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둣집 아주머니

by 이주희

입춘이 이다지도 추웠던 적이 있었던가?

해는 어느덧 길어져 피부 관리를 받고 나와도 여전히 밖에 훤했다.

베드에 누워있는데

따뜻한 열선을 한참 켜놓은 채 있어도

학교가 너무 추웠던지라

꽁꽁 언 발바닥이 좀체 따뜻해질 생각을 안 했다.

'이렇게 추운 날 우리 두 딸 외투 깃은 누가 여며주나..?'

문득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는 건 늘 힘들지만

2주가 다 되어 보러 가는 주는 그리움 때문에 더 힘들다.

서울이 이렇게 얼음장 같으면 대구라고해도 별 수 없이 바람 불면 많이 추울 텐데,

그 추위를 막아주는 외투를 여며주는 손길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손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걷잡을 수 없이 슬퍼졌다.

'엄마가 곁에 있지 못해 미안해.'

평소엔 궁금해도 전화한 통 할 수 없는 내 딸들.

부처님은 집착하지 않으면 고통받지 않는다고 하셨다지만

엄마가 딸을 보고 싶어 하는 것마저 집착이라 하실까.

'신이여, 제가 진정 뭘 잘못했나이까.'


신도시 옆에 새로 생긴 신도시에 사는지라

원래 신도시에 나올 일이 있으면 이것저것 살 물건을 몰아 산다.

사당동 살 땐 한 팩에 이천 원 삼천 원이면 사던 플라스틱 딸기 박스가

이제는 팔천 원이란다.

언감생심 살 용기가 나지 않는다.


12월부터 법원에서 임시로 보내주라고 하는 양육비를 다 주지 못하고 있다.

그 양육비에 집 앞으로 나오는 대출 이자를 합하면 내 월급이 되어버려서다.

모처럼 연보라색으로 네일아트도 하러 가고 싶지만 하지 못하겠다.

공연도 하나 더 보고 싶지만 보지 못한다.

미리 당겨 빌려놓은 대출금도 바닥을 보여 변호사와 논의 끝에 조금 줄여서 보내기로 했다.

나머지는 물론 이혼 판결 시점에 정산할 예정이다.


남편은 이런 내게

애들한테 미안해해야지.

집 대출금에 생활비는 니가 알아서 해야하는 거고.

부끄러운 줄 알아야해.

라며 나를 쪼아댔다. 아이들이 내 부모님과 동생에게 세뱃돈 중 오만원권은 내가 가져간 걸 가지고

세뱃돈도 뺏어가고

라고도 했다. 마치 그 돈이 자기 돈인 양.




설날에 못 먹은 떡국이 생각나 봐 두었던 만둣집으로 저녁을 먹으려고 들렀다.

"떡만둣국 되나요?"

물었더니 바깥에 만두 매대에 서 있던 아드님처럼 보이는 분이

"그럼요. QR만 해주세요."

한다.

안에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떡만둣국 하나 주세요."

"네."

대답 소리가 어쩐지 신명 난다.

메뉴에 떡국도 보여,

"떡국도 되나요?"

물었더니

"떡국도 되죠. 그래도 만두가 좀 있는 게 낫지."

하신다. 아무래도 만둣집이니까.

"떡국을 좋아하시나 봐요?"

딱히 그런 건 아니었다.

"아, 설날에 떡국을 못 먹어서요."


그 순간이었을까. 내게 그 아주머니가 엄마처럼 대하기 시작한 게.

"사골국물 여기서 열두 시간 끓인 거예요. 좋은 거니 팍팍 떠먹어요."

김치가 너무 맛있어 한 접시 더 먹었다.

국물은 혈압 걱정에 깨끗이 먹진 않았지만

건더기는 전부 먹었다.

감사했다.


"다음에 또 먹으러 와요."

눈을 마주치며 건네는 목소리에 진심이 담겨있다.

이다지도 따뜻한 만둣집이라니.

이 분은 어디서 이런 마음이 우러나오시는 걸까.

나도 이렇게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나는 그저 이런 마음을 진심을 다해 받는 것까지 밖엔 할 수 없을까?


나도 이런 사람이고 싶다.

우리 반 학생들에게, 그리고 또 다른 기댈 곳이 필요한 사람에게.



네일아트도 딸기도 살 수 없지만

소소하게 내일 먹을 크루아상과 맛있는 캔커피 라테 한 캔, 그리고 오는 길에 오천 원짜리 파란 수국 하나와

올리브영에서 천 원짜리 마스크팩 두 장, 마침 떨어진 핸드크림 1+1 행사 상품을 산다.

이렇게만 해도 마음이 그득해지는 것 같다.

아마 이전에 뜨끈한, 정이 듬뿍 담긴 떡만둣국을 먹어서겠지.

나는 이제 기쁜 일이 생기면 웃어도 되는 걸까.

곧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은 뭘까.

내가 그럴 자격이 있을까.

그럴 권리가 있을까.

너희를 두고.

너희의 옷깃을 내 손으로 여미지 못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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