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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희 Feb 18. 2022

나는 나만의 것

 사람은 과거의 자신이 어땠는지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잊어버리기도 하나 봅니다.


 며칠 전 2019년부터 알고 지낸 이전 학교 동료 원어민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한참을 서로의 근황을 묻다가,

 처음으로 남편에 관해, 이혼에 관해 말을 꺼냈던 일에 대해 얘기가 나왔습니다.

 같이 수업을 하기 시작한 지 두 달밖에 안된 시점이었고,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그런 얘길 하는 바람에

 자기가 얼마나 당황했었는지 몰랐다고 합니다.

 가서 어깨를 토닥여 줘야 하는지, 그저 듣고만 있어야 할지, 혹은 이 상황이 너무 어색해 화장실로 도망을 갈 건지

 순간적으로 마음속에서 갈등이 일었다고 해요.

 "Was it only 2 months later?"

 송중기와 송혜교의 갑작스러운 이혼 발표를 인터넷으로 접하면서 저도 모르게 쉬는 시간에 터져 눈물이 터져 나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사실 너무 오래되어서

 처음에는 1학기가 아니고 2학기가 아니냐고 되물었다가,

 송중기 송혜교의 이혼 기사를 찾아보니 그해 6월이라 더 고집을 부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랬어? 그때 어깨를 토닥이지 않아줘서 고마워.”

 그러기엔 아직 어색한 사이였으니까요.

 그렇게 원어민 선생님은 학교에서 저의 가정 불화를 제일 먼저 알게 된 사람이 되었습니다.


 "You didn't want the kids at the time. You said you wanted to start from complete zero."

 이게 무슨 말일까 싶어 재차 물어봅니다.

 "Me? Said that?"

 인내심을 가지고 여러 번 설명을 전해 들은 뒤에야

 당시 제가 아이들을 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저 도망만 갈 수 있어도 좋겠다는 마음밖에 없었던 그때의 무기력한 상태를요.

 뉴욕에서 원래 해양생물학을 전공한 그답게 이런 비유를 했습니다.

 "You know fish can be tell if it will live or die soon by its eyes."

 Honestly, 로 시작하려다 멈칫하자 제가 "Spit it out."이라고 얘기하라고 재차 다그쳤더니 겨우 말을 꺼냅니다.

 당시 제 눈이 꼭 죽어가는 물고기 눈 같았다고요. 아무런 희망도 없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소송을 시작한 2020년까지도

 힘겨움을 애써 숨기려는 게 보여 마음이 쓰였다고 합니다.

 "You are right. I could really die, die."

 진지하게 이혼할 생각을 못한 채, 내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거기서 나오느라,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는 엄마의 고통에 대해 미처 진지하게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막상 육아휴직을 시작한 전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나와 소송을 시작하며, 강제로 아이들을 보지 못하게 되면서는 부모가 자식을 보지 못하는 고통이 어떤 것인가 알게 되었지요, 그제야.

 제가 조금 숨을 쉴 수 있고 나서야.




 어찌 되었든 제가 택한 일이었습니다.

 인생의 작은 순간부터 큰 결정까지

 자유롭게 택할 수 있는 인생을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삶을 다시 제 손에 거머쥐었습니다.

 그래서 끝내 행복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최소한 다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삶은 이렇게라도 이어나가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저는 몇 년 전 제 모습을 잊은 채, 아이들을 보지 못하는 슬픔에 아주 오랫동안 잠식되어 있었더라고요.


 "I think this is not the best, but a good conclusion for you."

 어떻게든 주체적으로 내 인생을 살고 싶다는 바람과

 아이들과 떨어져 있는 엄마의 고통 사이에서

 밸런스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완전히 아이들을 보지 않는 건 아니고,

 계속 만나며 평소에는 일과 생활의 자유를 얻은

 지금이 어쩌면 저에게 최선이고

 온 우주가 이 최선을 저에게 주기 위해

 많은 애를 썼다고도, 관점에 따라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잘 살아야겠지요.

 이렇게 애써준 우주에 제 나름의 방식으로 답례를 하면서.

 



 새로 맡은 학년 부장 업무는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학교 일이 대개 그렇듯이

 먼저 우물을 파지 않으면 아무도 먼저 와서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그래도 바쁘니

 좋습니다.

 딴생각이 안나기도 하고, 스스로가 어딘가에 쓰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이전 학년 부장님께 조심스레 질문을 많이 드리며

 이렇게 저렇게 해 나가보려고 합니다.



 원어민 선생님께 그간 있었던 첫 데이트, 다시 발현된 트라우마, 더 만나지 않게 된 사연 등을 쭉 이야기해 주었더니 "왜 이렇게 연락이 뜸했냐 했더니 바빴구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헤어지고 나서 이런 톡이 왔습니다. 편의상 영어 대화를 한글로 옮깁니다.


D: 남자는 자기 진짜 모습을 감추기 마련이니까 조심해야 해.

나: 3의 법칙이 있잖아. 다음 번은 괜찮겠지.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상한 사람일까 봐 걱정돼.

D: 좋아하는 타입 바꾸는 건 어렵지. 남자는 남자가 봐야 아는데!

나: 그럼 네가 좀 봐줘, 다음번엔.

D: 좋아. 내가 테스트해줄게. 너 이제껏 이상한 놈들과 너무 오랫동안 지냈잖아.


 ...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사실 원어민 선생님과 2년간 같이 가르치고, 알고 지낸 지 4년 째라 이제 동료보다는 친한 친구에 가깝습니다.


 '그렇게 내 남자 보는 눈이 별로인가?'

 자책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중에 괜찮은 사람도 있겠지'라고 믿고 싶어요.

D: 눈을 가리고 스윙을 하더라도 자꾸 치다 보면 공 하나는 맞추기 마련이니까!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는 농담을 듣고선 말했습니다.

나: 다음번엔 너한테 맨 처음 얘기할게! 올해는 일이든 데이트든 엄청 바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30대 때 이 뮤지컬은 본 뒤로 자주 즐겨 듣는 음악,

 뮤지컬 ‘엘리자벳’ 중 ‘나는 나만의 것’을 공유드립니다.

https://youtu.be/AKLBSeM60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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