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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새월 Mar 24. 2023

어차피 일어났어야 할 일

트루먼쇼(1998)



1. 진짜라고 믿는 가짜



    트루먼쇼는 크리스토프가 감독하는 관음극이다. 그가 제시하는 트루먼쇼의 가치는 '진짜'다. 각본도 특수효과도 없는 트루먼의 삶은 가식적이고 젠체하는 속세랑은 확연히 구별되는 아름다운 것이라는 소리다. 하지만 그 논리는 발단부터 어그러져 있다. 이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트루먼쇼의 오프닝과 같다. 감독의 자찬, 배우들의 환희가 담긴 인터뷰, 그리고 오프닝 크레딧으로 구성된다. 거기서 트루먼을 '트루먼 버뱅크 본인 역'으로 기입하는데, 이는 트루먼의 삶이 하나의 배역이라는 진실을 의미하고, 크리스토프는 이를 숨기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트루먼이 잡지를 오려 만든 실비아의 얼굴로 그녀를 추억할 때, 흔들리는 연출과 함께 과거회상이 시작된다. 이는 현실의 시간 흐름과 동일함을 추구하는 트루먼쇼의 이야기 진행의 모순을 의미한다. 이는 크리스토프가 주장한 '진짜'라는 관념과는 맞물리지 않는다. 트루먼쇼의 가장 큰 착각은 제작진들의 믿음이다. 크리스토프는 진짜를 이룩해 냈다고 생각해 기뻐하지만, 실은 자신들이 만든 무언가를 진짜라고 취급하고 그렇게 되도록 기형적인 조치를 반복했다. 트루먼이 카메라에서 실종됐을 때, 크리스토프는 트루먼을 찾기 위해 해를 띄운다. 비록 송출을 멈췄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알지는 못했지만, 상술한 시간의 흐름이 현실과 완벽히 어긋나는 순간이다. 만약 크리스토프가 진실되게 '진짜'를 추구했다면 애초에 무슨 일이 발생하더라도 방송 송출은 멈춰서는 안 됐다. 우리가 인식하는 진짜라는 관념은 편의와는 전혀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트루먼쇼는 크리스토프의 허황된 꿈이며, 어떠한 예술적, 전위적 도전도 아니다.  



2. 무시로 빚어진 트루먼쇼



    영화 오프닝에서, 크리스토프는 트루먼쇼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그 원인이 되는 감정은 누군가의 일생 전체를 바라보면서 접한 희로애락에서 기인하지 않는다. 트루먼쇼는 트루먼의 삶이 아니라 트루먼의 일부 모습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트루먼은 추측상 별다른 취미도 없어 보이는, 안정적인 사무직에 미혼인 동네 토박이다. 그의 삶은 스토리로써 대부분 크게 흥미롭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다 똑같구나." 같은 안도감만 느껴서는 20년 넘게 방영되지 못했을 것이다. 곳곳에 숨겨놓은 카메라와 24시간 떨어지지 않는 컷사인으로 관객들이 관심 가지는 것은 트루먼의 지극히 개인적인 모습들일 것이다. 따로 예시를 들기는 어렵지만, 모든 사람이 경험하며, 자신만 알았으면 하는 것들 말이다. 그것들의 대부분은 부끄럽고, 추하다면 추한 순간들이다. 시청자들은 그런 것들을 유흥거리로 삼았기 때문에 트루먼쇼가 그들에게 위안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실비아 말마따나 동물원 원숭이와 전혀 차이가 없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던 꼬마 시절, 초등학교에서 동물원으로 체험학습을 갈 때면, 아이들이 봤다고 자랑하는 무용담들 중 1위는 수컷과 암컷이 몸을 섞는 장면이었다.  


    더 거시적인 불편함은 제작진들도 트루먼을 내심 무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제작진들 전부가 트루먼의 처지에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에서 확인된 여러 모습들은 그들이 트루먼을 소중한 성취물이 아니라 귀찮은 애물단지로 취급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일례로 영화 초반에, 비가 와야 하는데 트루먼에게만 물줄기를 쏴서 이상한 상황이 벌어진 것은 제작진들의 안일함으로 해석할 수 있고, 그 안일함은 트루먼의 정신적 가치를 무시했기 때문에 생겨났다. 크리스토프를 포함한 제작진들은 트루먼의 지성과 용기를 무시한다. 트루먼이 떠나려 할 때, 주변 인물들은 자신들의 말주변으로 그를 만류하는데, 트루먼에게 철 좀 들라는 뉘앙스를 띤다. 누구 덕분에 다른 배역 오디션도 안 보고 편하게 돈 벌고 있는데, 말본새를 포함한 취급이 꽤 무례했다. 크리스토프도 트루먼이 이상행동을 보일 때마다 트루먼은 겁이 많아서 절대 탈출 못한다며 호언장담했는데, 그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트루먼과 대화를 나눌 때 그렇게 여유로웠던 것이다. 트루먼이 세트장을 나가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기저에 깔려 있으니, 그 대화에서 자신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맹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크리스토프는 그 대화를 트루먼의 최후통첩이 아닌 자신의 협상 테이블이라고 생각했고, 결국 트루먼을 놓쳐 대형 제작사와 협찬 회사에게 안 좋은 모습을 보인 그는 다시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기 힘들 것이다.  



3. 본능적인 탈출과 대립에의 의지



    영화에서 언급된 정보를 집약하면, 방송국은 트루먼을 포함한 몇 명을 출산 전에 입양했는데, 트루먼이 방송 시기와 딱 맞게 태어나서 그가 주연으로 뽑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입양됐지만, 트루먼은 재수 없게 연결된 크리스토프의 '아들'이다. 트루먼에게 법적 효력이 있는 신분이 존재하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있다면 분명 아버지 란에 크리스토프가 기입될 것이다. 이를 집중해서 구조를 다시 들여다보면, 트루먼쇼는 최악의 아버지로부터 벗어나는 자아실현의 이야기다. 태어나기 전부터 타인이 설계한 인생이지만, 실낱같은 단서와 힘으로 결국은 자유를 되찾는. 


    이 영화는 복선을 잘 깔아놓은, 계산적으로 잘 짜인 시나리오지만, 트루먼의 행동력을 자극하는 매개체는 감정이다. 트루먼은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이질감을 느끼지만, 주변 사람들의 열변으로 애매모호한 상황에 빠진다. 그럴 때마다 감정과 관련된 아이디어로 다른 방해를 뿌리치고 확실함에 다가간다. 아내와 어머니의 합동 잔소리로 지쳤을 때, 트루먼은 결혼식 때 찍은 사진을 보다 아내의 반지가 결혼반지와 다르단 사실을 발견한다. 그러고 다시 세상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아내에게 반지 문제를 추궁하지 않았다. 아내와 자신 사이를 연결 짓는 감정에 의문이 들었고, 이를 통해 자신을 둘러싼 거짓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이미 확신했으니 아내를 취조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영화 중반부에, 크리스토프는 돌발적인 사고를 친 아버지역 배우를 다시 캐스팅해 트루먼을 마을에 붙잡으려 시도했다. 트루먼은 아버지를 껴안았지만, 이후 집에서 코코아를 마시는 장면에서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고, 이후 일상을 조금 연기하다 더 본격적인 탈출 계획을 잡는다. 만약 트루먼이 아버지가 진짜 돌아왔다고 믿고 이를 반겼다면, 다시 한번 트루먼의 의심과 동기를 증폭할 만한 사건이 있어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 또한 트루먼이 아버지와 오래된 친구의 거짓된 감정선을 체감하고, 탈출 의지를 다졌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아무리 주변 배우들이 트루먼의 논리를 묵살하고 너스레를 떨어도, 속일 수 없는 감정을 통해 트루먼은 결연함을 다질 수 있었다.  


    이 영화가 감정을 전개 동력으로 삼은 것은 트루먼의 탈출이 본능적인 욕구이기 때문이다. 상술했듯이 트루먼쇼는 억압적인 아버지에게 반기를 드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런 욕구는 아버지가 지은 울타리의 견고함과는 무관하다. 트루먼이 아기였을 때, 그의 요람 위의 모빌 가운데에서 카메라가 돌고 있었고, 아기 트루먼은 이를 응시했다. 그리고 트루먼이 중학생 즈음 무서운 강아지 때문에 모험길을 뒤로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 썼던 해군 모자를 마지막 탈출 계획 때 쓰며 막으려면 자신을 죽여야 할 것이라고 소리쳤다. 이는 트루먼의 탈출은 본능이며, 끝끝내 이루어야 할 운명임을 의미한다. 


    크리스토프의 태도는 꽉 막힌 아버지라는 전형성과도 잘 어울린다. 크리스토프의 안일한 확신은 정보와 자기만족에서 기인한다. 그는 자신이 트루먼을 가장 잘 알며, 자신 덕분에 트루먼이 특별한 삶을 살 수 있었다고 호소했다. 키워줬으니 얼마나 큰 일을 한 것이냐는, 자식을 도구 취급하는 악독한 아버지의 모습이다. 하지만 아버지라는 거시성은 아무리 악하더라도 자식 입장에서 손쉽게 잘라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트루먼은 탈출 직전, 크리스토프에게 말하라고 나직이 읊조렸다. 크리스토프는 얼마든지 답해준다며, 자신이 트루먼과 소통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트루먼이 크리스토프에게 요구한 것은 '사과'였다. 꼬일 대로 꼬인 가족 관계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미덕. 당연히 크리스토프는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고, 모든 인정을 거두기로 한 트루먼은 마지막 인사(굿 애프터눈, 굿 이브닝, 굿 나잇)를 하며 검은 직사각형 안쪽으로 사라졌다. 성공적으로 부자지간의 연을 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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