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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새월 Jun 27. 2023

마주 봄에 대한 군상극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2013)



1. 일본의 고등학생들...



    이 영화는 일본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를 적절한 완급 조절과 분량 배분으로 연출한 군상극이다. 이 영화의 배경은 청춘이지만, 청춘이라는 개념을 대충 뭉뚱그리면 영화 속 등장인물들을 단순히 철없고 감정적인 아이들로 오해할 수 있다. 고등학생은 사전적으로 청춘의 초입에 해당하지만 입시문제는 굳건하다. 대학생은 청춘의 중심이지만 사회인의 단초라는 중압감이 이를 많이 억누른다. 그렇다고 중학생은 확실히 머리가 덜 영글었고, 할 수 있는 활동도 제한적이다. 여기서 일본 고등학생의 특이점이 눈에 띄었다. 일본도 한국처럼 3학년이 되면 동아리 활동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지만, 애초에 일본은 동아리 활동을 평일마다 한다. 한국처럼 달에 몇 번에 그치지 않으며, 취미 활동에 국한된 우리나라랑 다르게 진지한 진로 활동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등학생들이 알바를 하는 경우도 우리나라보다 더 자연스럽다. 


    정리하면 일본의 고등학생은 한국의 고등학생보다 더 청춘에 대한 고민을 활동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포함한 일본 작품에서 학생들의 청춘을 다루는 경우가 많은 것이고, 그 감정들이 오글거릴 수는 있어도 가볍지는 않은 것이다. 이 차이를 이해해야 이 영화의 다양한 감정선들을 더부룩함 없이 흡수할 수 있을 것이다. 



2. 키리시마는 무엇인가?



    이 영화 등장인물들의 거시적인 맥거핀은 키리시마다. 배구부 에이스에 남녀 모두에게 인기가 많은 키리시마가 어느 날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기 시작한다. 대회 승패가 불투명해진 배구부 부원들은 압박감에 성질이 더러워지고, 키리시마의 여자친구를 필두로 한 인기 있는 여학생 무리는 서로 눈치를 본다. 키리시마와 친한 같은 반 남학생들은 애초에 귀가부거나 동아리 활동을 그만둔지라 배구부 에이스 키리시마를 친구 이상의 감정으로 의식한다. 키리시마는 학생들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나오지 않는다. 학교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남학생의 실루엣이 어렴풋이 보이긴 하지만 누군지 식별이 가능한 수준은 아니고, 그걸 본 남학생 중 하나가 무비판적으로 옥상으로 뛰어가기 시작하고, 관련된 모든 학생들이 옥상에 모인다. 그 옥상은 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취주악부 부장, 색소포니스트 여학생의 공간이었다가, 그때는 오타쿠 취급받는 영화부 부원들이 한창 매직 아워를 살려 촬영 중이었다. 키리시마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학생들은 괜히 영화부 사람들에게 성질을 부렸고, 그간 쌓인 게 많았던 영화부는 소위 말하는 운동부 인싸들에게 싸움을 걸며 난장판이 벌어진다. 


    이 작품은 일본 실사 영화 특유의 분위기를 고려해도 상당히 독특하다. 기존의 일본 청춘 이야기가 소수의 인물들의 명확한 감정선을 모호한 상태에서 보여줬다면, 이 작품은 여러 캐릭터들의 복합적인 감정을 확실한 연출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키리시마의 배구부 활동이 끝날 동안 농구를 하던 남학생은 어느덧 진심으로 농구에 관심이 생겨 별 생각 없는 귀가부 남학생의 말에 발끈하게 됐고, 인기 있는 여자 무리에 속해 있는 배드민턴 부 여학생은 미래 고민 없이 학교에서 자신의 위치만 생각하는 친구들에게 염증을 느낀다. 키리시마가 옥상에 없자 짜증이 난 배구부 부원은 홧김에 영화부의 소품을 발로 차게 되는데, 시작된 싸움에서 손가락 부상을 당하고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야구부를 모종의 이유로 그만둔 남학생은 옥상에서 대판 싸우고 떨어진 카메라 부품을 영화부 부장에게 건네주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한다. 학생들은 자신의 진로와 학교에서의 먹이사슬, 노력과 재능의 문제를 분리하지 못하고 치기 어린 만족을 추구한다.  


    이 영화에서 키리시마는 이상화된, 완벽한 청춘의 모습을 상징한다. 그래서 아무도 학교에 나오지 않는 키리시마를 탓하지 않고, 무작정 그를 만나고 싶어 한다. 실루엣으로 잠깐 나온 옥상에서 경쾌하게 뛰어내리는 키리시마의 모습은 애초에 삶에서 언제까지나 완벽한 자신의 모습을 기대할 수는 없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3. 태풍의 눈, 영화부  



    옥상에서의 난투가 불안정하고 미성숙한 청춘의 감정선으로 이루어진 태풍이라면, 영화부 부장의 카메라 렌즈는 태풍의 눈이다. 영화부 부장은 대회 예선을 통과해도 학교에서 찌질이 취급을 받지만, 가장 심지가 곧다. 전 야구부 남학생은 왜 영화부 부장에게 영화를 찍냐고 물어본다. 영화감독이 되지도, 관련 학과를 가지도 않을 거면서 말이다. 영화부 부장은 그런 현실을 알고 있지만, 영화를 찍다 보면 자신이 찍고 있는 영화와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가 연결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고, 그때 너무 기분이 좋다고 답한다. 여기서 찍고 있는 영화는 현재 자신의 모습, 좋아하는 영화는 이상적으로 추구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징한다. 그가 영화를 찍는 이유는 노력하면서 조금씩 만족할 수 있는 자신에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영화부 부장은 자기 자신을 진지하게 마주 보는 데에 성공한 셈이다. 이는 다른 학생들과 크게 대조되는 부분이다.


    영화부는 좀비영화를 찍고 있었다. 지구로 떨어진 운석에서 창궐한 바이러스였다. 학생들의 행패에 화가 난 영화부 부장은 좀비 분장을 한 부원들에게 이 놈들을 물어뜯어버리라고 한 후 카메라를 든다. 갑작스러운 학교 아싸들의 반기에 학생들은 크게 당황하며 소리 지른다. 앵글은 이 장면을 영화부 부장의 뷰파인더로 보여주는데, 자기 시나리오의 레퍼런스였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의 장면들과 오버랩되면서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와중에 음악은 취주악부의 합주인데, 취주악부 부장의 미성숙한 사랑의 성장을 담았다고 볼 수 있다. 좋아하지만 여자친구가 있는 남학생의 눈에 띄기 위해 굳이 옥상에 올라가 색소폰을 부는 그녀는 남학생이 시선을 줄 때도, 남학생의 키스 장면을 목격했을 때도 제대로 된 음악을 연주하지 못한다. 그냥 한 음만 내거나, 음을 차례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거나 반주를 맞춰줄 뿐이었다. 그 좌절을 이겨내고 취주악부에서 처음으로 선율 다운 선율을 냈고, 그 와중에 옥상에서는 혈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학생들의 좌충우돌이라는 가벼운 플롯을 다뤘지만, 영화적인 만족감도 확실히 충족해 줬다. 


    이 영화는 영화부 부장에게 일침을 맞은 전 야구부 남학생이 야구부원들의 훈련을 보며 키리시마에게 전화를 거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 영화는 청춘의 아름다움을 논하기보단, 불안정한 청춘의 숙취를 담았다. 영화 속 아이들은 한창 술에 취한 것처럼 관성적으로 행동하고, 영화를 다 본 우리 입장에서 대신 숙취를 느끼게 해 준다. 연령대야 다양하겠지만, 대부분의 성인들이 완결 짓지 못한 '자신을 마주 봄'에 대해 감각적으로 연출한 작품이다. 어쩌면 영화부가 찍는 영화 속 운석은 성찰이 필수인 성인으로 넘어가기를 강제하는 대상인 것 같다. 자칫하다간 좀비가 돼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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