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새월 May 26. 2024

정화


약하디 약한 불꽃에 타볼까


옷매무새

잔표정

잡생각


조금만 태워 깔끔하게 다시 태어날까


길로 들어가자

불로 된 길로 들어가자


벌레 몇 마리가 제 흥에 못 이겨 타 죽은

가여운 몇몇 수풀이 희생당한

다른 모두가 우려로 우러러보는

그 불 길을 걷자


모든 티를 지우고 다시 태어나리라


발을 내민다

절벽을 상상하고 다이빙 대에서 뛰는 것처럼

줄 없는 번지를 안전하다고 믿으며


믿고 있던 발등은 뜨거웠다


뜨겁다

지은 죄 안 지은 죄 전부 떠오른다

눈물 흘린 것

눈물 흘리게 한 것

눈물 흘리게 해 눈물 흘린 것


잡지 못하는 불의 형상처럼

뒤죽박죽 엉키다 사라진다


이럴 리가 없어

이렇게 약하디 약한

장식에 불과한 불에 전신이 흔들릴 리 없어


이렇게 약하디 약할 리가 없어

장식에 불과한 삶이었을 리가 없어


혹 이것이 정화인가

불 길을 원한 것이 아니라

불길이 원한 것인가


한 줌 재가 되어 불길을 찬양하는 것이

결국 역할이었나

역할이라 부를만한 유일한 것이었나


벌레와 수풀처럼

가엽고 오만한 존재인가


뼈와 재가 비슷한 색이어서 다행이다

아무도 모를 것이다

무엇이 탔는지


가루는 가루 됨을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



이전 29화 천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