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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새월 Mar 17. 2023

그저 감정인 모성애

- 마미(2014) -



1.     모성애와 대립되는 것은 무엇인가?



    보통 모성애와 대립되는 관념은 부성애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 관념은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서 찾아야 한다. 모성애는 통속적으로, 자기 자식에게 아낌없이, 조건 없이 건네는 사랑을 의미하지만, 마미는 이 관점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리고 나는 모성애와 대립되는 관념은 자식의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부모가 사랑으로 자식을 믿는다면, 자식은 믿음으로 사랑을 체감한다. 그건 성장하면서 겪는 여러 부끄럽고 안 좋은 일에도, 자신을 저버리지 않는 부모를 믿음으로써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하지만 스티브는 이러한 믿음 자체를 사랑으로 확대했다. 아버지를 여읜 충격이든, adhd의 영향이든, 보호 시설에서 겪은 안 좋은 기억이든, 어떠한 연유로 스티브는 어머니 디안에게 믿음 이전에 사랑을 느끼는 아이가 돼 버렸다. 그래서 스티브의 정서는 특히 안정적이지 못했고, 어머니에게 집착하게 된 것이다.


    영화 후반부에서 디안은 스티브의 믿음을 깨 버리게 되는데, 이는 현재까지 악영향을 끼치는 스티브의 과거 실수와 미래에 대한 좌절감으로 인해 더 이상 스티브를 믿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디안은 모성애를 상실했지만 스티브는 여전히 디안을 사랑할 수 있었다. 디안의 믿음은 사랑의 표출이기 때문이고, 스티브는 믿음 이전에 사랑을 바탕에 두었기 때문에 배신당했더라도 사랑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2.     디안 “다이” 데프레



    영화 오프닝 자막에서, 디안의 미들네임인 다이에 “”이 걸려 있다. 이는 감독의 노골적인 힌트고, ost 가사와 연결 지으면 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디안은 스티브에게 “라이프”다. 애초에 낳아 주기도 했고, 스티브는 디안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청소년이며, 스티브의 삶의 목적이 디안이기 때문이다. 디안에게 배신당한 후로 스티브는 죽은 것처럼 시설에서 지내게 된다. 그러다 구속복을 벗기는 타이밍에 창문으로 뛰어간다. 그 층의 높이가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지만, 이 마지막 씬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첫 번째, 디안에게 갔다. 디안은 스티브의 ‘라이프’다. 스티브는 배신당한 엄마에게 다시 마음을 열고 심적인 기회를 줬다고 해석할 수 있다. 탈출 여부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 두 번째, “다이”에게 갔다. 스티브가 창문으로 뛰어간 것은 어떤 감정으로 인했든 자살기도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 경우 죽으러 가는 것인데, 디안의 미들네임이 다이이기 때문에 죽음을 택했지만 결국 어머니를 향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어느 쪽이든 스티브는 디안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믿을 수 있었다는 점을 암시한다.



3.     정사각형이 아니라 직선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요소로 대게 화면 비율을 꼽는다. 평소에는 정사각형인 1:1 비율을 고수하다, 잠깐의 행복을 느끼거나 행복할 수도 있었던 미래를 상상할 때 정상적으로 화면을 꽉 채우게 된다. 그 변화를 점진적으로 나타낸 점이 훌륭했다. 자비에 돌란 감독이 등장인물들의 정서에 집중시키기 위해 이 기법을 사용했다고 는데, 서서히 변화하는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미장센으로 적확하게 표현했다고 본다. 여기서 내가 든 의문은 왜 정사각형에서 더 좁혀지지 않는가였다. 정사각형에서 가로를 점점 줄여 뒤집힌 직사각형처럼 만들 수도 있었는데 왜 그러지 않았을까. 내 생각에, 감독은 최대한 관객을 배려한 것 같다. 디안은 관점에 따라 판이하게 다른 평가를 받는 캐릭터인데, 아까 말한 것처럼 정사각형에서 화면 비율을 더 줄인다면 디안의 부정적인 면모가 강화되고, 관객은 그쪽으로 의견을 모을 수밖에 없어진다. 그러니 감독은 서사만 던져주고 해석은 관객에게 철저히 도맡기는, 리얼리즘의 미덕을 여실히 충족했다고 생각한다.


    이것과 별개로, 나는 1대 1 화면 비율을 포함한 이 영화의 앵글이, 사각형이 아니라 직선으로 보였다. 지독하게 지속되는 인생을 비유하는 직선 말이다. 그래서 정사각형과 직사각형을 오가는 것은 원본의 변형을 의미하지만, 이를 직선으로 취급하면 변형되지 않는 하나의 이치로 해석할 수 있다. 인생의 굴곡에 따라 그저 두께가 달라지는 직선은 다른 지칭과 관념을 필요로 하지 않고 그저 이어진다.  



4.     인생의 승패 + 왜 배신인가?



    디안은 카일라와의 마지막 대화에서 가장 진솔하고 핵심적인 이야기를 했다. 디안은 각자의 승리법이 있으며, 자신이 아들을 배신한 것이 이에 해당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승리법을 찾아서 행하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디안은 루저라는 관념에 콤플렉스를 가진 인간이다. 고등학교를 중퇴해 변변한 직업을 갖추지 못했고, 아들은 정신적, 사회적으로 문제가 많다. 그래서 기가 드셀 대로 센 디안이 번역일을 모욕적으로 잘렸을 때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그런 디안에게 스티브를 저버리는 선택은 자신의 삶의 다른 부분을 나아지게 할 수 있는 수단이며, 일종의 차선책이고, 이를 대하는 디안의 관점은 심리적인 방어 기제에 가깝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영화가 디안을 쓰레기 같은 엄마로 단정 짓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영화를 제대로 본 사람은 모두 안다. 디안은 충분히 노력했고, 아들을 사랑했으며, 이해받을 수 있는 캐릭터라는 것을. 서사와 캐릭터를 받아들이고 디안의 주장을 생각해 보면, 상술했던 통속적인 모성애에서 벗어나 사유할 수 있다. 막말로 어머니라는 존재도 사람인데, 감당하기 어려운 아들을 두고 안 좋은 생각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리고 디안은 디안에 대한 카일라의 찝찝한 감정을 확실히 느끼고 있으며, 마음 맞는 친구를 잃고 싶지 않아 발악하는 측은함도 보여줬다. 스티브를 생각하며 눈물도 지었다. 결국 이 영화는 모성애에 대해 심도 있게 다뤘으며, 생각할 거리를 주는 훌륭한 ‘모친 서사’를 이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확실히 디안이 스티브를 배신했다고 생각한다. 디안이 스티브를 위탁하는 것에 대해 스티브와 상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스티브 성격에 고분고분 시설로 넘기기는 불가능에 가까웠겠지만, 적어도 가족 구성원과 짧은 대화라도 했어야 했다. 그러면 디안이 스티브의 믿음을 저버리긴 했어도 배신은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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