 매주 금요일이면 엄마손 떡볶이를 들렸다. 점점 맛있어지는 떡볶이를 물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첼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매주 금요일 저녁은 나도, 아주머니도 위로받았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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