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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새월 Mar 18. 2023

사랑은 아니었지만 필요했던 것

그녀(2013)


    영화 그녀(2013)는 현대인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조우하는 우울을 사랑이라는 렌즈로 줌인한 명작이다. 진정한 sf는 과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는데 그치지 않고 인문학적 물음을 재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달라졌으니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도 달라지기 마련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영화 그녀는 밸런스 있는 세계관을 구축했다. 너무 현대와 먼 세계관을 조성하면 그 외형적인 가치에 메시지가 묻힐 수 있고, 세계관이 현대와 너무 가깝다면 장르적 고민이 부족하다고 욕을 먹는다. 그녀는 딱 내가 1학년 때 배운 내용들(나는 미디어과다)로도 다 설명 가능한 기술 발전을 배경으로 잡아 이해가 수월했고, 보이스를 매개로 주고받는 감정선은 인간인 시어도어와 ai인 사만다의 관계성에 침잠하도록 도와줬다. 



1. 위태로운 진짜와 가짜의 판단 



    영화 속 세상에서 대립되는 이념들을 정리하기 전에, 현재 우리에게 산재하는 실존적 갈등들을 되짚어봐야 한다. 거기서 주목하고 싶은 전제는 사람들의 마음의 강함이다. 나는 기술과 매체가 발전할수록 역설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이 약해진다고 생각한다. 기술은 우리에게 불가역적인 편리를 제공하고 예술을 포함한 문화 매체는 상당히 대안적인 감정을 자극한다. 즉 우리에게 맞닥뜨려진 현실을 충분히 외면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혹자는 이를 불편한 평등의 세상이라고 일컫기도 하지만 그 방향성이 완전한 상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그런 풍조가 거슬리고, 인문학과 철학이 엇나갈 수도 있다며 거창한 생각마저 한다. 


    내가 그 세태 중 가장 인상적인 콘텐츠는 버추얼 유튜버다. 버추얼 유튜버란 단순하게 말하면 2D 또는 3D로 디자인, 모델링한 캐릭터로 하는 인터넷 방송을 의미한다. 시청자들과 상호작용을 하는 롤 플레잉과 현실 세상과 격리된 인격체를 의미하는 심벌의 요소가 합쳐진 새로운 장르의 콘텐츠다. 그 파급력과 특이성은 찬반을 막론하고 매우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이 장르가 흥하게 된 기저 욕구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서브컬처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영역을 2D, 우리가 현실에서 조응하는 영역을 3D라고 편하게 말하겠다. 앞서 말한 버튜버의 롤 플레잉 능력은 3D의 전유물이고, 심벌은 2D의 전유물이다. 두 가지 이율배반적인 표상이 섞여서 사람들이 새로워하고, 열광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둘은 섞일 수 있는 동률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버추얼 유튜브는 확고하게 2D의 확장이다. 사람들이 2D를 좋아하는 것은 현실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외적 완성도가 있기 때문이다. 일단 심미적으로 끌리니 자연스럽게 그 캐릭터의 다른 정보들도 관심이 생기고 컬트적인 감정이 조성되는 것이다. 하지만 2D 캐릭터와는 죽어도 상호작용할 수 없다. 그 본상은 형이상학적인 인공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2D 매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캐릭터와 만나고,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그런 니즈를 충족시킨 게 버추얼 유튜브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이 콘텐츠에 대해 안 좋은 시선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론적으로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버추얼 유튜브가 수단적인 이유로 순리에 거스르는 욕구로 인한 것 같고, 이게 그렇게 건강한 흐름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정리하면, 기술의 발전과 등장으로 현대인들의 마음이 약해진 결과는 진짜와 가짜 그 구분의 소외라고 생각한다. 콘텐츠의 구체적인 질 보다는 그 콘텐츠가 나를 얼마나 긍정적인 감정으로 이끌어줄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사고. 그 부분이 영화 그녀의 세상에서는 더 강화됐고, 사회 전반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기술적인 차별과 지식의 격차가 줄어들었는데도 편지 대필이 흥행하고, 기능적인 목적이 아니라 감정적인 목적으로 인공지능 체계가 잘 팔리는 게 근거다. 진짜와 가짜의 스테인드 글라스에서 완벽히 가짜인 사만다를 만난 시어도어의 이야기는 우리들의 철학적 나태를 일갈한다. 



2. 세 가지 대립



    영화 속 진짜와 가짜의 대립은 크게 세 가지로 구체화된다. 먼저 기대의 대립이다. 주인공 시어도어의 우울증과 자기 불안은 이혼에서 비롯된다. 정확히는 기대했던 결혼 생활, 진짜 사랑이 무너진 것에서 기인하는 혼란이다. 이런 유로 원래 쾌활한 성격이던 시어도어는 가십의 나체 사진을 훑어보거나 폰섹스를 하는 등 성적인 시도로 외로움을 달래 보려 하지만 자괴감만 쌓일 뿐이다. 그러다 가짜인 사만다를 마음 한편에 들이게 된다.


    두 번째는 예술의 대립이다. 예술가들과 그 예술의 의도에 집중한 기존의 대립이 아니라, 결과물로서 예술이 가지는 성질의 대립을 뜻한다. 편지 대필이 업무인 시어도어는 자신의 능력이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리 동료들이 치켜세워도, 대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즉 시어도어는 자신이 작가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시어도어가 자신이 써 내려간 편지들까지 거부하진 않았다. 사만다의 독단으로 편지 집 간행 이야기가 나올 때, 시어도어는 조금의 싫은 기색도 없이 기뻐했다. 그리고 사만다가 작곡한 음악들을 즐겨 들었으니, 그의 예술관은 본질보다는 상황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것 같다. 대신 써주는 가짜 글이지만 진심을 담아 받는 사람의 감정을 신경 썼고, 자신과 같이 있는 순간을 기록, 표현하고 싶은 사만다의 음악에서 위로되는 순수함을 느꼈다. 


    마지막으로 좋아함과 인정함의 대립이다. 이 대립이 가장 치명적이고 항시적인 것은 인간 자체의 본질에서 기인되기 때문이다. 보통 사랑을 할 때 거론되는 이분법은 진짜 사랑인가 사랑의 포장지를 쓴 다른 감정인가 이다. 하지만 시어도어가 사랑하는 대상은 ai다. 이 관계성에서 좋아함이란 시어도어가 사람이 아닌 ai에게 느끼는 끌림을 뜻하고, 인정함이란 ai를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인지하는 것을 뜻한다. 후자가 전자를 방해하기 때문에 사만다와의 데이트 장면이 아름답지만 위태로워 보였던 것이다. 후반부에 사만다가 시어도어와 동시에 8000명 넘게 대화하고 있고, 600명 넘게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데, 이는 인정함의 완전한 실패를 의미하며, 결과적으로 좋아함은 신기루 같았던 아릿함이 된다. 



3. 제목은 '사만다'가 아니라 '그녀'다 

  


    영화 그녀의 서사와 현실세계의 상식은 ai와의 사랑은 불가능하다는 쪽으로 기울게 했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본 관객 모두가 사만다와의 사랑은 진짜가 아니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는 사만다와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지만, 좋은 의미로 시어도어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사만다에게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만다가 8000명 넘게 동시에 대화를 했고, 600 넘는 사람과 사랑을 했다는 것은 감정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를 이해하지만, ai가 가장 잘하는 게 학습인데, 충분히 다른 문학이나 논문을 통해 여러 명과 교제하는 게 정상적인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몰랐을 리 없다. 하지만 사만다를 포함한 다른 ai들은 이를 도의적으로 인지하지 못했고, 그들의 특기인 효율을 기준으로 판단하니 능력과 시간이 남아도는데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사만다와 다른 ai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탐구하고, 능력을 더 진화시키기 위해 다른 곳으로 떠났다. 우리는 이 행위를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 할까? 여정? 워크숍? 조금 삐딱하게 얘기하면 집단자살? 설명할 수가 없다. 그들에게는 감정이 없기 때문에 인간의 관점으로 설명할 수 있는 동기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제목은 ‘사만다’가 아니라 ‘그녀’다. 즉 사만다는 인격체로서 기능하지 못하는, 주체가 되지 못한 객체, 가짜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 표현이 사만다의 가능성을 짓밟는 것이 아니라 사만다의 한계를 인정함으로써 당시 시어도어가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는지, 그리고 끝끝내 이를 극복했다는 점을 강조하는 워딩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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