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아침 출근 길, 물 웅덩이 몇 번 풍덩 하고 나니 흠뻑젖은 바지 밑단에 우산을 써도 축축해진 왼쪽 어깨. 게다가 어제 막 터진 생리까지. '아, 진짜 엿같은 날이네.' 터덜터덜걸으며 내려간 지하철에 물기 가득한 우산을 들고, 길게 늘어선 줄에 끼어 서서 지하철을 기다리다 보니출근도 하기 전인데 모든 기운이 빠진 그런 날의 시작이었다.
'꼭 이런 날이면 뭘 잃어 버리던데.'항상 기분이 안 좋은 날이면 나사가 하나 풀린 사람처럼 뭔갈 두고 다닌다. 화장실에 두고온 핸드폰, 택시에 두고 내린 우산, 버스에 두고 간 파우치. 이 외에도 많다. 자취를 하니 망정이지 엄마랑 살았으면 정말. 생각만 해도 뒷골이 서늘하다. '분명 끝없는 잔소리의 연속이었겠지. 후.'
툭--
"아, 씨발. 또 흘리지." 내리기 직전, 떨어진 지갑을 보고 맥없이 흘러나온 내 목소리에 옆 사람이 흠칫 하는 것을 느꼈지만 지금은 누구를 신경 쓸기운이 없기에 지갑을 주워 내리려 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응? 하고 생각하는 찰나에 깨달았다.'아, 내 지갑이 아니구나.'
"아, 죄송해요. 제 지갑인 줄 알고.... 그 쪽한테 욕한 거 아니었어요."
이렇게 물꼬를 튼 대화는, 같이 내리게 된 정거장과, 같은 쪽 방향인 길을 따라 함께 걸으며 계속됐다. '회사를 여기다니시는 거에요?' '아, 아니요. 잠깐 아침에 거래처 들른 거에요.' 내가 묻는 대답에 수줍게 대답해주는 남자의 행동에, 저절로 눈이 가기 시작했고 마침내 내가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혹시, 여자친구있어요?"
그러자 이 남자, 꽃 같은 미소를 날리며 뜸을 들인다.
'뭐야. 있으면 있다고할 것이지. 아 쫄리게.... 으아아아아아'
"없다고 하면, 번호주실거에요?"
'아, 대박. 대박. 대박. 대박'
"핸드폰 줘봐요."
아, 기분 좋은 날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