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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새월 Mar 27. 2023

돈 키호테처럼 칼춤을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2018)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2018)는 테리 길리엄 감독이 불굴의 의지로 완성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아주 크게 두 번 엎어졌다. 1989년, 촬영 2일째에 큰 홍수로 여러 촬영 장비를 잃었고, 돈 키호테 역의 장 로슈포르의 건강이 악화되어 투자금의 상당 부분을 지불했다. 그 후 2015년까지 제작비 확보 문제로 늦어지다가, 돈 키호테 역의 존 허트의 죽음으로 다시 무산됐다. 그러다 이듬해 칸 영화제의 제작 지원으로 겨우 완성할 수 있었다.  



1. 돈 키호테라는 존재



     돈키호테는 하급 귀족 출신으로 생업의 압박 없이 살던 반백살 넘은 노인이 기사도 소설에 과몰입해 비정상적인 여정을 떠나는 이야기다. 그는 주변 사람들 각각의 감정을 자극했다. 생면부지의 평민들에게는 모멸을, 어울리게 된 산초에게는 허황되지만 세속적인 욕망을, 카라스코 학사에게는 답답함이 가미된 책임감을, 상류층 귀족들에게는 자기애가 담긴 유희를 말이다. 그리고 이 감정들은 돈 키호테의 진심 어린 광기와 반강제적으로 되찾는 총명함으로 뒤집히거나, 전혀 바뀌지 않았다. 여러 대비들로 촘촘히 쌓은 아이러니는 이상과 현실의 분립, 계층을 넘어선 영향력, 인간의 원초적인 나약함을 아울러 완성도 있는 감동을 자아냈다.  


    돈키호테라는 캐릭터는 희화화의 극치를 통해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는 진실들을 이야기로 구현했다. 그 신기에 가까운 퍼포먼스는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적용됐고, 열렬한 반응을 유도했다. 현대인이 비슷하게 겪는 돈키호테의 기사도 매료는 개인주의의 고뇌에서 출발한다. 자기 자신만 챙기자니 비열해지기 일쑤고, 대의를 지키자니 내 자리가 사라진다. 이렇게 고민하고 있는 와중에, 선택받았든 아니든 이미 강자가 된 파렴치한들이 넘쳐난다. 그들은 상술한 개인들이 실질적인 대상으로서 거시적인 두려움을 체감하게 한다. 영화 속 토비의 상사와 광고 업계 사람들은 그 압제에 전면적으로 굴종한 부류에 해당한다.



2. 산초의 결말



    상술한 생존 전략에 가까운 고뇌를 그닥 하지 않은 토비가 열정 넘치고 순수했던 과거 자신이 운명을 바꾼 마을 사람들과 만나게 되면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지금의 토비는 cf 명감독이 되어 자기 자신만 챙기기로 맘 편하게 결정했지만, 학생 시절 토비는 때 묻지 않게 영화에 진심이었다. 영화의 진실성을 위해 작은 마을의 주민들을 배우로 썼고, 돈키호테가 다른 이들을 자극한 것처럼 그들에게 예술로 인한 인생의 굴곡을 선사했다. 평범한 구둣장이였던 하비에르는 토비의 영화에서 돈 키호테 역을 맡은 후 진짜 돈 키호테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안젤리카의 재능에 바람을 넣어 그녀가 마을을 떠나 배우를 꿈꾸게 했지만 그녀는 악독한 보드카 사장의 장난감 같은 존재가 돼 버렸다. 다른 마을 주민들은 둘을 상실한 후 하비에르의 망상을 없애기 위해 다른 형태로, 뜻에도 없던 연기를 다시 하게 됐다.


    토비는 마을 사람들 관점에서, 돈키호테를 홀린 기사도 그 자체였으며, 10년 만에 해후했을 때는 돈키호테의 감독 세르반테스 같은 존재가 됐다. 토비가 하비에르와 동행하기 시작했을 때는 산초가 됐고, 원작의 산초보다 더 욕망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후반부에 밝혀지는데, 돈키호테(하비에르)에게 연신 한심하다고 한 그도 망상에 시달렸다. 어쩌다 주운 기계 조각을 금화로 착각해 소중히 챙겼는데, 이는 지금까지 고수했던 토비의 이기주의와 그 무대였던 세속을 의미한다. 그리고 안젤리카에게 데려다준다면서 사장의 아내인 재키에게 데려다준 집시의 일반 성주 간 복장을 해괴한 큐피드 유니폼으로 착각했는데, 이는 자신이 느끼고 원하는 사랑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무의식적인 바람이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안젤리카가 화형 당하는 연기를 할 때, 진짜 화형을 당하고 있다고 착각했다. 이는 사랑을 포함한 자신의 이야기가 더 극적이길 바라는 모습으로, 원작에서 역경을 찾아다니던 돈키호테와 흡사하다. 결국 이 착각으로 흥분해 사람을 잘못 보고 하비에르를 죽이게 된다.


    토비는 자신을 탓하지 않는 하비에르에게 인정과 존중을 받게 되고, 죽은 하비에르를 보며 시시하다고 중얼거리는 보드카 사장의 말을 듣고 낙담했다. 결과적으로 안젤리카를 그의 손아귀에서 구해줄 수 있었는데, 그녀와 말을 타고 마을로 떠나던 중 며칠 전까지 자신이 지휘하던 세트장에서 돈키호테처럼 풍차로 돌진한다. 돈키호테가 된 토비는 안젤리카를 산초로 만들며 여정에 대한 대사를 읊는다. 여러 상징을 왔다 갔다 한 토비지만, 토비는 확실히 '산초'였다. 돈키호테라는 관념을 둘러싼 이분법을 경험하면서 욕하고 무시하던 돈키호테의 사상을 계승했기 때문이다.

 


3. 모든 돈 키호테에게



    이 영화에서 구체화한 '돈 키호테'라는 결과는 현실과 이상의 부조화를 감당하지 못한 사람들의 자포자기다. 그러나 영화는 돈 키호테들에게 긍정적인 가치를 부여했다. 고뇌할 능력이 있기 때문에 고뇌했고, 그렇게 광인이 되었더라도 전혀 추하지 않다고. 런 고민을 안 하고 방종한 언행을 일삼는 힘 있는 사람들이 더 최악이라고 말이다. 이 영화는 돈 키호테가 창궐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잠재적 돈 키호테들에게 바치는 매우 노골적인 우화다.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라는 은 토비가 영화에서 겪은 우여곡절 자체를 뜻하면서, 돈키호테의 계승을 의미한다. 하비에르에서 토비로 넘어간 감정선이다. 테리 길리엄 감독이 굳이 가장 유명한 이야기를 재해석하려고 갖은 고생을 한 것이 아니다. 이 영화의 촬영 비화도 돈 키호테와 비슷하다. 돈 키호테가 세 번의 출정을 마치며 산초와 다른 캐릭터들에게 강렬함을 남긴 것처럼, 감독도 세 번의 시도 끝에 우리에게 또 다른 돈 키호테를 보여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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