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10년 전부터 알고 지내던 동생 한 명을 만났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그간 연락이 잠시 끊겼다가 실제로 다시 만나게 된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9살이나 어린 그 애 앞에서 난 뭐든 자유롭다.
말하는 것도, 표정도, 행동도. 편하다.
“이제 지난 일을 바탕으로 같은...”
“같은 실수는 안 하지 않겠냐고?”
그애와 달리 난 늘 그랬듯 돌아가고 싶은 과거가 없다고, 지금이 그래도 가장 좋다고 했다. 전남편과 비슷한 남편을 두고도, 각자 다른 수많은 이유로 이혼하지 않는 아내도 많다고 하며. 그래도 난 아닌 건 아니어서, 이렇게 이혼하는 것조차 후회가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모르는 거야. 또 같은 실수 할지도 모르지.”
누굴 만날려고 할 때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다.
그 동생이 알려줘서 구글 포토를 깔았다.
어린이집에서 근무하는 그 동생이 그 방법으로 7년째 같은 핸드폰을 쓰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핸드폰에 아주 오래 머물러있었던 옛날 아이들 사진을 지우기 시작했다.
오늘 예전에 백업해놓은 사진을 보다 보니, 미처 지우지 못한 전남편 사진이 몇 장 보여 그것도 지운다.
그리고 이 두 장의 사진을 찾았다.
첫번째 사진의 카드는 이 큰 꽃바구니와 같이 왔었다. 두 사진의 시간 차는 겨우 6개월.
같은 사람이라고 믿기 힘든 이 강렬한 대비란! “항상 사랑하고 이해하고 존중하며 귀하게 대할게”라며 꽃을 보내던 사람이 결혼하고 나서는 화가 난다고 물건을 부수고 “죽인다”는 협박을 하다니. 여느 소설책 저리가라네.
그럼 난 재미없는 진부한 비극의 평면적 여주인공인가.
결혼 3개월 이내의 첫 손찌검이라니 너무 뻔한 스테레오타입 아닌가? 가정 폭력에 대해 공부를 좀 한 지금 돌이켜보면은.
정말, 모르겠다.
내가 다시 속지 않으리라고는 확신하지 못하겠다.
그 애는 내가 반짝반짝 빛나 보인다고, 멋있다고 했지만
난 아직도 이런 과거의 흙에 깊이 묻혀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털고 일어선다고, 다시 다른 진흙에 묻히지 않으란 법이 없지 않은가?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도 하니까.
끔찍한 그에게서
벗어난 나에게 박수를.
다시 또 흙을 뒤집어쓴다 해도
또다시 헤치고 나오면 된다고 할까.
그런 힘이 내게 남아있을까.
이제 이런 쓰레기 같은 사람 말고
나를 더 반짝이게 할 해님 같은 사람을 기다려봐도 될까.
또 아니면, 그만두면 되지 뭐, 라는 마음으로 살아도 괜찮을까?
한 번 더 실수하면
그땐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것 같다.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