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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Feb 09. 2022

같은 실수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어제는 10년 전부터 알고 지내던 동생 한 명을 만났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그간 연락이 잠시 끊겼다가 실제로 다시 만나게 된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9살이나 어린 그 애 앞에서 난 뭐든 자유롭다.

 말하는 것도, 표정도, 행동도. 편하다.


 “이제 지난 일을 바탕으로 같은...”

 “같은 실수는 안 하지 않겠냐고?”

 그애와 달리 난 늘 그랬듯 돌아가고 싶은 과거가 없다고, 지금이 그래도 가장 좋다고 했다. 전남편과 비슷한 남편을 두고도, 각자 다른 수많은 이유로 이혼하지 않는 아내도 많다고 하며. 그래도 난 아닌 건 아니어서, 이렇게 이혼하는 것조차 후회가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모르는 거야. 또 같은 실수 할지도 모르지.”

 누굴 만날려고 할 때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다.




 그 동생이 알려줘서 구글 포토를 깔았다.

 어린이집에서 근무하는 그 동생이 그 방법으로 7년째 같은 핸드폰을 쓰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핸드폰에 아주 오래 머물러있었던 옛날 아이들 사진을 지우기 시작했다.

 오늘 예전에 백업해놓은 사진을 보다 보니, 미처 지우지 못한 전남편 사진이 몇 장 보여 그것도 지운다.

 그리고 이 두 장의 사진을 찾았다.

결혼하기 전, 사귄지 500일 즈음이 스승의 날이었나보다.
결혼 후 3개월도 안되어서 내가 보낸 문자

 첫번째 사진의 카드는 이 큰 꽃바구니와 같이 왔었다. 두 사진의 시간 차는 겨우 6개월.

 같은 사람이라고 믿기 힘든  강렬한 대비란! 항상 사랑하고 이해하고 존중하며 귀하게 대할게라며 꽃을 보내던 사람이 결혼하고 나서는 화가 난다고 물건을 부수고 “죽인다 협박을 하다니. 여느 소설책 저리가라네.

 그럼 난 재미없는 진부한 비극의 평면적 여주인공인가.

 

 결혼 3개월 이내의 첫 손찌검이라니 너무 뻔한 스테레오타입 아닌가? 가정 폭력에 대해 공부를 좀 한 지금 돌이켜보면은.


 정말, 모르겠다.

 내가 다시 속지 않으리라고는 확신하지 못하겠다.

 그 애는 내가 반짝반짝 빛나 보인다고, 멋있다고 했지만

 난 아직도 이런 과거의 흙에 깊이 묻혀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털고 일어선다고, 다시 다른 진흙에 묻히지 않으란 법이 없지 않은가?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도 하니까.


 끔찍한 그에게서

 벗어난 나에게 박수를.

 다시 또 흙을 뒤집어쓴다 해도

 또다시 헤치고 나오면 된다고 할까.

 그런 힘이 내게 남아있을까.

 이제 이런 쓰레기 같은 사람 말고

 나를 더 반짝이게 할 해님 같은 사람을 기다려봐도 될까.

 또 아니면, 그만두면 되지 뭐, 라는 마음으로 살아도 괜찮을까?


 한 번 더 실수하면

 그땐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것 같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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