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를 읽는다는 것.

나는 참 서툴다.

by 아무도모른다

나는 참 서투른 사람이다. 무슨 일을 할 때면, 푹 빠지질 못한다. 언제나 슬쩍 간만 보고 빠지는 쪽이랄까. 그러니 내가 하는 모든 일은 아무래도 좀 서툴다. 어느 한 쪽에 천착하지도 전문적이지도 못하게 된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뭔가를 할 때면 '조금은 자주 하면 좋겠다.' 라는 감정을 느끼는 행위들은 존재한다. 그런 것들 중 하나가 '시(詩)읽기'에 관한 일이다.


고등학교 때는 시(詩)가 가지고 있는 매력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읽고, 해석하고, 외우고. 그게 다였다. 그런데 3학년 때였나, 4학년 때였나. 영문과를 다니던 내 친구는 종종 영어 문학, 특히 영어 시와 관련된 것들을 하나씩 보내주었고 그 때 처음으로 시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아무 생각 없이 시를 찾아 읽는 때가 드문 드문 하지만 생겼다.


제일 처음 빠졌던 시는 황진이의 '동짓달 기나긴 밤을...' 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시조이지만, 내 인생의 시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그 표현이 아름답다고 느꼈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내어/ 춘풍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혔다가/ 어론님 오신 날이뎌든 구뷔구뷔 펴리다.' 크, 이 얼마나 사랑꾼인 여인인가 ! 님 없는 밤이 안 그래도 길어 죽겠는데, 게다가 동짓달이면 밤의 길이가 얼마나 길까. 이 님 없는 긴긴 밤을 홀로 지새기가 싫어 잘라 내어 이불 안에 숨겨 뒀다가, 님이 오시는 밤이면 다시 꺼내 님과 함께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대단하다. 한동안 황진이의 시조에 빠져 황진이 황진이 하고 다녔다. 절세미인이라는 여자가 표현력까지 끝내준다는, 그런 질투도 곁들여서.


이와는 또 달리, 백석의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이 좋았다. 이 시를 처음으로 마음 속에 새기게 적이 언제더라. 모르겠다. 그냥 갑자기, 정말 어느 순간 '고등학교 때 배운 신데?'하는 생각과 함께 문득 떠올라 찾아보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읽었다. 너무 길어서 한 번을 읽고, 두 번을 읽었다. 그리고 시가 시작하는 첫 부분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어지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하고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의 이 쓸쓸함이 좋았다. 사무치는 기분이었다. 외롭고 쓸쓸한 심정이 참 잘 느껴졌다. 나도 여기에 동화되는 적도 종종 있었다. 백석이 셋방살이를 하며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동안 자신의 위치에 대한 비관으로부터 시작해 좌절을 맛보았다가 자기 인생보다 더한 국가적인 문제(일제 강점)을 생각하며 극복 의지를 드러내는, 알고 보면 굉장히 심오한 시다. 하지만 나는 그런 깊이 있는 것보다 이 시가 주는 표면적인, 글자에 담긴 그대로의 그 의미와, 백석의 비유들 혹은 표현들이 좋았다.


나에게 시는, 읽는 것 자체와 함께, 읽었을 때 내 마음 속에서 어떤 꿀렁임이 온다면, 그 시는 내가 좋아하는 시가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나에겐 의미 없는 글자의 나열일 뿐이다. 아직 시를 읽으며 어떤 부분이 좋고 싫다를 정확하게 말하는 데는 한없이 서툴다. 하지만 시(詩)를 읽는 다는 것에 한 번쯤은 빠져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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